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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un 08. 2019

2019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시간의 궤적, 하긴, 데이 포 나이트

2019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청양고추(또는 아주 매운 음식)를 왜 먹을까. 가끔 입에 대기도 두려운 따가운 매운 맛의 고추를 입에 물곤 한다. 처음엔 아리고 아프기까지 하지만, 그렇게 어쩌다 한 번 씹고 나면, 찔끔 식은 땀 몇 가닥 흘리고 나면 괜한 만족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왜 읽을까. "무조건 소설을 좋아하니까. 단편소설이니까 부담이 없어서. 정격 프로작가의 느낌보다는 신생 작가들의 미완성된 듯한 난해함이 궁금해서. 기상천외한 소재와 거침없는 화법이 궁금해서."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청양고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깨물어 먹어 본다. 알싸한 그 느낌이 좋아서. 가끔 그렇게 반쯤 먹어 본다. 특히 선지해장국 등을 먹을 때는 꼭 하나의 삼분의 일 정도는 먹어 준다.  


나는 젊은 작가상에 올라오는 작품들이 가끔 난해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럴수록 오기가 생긴다. 꼭 읽고 말겠다는. 내 이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거지. 작품은 훌륭한 것일게야. 그렇게 오기를 부리며 몇 년 읽었던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나 보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읽고, 또 그렇게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다. 마치 묵직한 돌덩이 같은 부채감을 안고 있는 것처럼.  


이번에 읽은 7편 중에 "아 좋다" 하는 작품이 몇 있었다. 그리고 "음... 이런 작품도 수상을..."하는 느낌의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대개의 작품들이 서술자 '나'를 선택한 방식은 맘에 들지 않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서사를 전개하고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적극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사적인 일기를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좀 '기시감' 또는 '피로감'이 쌓인다고 할 수 있다.  


내년에는 <젊은작가상> 독서를 좀 쉬어 볼까 - 라는 생각도 했다. (아마 올해 이 책의 독서를 미루고 미루고 있었던 이유도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싸한 말로 포장을 해도, 이건 독서의 게으름을 피우자는 말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할 뿐이다.  


* 본격적으로 (작품이 실린 순서대로) 간단한 소감을 정리해 보자. 


1편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도대체 제목의 뜻은 언제 나오지- 하는데 (37쪽)에서 드디어 만난다 "그의 입술에서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 났다. 비릿하고 쫄깃한 우럭의 맛. 어쩌면, 우주의 맛."

큰일났다. 우리집에서 한달에 두어 번 먹는 회가 바로 우럭이다. 이제 우럭 한 점을 먹을 때마다 이 문장이 떠오르면 어떡하지. 광어의 투명함보다, 더 쫄깃한 맛으로 비유한 우럭에 해당되던 '나'의 이미지와 그의 성적인 본능을 떠올리면 어떡하지. 라며 (이런 불순한 생각으로) 일상을 걱정하며 읽었던 장면들. 


이 소설은 대개의 단편보다는 조금 긴 분량이다. 그래서 세 사람(나, 형, 엄마)의 서사가 시간 교차를 하면서 얼개를 이루고 있어도 크게 복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세 사람 모두 세대별, 가치관별 뚜렷한 상징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형(여기서 형은 '나'가 부르는 남자의 호칭이다)과 엄마를 관찰하는 입장에서 '나'의 내면, 인식 변화(어떻게 보면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중심에 있다. 동성애에 대한 구체적이고 농담섞인 문장들이 많지만. 그것 또한 가치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울러 세 세대를 아우른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탁월한 점으로 여겨졌다. 인물에게 부여된 캐릭터도 그것들의 서사도 리얼함을 살리면서 말이다.  


이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다. 비록 슬픔의 정서를 바탕으로 깔고 있지만 유머도 탁월하다. 그런데 작가의 문체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의 화법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호하게 표출된다. "남자들은 도대체 왜 자꾸 내게 미안하다고 할까. 그냥 미안할 짓을 안 하면 될 일인데."(10쪽).  중반부에 확연이 게이임이 티가 나는 사람이라고 묘사를 하고. 두 사람이 육체적인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확실히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전체적으로 여성적인 어조가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엄마가 화장실에서 거침이 없게도 아들에게 옷을 입혀달라 뭐 해달라 하는 장면에서는 엄마가  '나'를 딸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착각이 일어날 정도이다. 간혹 모자(母子)의 대화가 때론 모녀의 대화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점도 내 착각일  듯 싶지만 말이다. 


2편 김희선 <공의 기원> 


이 소설은 소설로 읽히기 보다는 기원에 대한 추측(상상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다큐처럼 읽혔다. 그 상상력의 발현에는 '사진'이 어마어마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그가 쓰고자 하는 것,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 그러면서 동시에 진짜를 가짜처럼 보이게도 하는 - 스토리를 만들려면 사진이 필요했으니까. 만약 사진만 있다면 아무리 기이한 이야기일지라도 진실이 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126쪽)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진 한 장이 불러 온 나비효과 같은 위대한 추정 역사가 씌여진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글이었다. 그래도 축구공의 기원에 대한 여러 정보를 '알게 된 것'은 이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었다.   


