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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May 22. 2019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슈필라움의 심리학 _ 저자 김정운 

도서 리뷰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_슈필라움의 심리학 _ 저자 김정운


"앞으로 남은 생애를 잘 살기 위해,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자신만의 '슈필라움'을 작정하고 만든, 저자의 바닷가 작업실과 여수의 일상을 들여다 본다." 


"슈필라움(주체적 공간, 자율 공간, 놀이공간)을 찾아서, 그리고 그곳에서 쓰기, 그리기!!"  


저는 대체로 제목에 이끌려서 책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와 출판사, 그리고 제목, 이 세 요소에서 저자와 출판사를 잘 모르는 경우에 무조건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는가 봅니다. 아마도 이 책도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목에서 무엇을 읽었을까요? 

낭만, 호젓함, 작업실의 분위기, 세속적인 풍경과는 조금 낯선 예술적인 공간이 주는 매력 등등 

아마 이런 것들을 기대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시원시원하게 간결한 문장, 때로는 단언적인 화법의 강한 문장, 서슴치 않고 내뱉는 듯한 거친 문장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생에 대한 고민,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파생한 문제에 대해 해결하는 현실적인 대응이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그림과 사진, 사진에 담긴 선언적인 문장(원고지 문체) 등 글의 짜임새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 <남자의 물건>도 그렇겠지만, 이 책도 쉬이 읽힙니다. 다양한 문화 예술적인 지식과 개념들이 꽤 여러 곳에 등장하지만 그것들 또한 쉽게 설명하여 읽는 일에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관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볼 수 있는 자유'가 행복의 핵심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넋 놓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누리는 '시선의 자유'때문이다. '시선'과 관련해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조망-피신'이론을 주장한다. '먼저 보고, 도망칠 수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생존원칙이 인간의 모든 미학적 경험에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일단 먼저 보고 도망쳐야 한다. 사냥할 때도 마찬가지다.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214쪽) 


이런 맥락에서, 주말마다 골프장에 나가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도 바도 이 '조망-피신'의 기억 때문이라고 합니다. 거의 인간들의 생존원칙에 가까운 '조망-피신'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 슈필라움'을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하겠네요. 그렇다면 이런 메시지는 공간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셈이지요.  


세상을 보는 '창틀'은 내가 결정한 거다.

잘 안 보인다고 '남 탓' 하지 말아야 한다. (88쪽) 


저자는 자신만의 기막힌 작업실 또는 심리적 여유가 포함된 '자율 공간, 슈필라움'을 찾아 여수 남쪽 바다의 섬들을 뒤지고 다닙니다. 그리고 여수 남쪽 섬의 낡고 무너져가는 '미역창고'를 시세보다 두 배나 주고 사게 됩니다. 그리고 진짜 작업실 이름을 부칩니다. "美力創考"라고.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다! 스스로 작명에 대한, 기막힌 이름이라고 찬사를 합니다. 정말 기막힌 언어유희입니다. 미역창고, 美力創考!! 


낡은 창고를 수리하고, 천장을 높게 하고, 책장에 책을 옮기고, 책장 철제 사다리를 만들고. 생각보다 손이 가는 곳이 많고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온전한 작업실로 완성해가는 과정이 몹시 힘겹습니다. 그야말로 현실적인 고난에 가까운 일이지요. 그러나 '바닷가 해 지는 이야기'만 하고도 살 수 있을만큼 아름다운 노을과 '나비처럼 생긴 여수'의 바다를 보면서 위로를 받는 저자의 모습이, 그 자체로 낭만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이력도 화려하고 강점도 많은 것 같습니다. 건축, 심리학, 그림, 글쓰기, 독일 등과 관련된 직업이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젊은날의 다시 하라면 결코 하기 싫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 공부와 그와 관련된 유학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글을 읽다보면 그의 말하기와 문체가 아주 시원시원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유명한 저서, <남자의 물건>이 퍽 유쾌하게 읽힌 이유도 그의 거침없는 문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연고도 없이 충동적으로 내려가 살게 된 여수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그림과 텍스트가 같이 있는' 글까지 쓰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생산된 결과물을 여수의 바다, 하늘, 계절이라는 맥락으로 엮어 낸 것 같습니다. 물론 미역창고를 만들게 된 과정, 그러면서 파생된 문제와 문제 해결 과정을 큰 줄기로 담고 있지만요.  


그는 예술가로서의 물리적 공간 확보와 심리적 여유까지 마련될 수 있는 자신의 바닷가 작업실 '미역창고'에 대한 의미를 엄청나게 부여합니다.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이 불안한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면서 말입니다.  


불안한 사회일수록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 탈출구다. (...)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하는 느닷없는 질문으로 조급해진다면 음악회를 찾는 게 좋다. 몸으로 느껴지는 음악은 삶의 시간을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 그런데 여전히 (미술관, 박물관을 찾지도 않고, 음악회는 감히 생각도 못하는 대개의 사람들이) '집단 불안' 마케팅이 반복되는 TV 리모컨을 집어든다면... 당신은 교양이 없거나... (144~145쪽) 


그렇다면 저는 이번 생은 망한 것이 맞겠지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가고, 그리고 음악회에 가서 선율에 내 몸을 맡기는 일이, 기가 막히게 좋은 노을을 노상 볼 수 있는 바닷가 근처의 작업실을 갖는 일이, 그러그러한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들이 인간의 불안을 해소해 주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배경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긴 하나, 주말에 한번쯤 집 주변의 가까운 산 위에 올라가 보거나 확 트인 바닷가를 찾아 가 보는 일도 자신의 원시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가끔 전망 좋은 카페나 맛있는 공간만 찾아 가도, 그리고 그곳이 나의 '아지트'라고 착각만 해도, 심리학적으로 '여유'와 '자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요?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217쪽) 


구체적 맥락의 한계를 벗아날 수 있는 인간의 추상적 사고와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은 '먼 곳', '높은 곳'을 조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좀더 먼 산, 높은 하늘, 한없이 넓은 바다 등을 자주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다. 시간 날 때마다 멀리, 높이, 자주 올려다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창조적 통찰이 가능해질 테니까.  


다시 한 번 '공간은 일상의 대개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라는 말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대목이다. 



(위 그림은 책에 나온 그림 중에서 저에게 제일로 뽑힌, 저자가 그의 바닷가 작업실 '미역창고'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이 글은 예스24 서평단에 당첨되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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