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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Sep 29. 2019

도서 리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현실적인 그러나 환타지같은 따스함이 있어요 

도서 리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현실적인 그러나 환타지같은 따스함이 있어요


이 소설의 주인공 해원은 서울에서의 삶이 제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도망치듯 고향에 내려온다. 강원도 혜천읍. 그곳에서 다시 사람들을 만난다. 이모와 은섭과 동창생들, 그리고 각자의 사연을 품고 책방에 모여든 사람들. 그들과 함께 뜨거운(?) 겨울을 보내면서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이 훈훈하게 피어 오른다. 사람 냄새 진하게 풍기면서 착하고 아름답고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들. 매우매우 현실적이면서도 환타지(매우 실현 가능한)가 넘치는 이야기이 피어 오른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결국 나의 이 초가을의 서늘함을 따뜻하게 안아 주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해묵은 기억을 건드린다. 잊고 지내던, 하지만 실은 늘 수면 아래 간직된 기억들. (43쪽)      


그러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 이모, 친구 등- 해묵은 기억을 건드린다. 늘 수면 아래 간직되어 온, 언젠가는 수면 위로 불쑥 드러내고 말 기억들을. 

엄마가 아버지를 죽이게 된 일, 그래서 이모를 따라 혜천읍에 내려오게 된 일, 그 비밀이 학교에 퍼지고, 친구에 대한 배신감으로 외롭게 혼자 견딘 일, 그리고 또... 숨겨진 또 다른 사연들, 아픔들, 슬픔들이 해원을 괴롭힌다.      


...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언제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굿나잇클럽 여러분. 

그녀는 지금 같은 지붕 아래 잠들어 있습니다. 아까는 내 방에 들어와 책상에 놓인 구형 램프를 보고는 아름답다고도 말했습니다. 순간 행복해진 나는, 불현 듯 덜컥 무릎을 끓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불꽃같이 고백하기를... 

태양 아래서 역사가 되고 달빛 아래서 전설이 된다는 말이 있어. 나는 램프 아래서는 모든 것이 스토리가 될 거라고 언제나 생각해왔어. 알고 보면 이야기는 먼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거니까. (157쪽)     


그런데 은섭이라는 인물이 있다. 처음부터 해원이를 사랑했고, 변함없이 그녀와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은섭이가 있다. 은섭이라는 존재가 있어 해원이는 온전한 사랑이 된다. 은섭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치유이며, 사랑이며 배려이며 나눔의 아이콘이다. 


그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 내 남자가 (내 애인이) 이런 사람이었으면 한이 없겠다.” 등등 온갖 쓸데없는 현실적인 미련을 갖게 하는 인물이다. 은섭은 작가의 분신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작가의 바람(소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은섭이 살아가는 방식, 책방을 운영하면서 품고 있는 가치관, 책에 대한 이야기들, 비공개 일기글 형식, 소설에 관한 희망 사항들. 모두가 은섭을 대신하여 작가가 들려주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유익한 내용들이다.      


은섭과 그의 책방 '굿나잇책방', '책방 일지'는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또 언제 나오나 기다려진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서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또한 여기 소개하는, 독립출판의 책들 (아마도 작가가 상상적으로 만들어 낸, 또는 그런 식으로 만들고 싶은 책일 수도 있는) 너무나 신선하고. 앞으로 쓸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하게 되고.      


그리고 목해원의 무심한 이미지와 더불어 아크릴물감 냄새가 풍길 것 같은 날 것의 느낌도 좋고. 그녀가 그린 ‘시스터필드의 미로’는 혼자 마구마구 상상하며 이미지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리고 또 좋았던 것은 책방에 모이는 모든 사람들이다. 어쩌면 다들 그렇게 착한지. 정말 ‘착한 겨울 왕국’의 사람들이었다. 명여 이모의 친구 ‘수정’이라는 인물은 더없이 훌륭했다. 승호도 효진이도 귀엽고. 현지는 너무 어른스러워서 할 말을 몇 번 잃을 정도.      


