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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Nov 26. 2019

도서 리뷰 [내 어머니 이야기] 4부작 세트

내 어머니의 역사 , 우리의 역사가 되다

도서 리뷰 [내 어머니 이야기] 4부작 세트 (마무리 리뷰)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점들.      



-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역사가 된다. 

- 내 어머니, 모든 어머니들의 체험은 신선하다. 

- 내가 살아가는 이 현장은 늘 놀라운 경험의 연속이다. 

-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어도, 그 평범함 속에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 흐르고 있다.      


이제, 내 어머니 이야기 4권의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만화 자체가 판화적인 기법으로 투박하고 음영이 깊다. 흑백의 그림체가 주는 묵직함이 한 생애의 삶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또한 깨알같은 글씨체로 전해지는 서사는 장강長江의 흐름과 같다. 

어떤 부딪힘을 만나도 유유하게 흐를 수 밖에 없다. 강은 그 자체로 거센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 자체가 가볍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저자)의 엄마 이복동녀씨와 딸이 주고 받은 꼬박 십여 년 동안의 대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흐른다. 그 속에 흐르는 80년 생애의 한 사람의 삶과 고향, 가족, 그리고 역사적 배경. 그 모든 것을 쏟아낸 작가의 필력에 감탄한다. 아니 먼저, 그 이야기 소재를 꼬박 십 여년 동안 쏟아낸 어머니의 구술이 더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어머니의 삶과 그것을 기억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구술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탄생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엄마의 생애와 이야기는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오늘의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겠다. 이야기를 듣고 쓰고 그리고 하면서 작가가 힘을 얻듯이 말이다. 우리 독자는 또 그 이야기를 읽고 가슴에 새기면서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야기 속에도 저자를 포함하여 살아 있는 누군가의 생애가 들어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이 이야기 책은 1900년대부터 거의 현재까지 우리 민족의 삶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거칠고 생경한 함경남도 지방 언어로 구술되어 약간의 번역체(오늘날의 표준어)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언어학, 민속학으로서의 고유 자료가 될 수 있으니, 가치롭게 수용하면 될 부분이고. 어렵게 얘기를 부추기고, 꼼꼼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구술한, 딸과 어머니의 노고와 용기를 우리는 또 이야기책을 읽으면서 고스란히 느끼고 품을 수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장면 중에서 나는 유독, 음식 만들기와 이불 꿰매기 등등 현재의 딸과 어머니가 함께 하는 일에서 뭉클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그런 추억들이 부족하거나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여, 자녀들이여,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함께’ 먹거나 만들거나 무엇이든 하면서 시간을 보내십시오, 라고 말이다.      


안 계시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4권의 마지막 이야기. 다시 읽어도 가슴이 아린다. 어머니는 이제 곧 떠날 사람으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떠나 보내야할 사람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읽혔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대목에서 내 서러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다.)     


- 죽을 때 입는 옷. 나는 삼베옷이 싫다. 비단옷 입고 싶다이.

그래 비단옷 입고 싶어?

- 동대문이서 한복집하는 권사 있잖아. 그이한테 한 벌 맞춰야겠어.

- 언제 그러자 

- 그리고 두루마기는 ...

- 죽을 때 두루마기도 입어?

- 두루마기도 입어. 두루마기는 전이 입던 벽돌색 두루마기 있잖아. 그기 아까우니까. 그거 고쳐서 좀 크기 만들어놓으면 되는데. 

- 맞아 그 두루마기가 좀 아깝긴 해. ... 그런데 비단옷이 잘 썩을까?

- 하기사 썩으면 어떻고 안 썩으면 어때. 이미 죽었는데

- 그러기 말이다. 썩은들 안 썩은들 어떻니야. 

- 그 준비는 나중에 하고 이번 겨울에 덮을 엄마 이불부터 하자. 

- 그럴까? 말 나온 짐에 할까. 지금 할까? 너 시간 괜찮니야?

- 엄마 나는 여기서부터 꿰맬게. 

- 그럽세 우리 딸.

...


 (딸이 이불 위에 벌러덩 눕는다.) 


- 야아 이불 꼬매다 그기 뭐하는 짓이니야. 

- 아, 좋다, 부드럽다. 아, 폭신폭신해. 엄마도 이리 와라.      


(아... 눈물이 펑펑 쏟아 지고 말았다. 돌아가신 고모도 엄마도 떨올라서. 나도 그때 그 시절에 그렇게 이불 위에 벌러덩 눕곤 했는데. 지금 곁에 그들이 안 계신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찌 그리 빨리들 가셔버렸는지.)          


엄마가 자는 사이 나는 어디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깨어났을 때 떠날 것이다. 엄마랑 합체도 해봤으니 이제 떠나야 할 때다. 엄마가 자는 사이, 나는 어떻게 잘 떠날지 궁리를 한다. (230쪽. 4권의 이야기 마침)     

함경남도 북천 출신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어떤 부모 밑에서 살았고. 어느 고향 품에서 살았는지. 그리고 전쟁을 치르면서 남한에 내려와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생생한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사책 아닌 역사책 같은 민족의 서사. 


한 생애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역사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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