3편 백수린 <시간의 궤적> 


이 소설은 어쩐지 바로 결말이 보였다. "복도에 서 있던 언니가, "한국인이죠? 바쁘지 않으면 술이라도 같이 한잔할래요?"라고 물었을 때(154쪽)  부터 시작하여 '언니'라는 사람에 대한 거의 연인 수준에 가까운 동경을 장황하게 표출할 때, '아 두 사람 파국이 오겠구나' 그러다가 '나'가  결혼을 한다고 결정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우정)는 끝났다"라는 기시감이 몰려 왔다. 배경이 프랑스- 얼마나 근사하고 낭만적인 장소인가.  이곳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도, 현실 속에서의 삶(또는 그런 생각)이 깊숙하게 자리잡으면, 이국적인 것들과 낭만적인 것들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상대의 아픔을 건드리는 비수가 되는 것임을. 그야말로 사람들의 관계도 생로병사가 있음을 단선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4편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206쪽), "씨발, 너 진짜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225쪽)에서 소설의 제목에 해당하는 '말'이 나온다. 서술자 '나'는 그 말에 상처를 받고 다른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 '그렇게 살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어찌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살아낸다. '나'의 지극히 아무것도 없는 '바쁘지 않는' 일상. 이 소설의 메시지는 과연 독자에게  '어떤' 고민을 '어떻게'하라는 것일까. 번잡한 도시 직장 생활에서 '미안하지만 바빠서'만 복기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이, 어느 날 일을  집어치우고 '엄마집'으로 들어와 마치 백수처럼 사는 것이 하나의 해답일까. '나'의 고민을 독자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몰려 온다.  



5편 정영수 <우리들>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작가지망생처럼 그려진다. 사랑도 실패하고 새로운 일도 실패하고. 보편적인 시선으로 불륜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랑을 아름답게(?) 지켜내려는 정은과 현수의 글쓰기를 돌봐 주는 인물이었다가 자기의 글쓰기를 구체적으로 시작하는 사람으로 변화한다. 또한 '나'를 통해 작가적인 경험, 사랑, 글쓰기 등을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묘하게 소설 속의 이야기와 '우리들'이라는 제목이 조금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이 작품 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또는 쓰게 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하긴>이 있다. 이런 것들이 젊은 작가들이 선호하는 소재인가 궁금해졌다.   


6편 김봉곤 <데이 포 나이트> 


이 소설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나'가 "그리고 그건 끔찍한 기시감이었다"(285쪽)"나는 내가 게이라는 걸 순순히 인정해버리고 말았다."(287쪽). 또 동성애. 소재 부분에 있어서 좀 질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단편집의 이야기 배치를 <우럭 한 점...>과 <데이 포  나이트>를 나란히 배치했다면. 두 편만 읽고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없다. 사랑은 어떤 빛깔로도 단정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활자로 적나라하게 만나는 일은 아직은 불편하다. 남녀의 정사도 적나라하게 만나면 조금 불편한데. 하물며.. 낯설고 낯선 정사 장면은. 아직은 불편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내가 올드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7편 이미상 <하긴> 


"개중 형이 하긴 하는 남자라서"(326쪽) 에서 이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제목 '하긴'의 뜻이 매우 궁금했다. '하기는'인가? '하긴 하는'을 줄인 말인가? 아님 외래어인가? 여러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런데 내용은 완전 블랙 코미디였다. 아, 웃기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비극적인 요소가 강하다. '하긴 하는 남자'일 뿐만  아니라 대학 시절 '운동' 좀 한 아버지가 되어서 딸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뭔가 제대로 하긴 해야하는데, 그게 맘대로 되질 않는다. 영 '공부  머리'가 없는 자식을 어떡하든 '대입'을 성사시켜야 하는데 말이다. 


'보미나래'라는, 웬만한 인생을 살지 않고는 이름의 무게를 견딜 수 없게끔 만든 딸자식의 이름. 그러나 현실은 엉망진창이다. 미국에 '대입명분'을 만들기  위해 나선 길이 '십대 미혼모'를 양산한 길이 되어 버리고. 운동 시절의 '대의명분'은 '대입명분'으로 수렴된 현실에서, 보통사람처럼 살아내야 하는 부모와 자식의 삶이란 게 너무나도 비참하게 그려진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적나라하다 못해 나체로 뛰어다니는 어떤 미친 놈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사족]* 

총 7편의 작품 중에 훈훈한 결말은 아무 것도 없다. 젊은 작가상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물론 현실을 직시하고 작가적인 책임감으로 사회 구석구석 숨어 있는 상처를 드러내야 하겠지만. 곪고 썪어 가는 현실을 거울에 반사하듯 리얼하게 그려내야 하겠지만. 한 편 쯤은 따뜻한 소재를 가지고 희망이 있는 내용을 보여주어도 좋지 않을까 - 하는, 얼토당토 않은 소망을 빌어본다. 너무 불편하고 어둡고 무겁고 아픈 현실만 보다 보니. 자꾸만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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