해원의 앞으로의 생애에 은섭이 있어 다행이듯, 명여 이모에게 친구 수정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해원과 이모 사이의 비밀이 드러났을 때. 그들에게 은섭과 수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현실 속의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 같아서 마음 졸이고 몰입하며 읽고 말았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 하는 일이 잘 되지 않거나 실패하는 게 아니야. 농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게 제일 두려워.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농담이 안 나와서 그래. 너를 웃겨줄 말이 생각이 안 나서. (382쪽)     


그 사람을 정말 정말 사랑하면 그 사람이 웃는 것을 보는 것인 것 같다나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위의 은섭의 말 중에 “농담이 안 나와서 그래” 하는 문장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와서 이 문장을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웃겨줄 말이 생각이 안 나는 경우, 농담이 없는 상황은 정말 심각한 것이다. 아픈 것이다. 아, 은섭이가 너무 아프겠다. 그 상황에서 나는 은섭이가 되고 말았다.      


정말 과몰입했다특히 은섭에게.     


한마디로 이 책은, 연푸른 채색의 버들잎이 그려진 책표지가 이야기의 방향성을 다 말해 주었다. 여기 나온 이들의 결말은 화해, 싱싱함, 푸르름, 행복, 희망이다. 모두가 같이 다 잘 사는 방식에서 말이다. 그래서 시청 직원인 ‘장우’의 역할도 아주 크다. 지역 사회의 발전도 ‘관계로서의 삶’에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여 이모가 오랫동안 숨기고 있었던 비밀과 죄책감을 밝히면서 해원과 부딪히는 과정, 나름 화해라고 할 수 있는 장면들이 날카롭게 모서리가 충돌하는 방식처럼 보여서 좋았다. 부딪힐 것들은 한번쯤 부딪혀야 모서리가 결국 둥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바람직하니까 말이다.      


한편, 낯설지만 따뜻하고 예쁜 낱말들, '곤포', '윤슬', '귤락' 등 새롭게 어휘를 발음해 보고, 뜻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 (28쪽) 곤포: 거적이나 새끼 따위로 짐을 꾸려 포장함. 또는 그 짐. 짚을 발효시키는 통

* (87쪽) 윤슬: 물결에 햇빛이 비쳐서 반짝반짝 빛나는 현상.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 (107쪽) 귤락: 귤 과육에 붙어있는 하얀 그물모양의 껍질.             


그리고 이도우 작가가 소개해 주는 책들, <집에 있는 부엉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등도 살펴보려고 한다. 아, 눈물차 레시피. 이건 나도 어느 날, 분명 그런 상황이 온다면, 꼭 따라해 볼 작정이다.      


또한 내가 만약, 만약에 말이다, 은퇴 후에 작은 동네 책방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 책을 꼭 참고하리라 – 다짐한다. 내가 ‘은섭’이가 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작가가 제안하는) 그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 책방 분위기, 책방의 독서모임, 책방 일지, 블로그 운영, 독립출판 등은 흉내내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내 심장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던 몇몇 문장들.     


해원은 또 한 번 풋 웃어버리고는 그의 등에 얼굴을 묻고 조금 울었다. 가슴속에 박혔던 가시가 스르르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398쪽)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고통을 낫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늘 거기 있고, 다만 거기 있음을 같이 안다고 말해주기 위해 사람들은 책을 읽고 위로를 전하는지도 몰랐다. (401쪽)     


작가는 연륜이 묻어나는 문장을 구사한다. 그런데 그 문장의 감각이 젊다. 노련함과 유머와 젊음이 어우러진 간결하고 감각적인 문장들이 차고 넘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안에 있던 큰 가시 하나가 빠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이었을까. 내가 책에 고개를 파묻고, 현실적인 것들을 외면하는 이유를 하나 터득해서일까.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따뜻한 (실제적인)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예스24블로그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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