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엄마 음식... 생각나는 게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멸치&시래기 조림, 이것도 음식일까

by 찻잎향기

엄마 음식... 생각나는 게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멸치&시래기 조림 - 이것도 음식일까?


엄마 음식... 굳이, 기필코 며칠을 머리 굴려 생각해 본다.

그래도.. 한결같이 떠오르는 음식 하나! 이걸 음식이라고 할 수나 있을까마는.

그래도 한 가지가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른 음식은 멸치의 구수한 맛 아니 비릿한 맛이 강력하게 풍기던 시래기 조림이다.

무슨 음식이라 명명할 수도 없는 국적 불명의 이 음식.

그래도 내가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아주 큰 굵은 멸치와 시래기만 있는 짭조름하고 비릿한. 그래도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기만 하면 입안에 침이 고이고 구수한 된장 맛과 생선을 구운 듯한 향이 내 주위 온 공간을 가득 채운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정확한 시절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도 이 시절이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내가 엄마하고 함께 산 나날들 중, 가장 처음으로 시작되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전까지는 어디 살았냐고? 남의 집에 살았지. 8살부터 14살까지는 고모네 집에서. 그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부모님과 짧게 한 공간에서 살았지. 그리고 8살 이전은... 남의 집 행랑이라서 그런가, 아예 기억을 지워버렸는지, 구체적인 공간이 형성되지 않는다.


부모와 함께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부모라는 사람들과 한 밥상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다. 짠 김치, 어떤 생선 같은 것의 구이 하나, 시커멓고 짠 콩자반... 이런 반찬들이었던 같다. 며칠을 이렇게 먹은 것 같다.

손으로 말을 만들었다. "맛난 거 먹고 싶어" 밥상 위의 반찬들을 가리키며 두 손을 엑스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입으로 손으로 맛난 거 먹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며칠 뒤, 왕 멸치가 듬뿍 들어간 시래기 조림인지 찌개인지가 올라 왔다. 아, 이게 무슨 음식이란 말인가. 실망스러워서 시래기 몇 가닥 집어 먹고 만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때 먹은 그 시래기의 맛이 자꾸만 입안에 맴도는 것인지. 그로부터 벌써 40년도 훌쩍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내 입안에 그 맛과 향이 번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집은 가난하였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어떤 상황, 어떤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겠지만. 우리집을 남들이 말할 때면, 꼭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라 하였다. 명절 철이 돌아오면 동네 사람들이 햅쌀이라며 좋은 쌀이라며 흰쌀을 한 바가지씩 가져다 주던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정부에서 주는 배급쌀만 안 받아도 나는 성공한 사람일 거야'.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람의 말소리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보통의 정상적인 어휘로는 우리 엄마를 '청각장애인'이라 한다. 그냥 우리 동네 방언으로는 '버버리'(벙어리)라고 불렀다. 그래도 곧잘 내 입모양을 따라하면서 비슷한 의미를 말하곤 하셨다.


듣지 못해서였을까. 엄마가 해 준 대개의 음식이 맛이 없었다. 음식이라고 말하기에 정체가 모호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애매한 맛과 형태의 음식이 종종 나온 이유를 시간이 꽤 흐른 성인이 된 뒤에야 알았다. 내가 결혼을 해서 가족들에게 음식을 내놓기 시작하면서부터일까. 청력이 이상이 있으면 미각도 손상이 된다는 것을. 엄마는 엄마 나이 여덟 살쯤 청각을 완전 손실하였다. 그러니 엄마도 어린 시절 엄마의 입맛에 남아 있는 감각에 의존에서, 그리고 더하여 세월과 경험이 만들어 낸 변형된 입맛에 의해서 음식을 만들었겠지.


내 나이 8살 이전까지, 엄마와 같이 산 기억이 없다. 그저 주변 사람들의 말들과 정황을 연결하여 내가 상상해 놓은 장면뿐.


그런데도 엄마가 해 준 음식. 이런 문장을 만나면. 나는 억지로 어떡하든 음식을 떠올린다. 나도 그런 것쯤, 추억이 하나쯤 있는, '따뜻하고 정상적인 사랑을 받은 가족이다'라는 사실을 기필코 증명이라도 해내고 싶은 욕망처럼.

그러나 억지로 떠올리려던 노력과 시간이 무색해질만큼. 시래기 조림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게 그렇게 강렬한 맛이었나. 아님 기억 창고 밑바닥에는 그 음식이 맛있었다고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


문득 이 음식이 생각날 때면, 엄마 살아 생전 내가 결혼을 하면서 함께 모시고 살던 시절, 엄마가 몇 차례 이것을 해 주셨다. 물론 나의 요청에 의해서 말이다. 내가 멸치와 시래기를 내 놓으면. 으레 그것인 줄 알고 해 주셨다.

물에 실컷 불려서 부드러워진 시래기를 꼭 짜서, 집된장과 참기름과 화학조미료를 한 스푼씩 넣고 조물조물 빨래 빨듯이 무쳐낸 후, 그 위에다가 다시멸치 한 웅큼 듬뿍 올리고 쌀뜨물이 있으면 그것으로 육수로 조금 부어서 자작자작 끓인다. 졸이다가 물이 줄었다 싶으면 쌀뜨물 한 국자 더 붓고, 또 졸이다가 한 국자 더 붓고. 그렇게 만들어 낸 시래기 조림.


그런데 어쩐지 그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먹었던 맛이 아니다. 강렬하게 입안에 감도는 구수한 알맹이가 빠진 것 같았다. 가난이 빠져 나가서 그런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13년이 지났다. 요근래 가끔, 엄마가 아주 사무치게 떠오르는 날에는 시래기 조림을 만들어 본다, 오로지 나 혼자 먹자고. 화학조미료 대신에 진한 다시마 육수를 한 국자 넣고. 경제적인 여유도 고명 삼아 듬뿍 얹어서 함께 끓여 본다. 그러나 그 맛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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