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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ul 24. 2019

영화 리뷰 [그 후]

The Day After, 2017

영화 리뷰 [그 후] The Day After, 2017


* 기본 정보


감독: 홍상수

출연: 권해효, 김민희, 김새벽, 조윤희  

개요: 한국, 멜로 드라마

개봉: 2017년 7월 6일

수상: 권해효(2017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남우주연상)


* 기본 줄거리


첫 출근날, 아름(김민희)은 사장인 봉완(권해효)의 헤어진 여자(김새벽) 자리에서 일하게 된다.

사랑의 노트가 발견되고, 봉완의 처(조윤희)가 회사로 찾아 오고, 아름은 헤어진 여자로 오해를 받는다. 그리고 결국 아름은 그날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된다.


* 영화 감상 노트


바람을 피운 한 남자(봉완), 그는 작가이자 출판사 사장이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 쓰고 지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이 남자를 둘러싼 세 여자가 나온다. 아내와 내연녀, 그리고 무심결에 앞의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게 된 뜻밖의 여자 아름이.


영화는 주로 인물의 대사로 전개된다. 책들이 둘러 쌓인 공간에서-꽃병과 옛스런 스테레오가 놓인 사무실 테이블을 마주하거나, 또는 중국집과 어느 술집에서. 주로 남자의 변명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가물가물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의 것이 되어 버리는 것들을, 그 당시에는 주섬주섬 어설프게라도 변명한다. 그의 치부를 마치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것처럼. 그 포장의 근거는 대담하게도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번역본, 민음사)이다. 마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 영화의 제목을 왜 <그 후>라고 설명하는 것만 같다.


바람을 피운 남자의 아내는 우리가 익히 상상할 만한, 익숙하게 예상되는 캐릭터이다.  

또한 내연녀는 또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기시감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물론 주인공인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세 번째 여자, 이 여자는 뜻밖의 여자다. 남자를 만난 첫날 그의 아내로부터 뺨을 거세게 맞는 ‘봉변’을 당하는 봉변녀가 되면서. 이 세 사람 사이에 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 모든 관계 속에서 그들에게 ‘뻔뻔하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고, 남자의 위선(또는 가식)을 가차없이 반박하면서 연기 같지 않게 뿜어내는 여자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간다.

그래서 그녀(김민희)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녀의 연기를 찍고 있는 사람도, 관객들도?


흑백의 화면 속에서도 몇몇 장면들은 지극히 선명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 아름다운 장면들은 대개가 롱테이크 기법으로 꽤 연속적이며 집중을 요한다. 특히 택시 창문을 내리고 겨울밤 눈을 감상하는 김민희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나는 김민희의 연기를 좋아했다. 어느 TV 드라마에서 그녀에게 매료된 뒤, 영화 <화차>, <우는 남자> 등에서 연기를 참 잘 하는 배우구나 마음에 들었고. 영화 <아가씨>에서는 그녀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그런 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모두 찾아 보았다.

그녀의 예쁨은 어떤 상황에서도 빛이 났다. 흑백 화면이든, 머리가 흐트러졌든, 멍때리듯이 사물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든, 히스테리적으로 반박을 하든. 그녀의 모습은 독보적으로 빛이 난다.


그러나 안타깝다. 그녀가 홍상수 감독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시간을 점령하듯, 다른 감독의 영화에서도 그런 시간으로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녀와 감독의 개인사적인 이야기, 사랑에는 이렇다 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남녀의 상열지사는 제3자가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기 마련. 영화는 영화로만 말하고 싶다.

외국 영화를 관람할 때, 나는 그 영화의 감독, 배우에 대한 어떤 사생활도 잘 모르고 본다. 오로지 영화만 보게 된다. 우리 한국 영화에서는 배우의 연기력, 영화의 메시지 등과 함께 팬심으로 보기도 한다.


오로지 이 영화는 권해효와 김민희에 대한 팬심으로 보았다.

이 영화도 홍상수 감독의 어느 영화들처럼, 찌질하지만 뭔가 아는 게 많은 듯한 남자 주인공이 나오고, 서사는 매우 심심하고 지루하고 일상적이며 어떤 단면을 포착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데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대사(때로는 자기 고백인 듯한 진솔한 연기와 함께)에 몰입되어 있고, 결국은 끝까지 보고 만다는 것이다.


뻔한 듯한 일상의 모습과 일화, 뜻밖의 장소에서의 만남, 내면의 갈등, 반복되는 술자리, 망설임, 절실함과 망각, 재회 등이 매번 등장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참 이상하다. 도대체 나는, 어떤 힘에 이끌려서 이런 영화들을 끝까지 보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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