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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May 24. 2019

도서 리뷰 [신화, 그림을 거닐다]

명화 속 신화를 읽다

도서 리뷰 [신화, 그림을 거닐다] 명화 속 신화를 읽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 속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린 '신화 그림'을 소재로 제시하면서, 예술적인 안목으로 감상하게끔 간결하게 설명으로 방향을 안내해 주고 있다.   

특히 신화 속 이야기의 한 장면을, 또는 인물을 부각시킨 그림들이 많이 나온다. 그 그림에 스토리를 부여한 텍스트 한두 쪽. 그리고 화가의 화풍에 대한 저자의 간결한 설명 몇 문장. 그래서 이 책은 어느 장을 펼쳐 읽어도 쉽게 읽힌다. 신화 속 인물들의 가계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림을 통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야말로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장면과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역동적인 몸짓 속에서 신화 속 이야기를 읽어 내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래도, 이 책의 핵심은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쨌든, (예화로 제시한) 신화를 소재로 그린 그림(명화)이 선명하게 부각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여타 미술 관련 책자들에 비해 그림이 선명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제우스와 헤라>, <아프로디테의 탄생>, <디오니소스의 여사제>, <헤스페리데스의 정원>, <프시케의 납치> 같은 밝은 색감이 두드러지는 그림을 제외하고 대개의 그림들은 대체로 어둡고 흐리다. 마치 신문용지 같은 종이에 인쇄된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어둑어둑한 공간에서 화질이 안 좋은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특히 모리스 드니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인쇄 상태에서는 신화 속 분위기인 '따사롭고 눈부신 행복한 한때'가 느껴지질 않았다. 색감의 혼탁함 때문인지, 불투명한 인쇄 상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물론 신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 자체가 묵직하고 웅장할 뿐만 아니라, 뒤틀린 욕망과 욕정에 사로잡힌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일부러 어둑어둑한 색채 속에 명암이 뚜렷한 인물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만.  


몇 년 전 파리 루브르박물관을 다녀 온 적이 있는데. 당시 명화를 제대로 감상할 만한 역량이 부족했던 나는, 그래도, 그 명화들이 풍기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깊은 색채감,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인물들의 역동적인 모습에 아무 이유도 없이 매료당했었다. 그리고 (프랑스 거주) 한국인 가이드의 간단하지만 재치가 넘쳤던 설명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재미있었다는 기억도 남아 있다. 어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그런 '음성 지원'을 '활자 지원'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신들과 영웅들의 욕망. 그리고 그런 신과 영웅들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사랑과 열정, 운명과 삶의 비애가 넘쳐나는 그림들.  

이 중에 시선을 사로잡은 명화들이 꽤 많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서, 나름 더 오래 시선을 붙든, 두 작품을 뽑았다. 그런데 말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귀도 레니의 것이다(그런데 두 작품 모두 화가가 같다는 사실도 지금 리뷰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고르고 고른 것이 '우연히' 같은 화가의 작품이라니. 내가 이 화가의 화풍을 좋아하나? 흐하하. 이 화가 이름도 책을 통해서 처음 듣는 것 같은데 말이다. 하하하. 그림은 <히포메네스와 아탈란테>, <데이아네이라의 납치>이다. 


인물들의 풍부한 표정과 역동적인 이미지, 그리고 뭔가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 그리고 매우 인간적인 사랑, 비극적인 사랑 냄새가 폴폴 난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히포메네스와 아팔란테> 사랑은 타이밍이다, 사랑의 신을 간절히 마음속으로 부르면 '황금사과'를 받는 행운이 생겨날 것이다. 



<데이아네이라의 납치> 질투는 의심을 부르고 의심은 사랑을 죽인다. 여인이여, 의심하지 말지어라~ 

*

이 책에는 대개 이런 분위기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신화를 소재로 그린 명화에 관심이 많다면. 꼭 책을 살펴 보시리라 기대한다.  


(리뷰 쓰면서 제일 난감한 점. '명화' 또는 '그림' 어떤 명칭을 써야 할지. 괜한 고민일까? 아무 용어나 써도 무관할까?) 


**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거의 사족에 가까운 불필요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그림에 대한 신화 속 이야기와 화가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그 그림이 두 번째 등장할 때는 문학 작가의 명문장들이 달려 있다. 처음에는 무심코 읽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덧붙여지면서 명화의 품격, 이 책의 품격이 조금 하향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쩔 때는 명화는 안 보이고 명언만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저 '아무개의 아무런 그림'이 수록되었구나,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나는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라는 말과 함께 있는 그림, 제임스 노스코트의 <아도니스>는 정말 깜빡 놓치고 지날 뻔했다. 그래서 (꽤나 무식한 성향에서 비롯된) 제언을 한 가지 하자면. 그림이 처음 소개될 때 (저자의 텍스트 설명이 들어가기 전에) 그림 속 신화 이야기를 두어 줄 넣어주고. 이어서 명언을 달면 어떨까. 아니면 뒤에 다시 그림이 나올 때, 신화 이야기 두어 줄 넣어주고. 명언을 함께 엮든지. 이 아름다운 미소년의 아도니스를 그저 그런 인물로 지나치지 않게 말이다.  


*이 글은 예스24 서평단에 당첨되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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