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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Dec 18. 2019

영화 리뷰 [벌새] 쉽게 울지 않는 벌새들

배우 김새벽을 만나는 기쁨

영화 리뷰 [벌새] 아프지만 단단한, 그래서 쉽게 울지 않는 벌새들!!!         

 

영어 제목 : House of Hummingbird, 2018     


감독_ 김보라

출연_ 박지후, 김새벽 

개봉_ 2019년 8월 29일 (책 <벌새>의 발행일과 동일함)

개요_ 한국/ 드라마/ 15세 관람가          


[영화 감상]     


길이 5센치 정도 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멀리 날기 위해 수많은 날개짓을 해야만 하는 작고 가려린 새.      

이 영화에서 벌새로 비유될 수 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벌새는 누구일까? 처음 제목을 접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벌새가 어느 한 사람만을 지칭한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책으로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보면서는 더욱 확고해졌다.      


작고 단단한, 부드럽지만 상처가 많은, 차가우면서도 온기가 흐르는,

아프지만 쉽게 울지 않는 그녀들. 은희, 수희, 영지 선생님, 은희 엄마...      

시간적인 배경으로는 1994년 여름과 가을 사이, 공간적으로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의 어느 경계 지역쯤 되지만. 


오늘 현재의 시공간으로 해석으로 그닥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일상이 보여진다. 

이런 맥락에서 다루는 벌새는 14세 중학생 소녀 ‘은희’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은희의 시선, 표정, 대사, 행동들이 중심으로 진행이 되고 있지만. 나는 ‘영지’ 선생님, 은희의 엄마, 은희의 언니 ‘수희’, 은희의 친구 ‘지숙’에서도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 오히려 은희가 바라보는 그들에게 시선이 더 많이 머물렀다고 해도 좋겠다. 특히 영지 선생님과 은희의 엄마. 그들의 표정과 말과 행동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왜 그랬을까.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 속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표정과 시선과 호흡과 또한 그것들이 포함되어 있거나 마주하고 있는 장면과 배경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될 때 느끼는 소름끼치는 전율일 것이다. 마치 차가운 얼음장에 손이 쩍 달라 붙는 것 같은 촉감의 기억같은 것.      


이 작품은 현재 다양한 국내외 영화 시상식에서 각본상 및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고 있다. 현재 40관왕이 넘는다는 정보를 보았다. 그런데 왜, 외국인들은 이 작품에 넋을 잃고 빠져드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어찌 보면 이 대목이 이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겠다.      


1994년.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우리 근현대사에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난, 내 개인사에서는 둘째가 태어난, 그야말로 잊혀질 수가 없는 한 해이다. 그런 1994년을 영화로 만난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를 안고 간다는 것이며, 조금은 불편한 진실을 대면한다는 일이다. 그러니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영화 관람 자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영화를 외국인들은 어떻게 보았고, 무엇이 전달되었을까. 아주 많이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빨려들고 있었다. 어떤 사건이나 갈등을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영화적 장치로 다루지도 않는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만한 경험들이 펼쳐지고, 어떻게 보면 그저 우리 근현대사의 장면 하나 하나를 가만히 찬찬히 들여다 보는 방식인데. 가만가만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는 느낌인데. 

특히 아파트 외관, 집안, 거실 등이 사각 프레임 안에서 정제된 듯이 놓여 있는 공간들. 숨 막힐 듯이 고요하게 흐르는 장면들.      


그야말로 왜 빨려 들었을까. 왜 넋을 잃고 보았을까. 

배우들이 연기 같지 않은 연기로 배역에 녹아 있어서? 장면 장면 하나에 여운이 남아서?     

아, 김새벽 배우의 표정, 눈빛, 서늘하면서도 온기가 흐르는 묘한 이미지. 내가 여우주연상을 줄 수 있다면 모든 여우주연상을 김새벽 배우에게 주고 싶다.      

외국의 영화 관람객들은 1994년이라는 한국의 현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과 맥락을 어떻게 흡수할 수 있었을까. 김새벽 배우의 힘이 컸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물론 탄탄한 구성과 배경 이미지의 배치 등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녀의 섬세하면서도 차가우면서도 온기가 흐르는 대사, 눈빛, 얼굴빛, 손떨림 등등은 너무너무 인상적이었다.      


정말 영화를 본 사람만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시나리오를 가장 풍성하게 입체적으로 입혀주는 인물이 ‘영지’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크다. 물론 ‘수희’와 은희 엄마의 몫도 크겠지만. 어쩐찌 영지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감독의 얼굴이 있을 것도 같고, 은희가 성장하면 저런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배우고 싶은 어떤 것을 그녀가 너무 많이 지니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와 배우를 만났다는 기쁨에 영화 보는 동안(아니 끝난 후에도 여운으로서) 충만감이 넘친다.      


앗, 잠깐, 이 영화에서 1994년 10월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상황과 사건을 다루는 물리적인 시간은 매우 짧다(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러나 그 충격과 파장과 여운은 어마어마하다. 주인공 은희의 성장통, 통과의례와 같은 시점을 완전 제대로 마련해 준다. 그래서 이 거대한 세상의 사건은 인간의 서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또한 실감하게 해 준다.      



은희가 침샘에 염증이 생기고 그렇게 커진 혹을 제거하고 생리대 크기처럼 보이는 붕대를 얼굴에 붙이고 가는 모습에서, 소설 <오발탄>의 주인공이 발치하는 과정들이 연상이 되었다.      


이 영화는 자신이 아프거나, 주변 사람이 죽거나, 세상의 다리가 무너지거나, 깨지거나 부서지거나 도려내야만, 그런 시련과 고통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일 또한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런 성장통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런 경험들이 시대를 마주하게 한다는 사실을 섬세하고 고요한 이미지로 보여 준다. 그래서 가만가만한 위로가 될 수 있었을지도. 그래서 여운이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기본 시놉시스 – 영화사 제공]     


나는 이 세계가 궁금했다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     


[영화 벌새, 배우 김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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