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날의 회상
- 함박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날의 회상
부부는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창 밖을 보고 있다.
아내_ 자기, 그 날 기억나?
남편_ 언제?
아내_ 이렇게 눈이 탐스럽게 하루 종일 내리던 날.
남편_ 언제를 말하는 거야?
아내_ 우리 대학교 3학년 때 겨울. 함박눈이 엄청나게 쏟아지던 날.
남편_ 아, 그 영화 찍자고 하던 날!
아내_ 맞아. 그 영화 러브 스토리 흉내내자고 한 날.
남편_ 아, 러브 스토리..
아내_ 아마 지금보다 더 쌓였었겠지?
남편_ 그랬지. 우리가 손 잡고 벌렁 누웠을 때 솜이불 같았지.
아내_ ... 그날 첫키스도 하고...
남편_ 그랬나.. ㅎ
아내_ 뭐야, 잊은 거야?
남편_ 아냐, 잊기는.
아내_ 그때 그런 얘기도 했는데.
남편_ 무슨 얘기?
아내_ 자기 졸업한 뒤에 군대 가면. 내가 면회를 열심히 가겠다고 했지.
남편_ 그때 발령이나 받고 군대 간다고 졸업 후까지 미뤘었는데.
아내_ 맞아, 그래서 자기 졸업하고 3월에 발령 받고. 5월에 바로 군대를 갖지.
남편_ 그때 내가 스물 네 살이었지.
아내_ 그때는 늦은 나이 아니었었나?
남편_ 맞지. 요즘으로 따지면 아주 이른 나이지만. 그 당시는 군대를 일찍 간 편이니까. 꽤 늦은 나이였지.
아내_ 늦게 가서 고생 많이 했다고 했는데.
남편_ 고생 많았지... 맞기도 많이 맞고...
아내_ 그런데 그거 알아? 나도 고생 많이 한 거?
남편_ 무슨 고생?
아내_ 내가 스무 번도 넘게 면회 갔잖아?
남편_ 아.. 스무 번.
아내_ 뭐야, 그것도 잊은거야?
남편_ 아냐... 어떻게 잊어...
아내_ 에공... 내가 미쳤지.
남편_ 미치긴. 뭐가. 당연 한거지.
아내_ 뭐, 당연한 거?
남편_ 아냐 아냐. 농담이야 농담.
아내_ 아이고. 훈련병 시절까지 합치면. 스무 번도 훨씬 넘지. 입소식, 퇴소식. 내가 다 간 거 알아?
남편_ 알지. 아이고 마눌님! 정말 고생했어요.
아내_ 아, 정말 고생한 걸 알기나 아는지. 그 먼 길을. 저 북쪽 경기도 연천에서 전곡까지.
남편_ 차를 몇 번이나 갈아 탔다고 했지?
아내_ 여섯 번인가?
남편_ 장수에서 출발했다면 그 정도 되지.
아내_ 장수에서 전주. 전주에서 서울. 서울에서 의정부. 의정부에서 연천. 연천에서 전곡. 다시 부대까지. 에고 에고 미쳤어 미쳤어. 정말.
(잠시 침묵)
남편_ 고생했어...
아내_ 으그그.... 자기 군대 이십 육개월 동안. 나도 마찬가지로 면회 짬밥 이십 육개월이었다.
남편_ 그런데... 왜 매달 온다고 했는데. 몇 개월이 빠졌지?
아내_ 아.... 이 사람이 정말!!
남편_ 무슨 일 있었던가?
아내_ 아~~~~ 그걸 잊어. 아버지 돌아가셨었잖아. 자기는 전방 그 뭐신가에 들어가 있어서. 나오지도 못하고.
남편_ 아아... 참 그랬지.
아내_ 아아 참? 나는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12월부터 4월까지인가. 심신이 망가져서. 못 갔었는데... 아하 참? 정말 이 사람이!
남편_ 아냐 아냐... 그랬어지. 미안 미안해. 깜빡 했어.
아내_ 악~~~~~~ 이런 남자한테.. 내가... 정말. 으악~~~~~
(비명같은 한탄, 연속)
아내_ 나, 의리 한 번 정말 끝내 주지 않아?
남편_ 사람은 의리지. 의리!
아내_ 뭐, 정말 웃기시네요.
남편_ 하. 그런가.
아내_ 내가 그 첫 면회만 생각하면...
남편_ 왜? 좋았었는데.
아내_ 좋기는. 그래 자기는 좋았겠지. 나는 얼마나 어색하고 쑥스럽든지. 그 소대장인가 누군가 아니었으면..
남편_ 소대장님? 아, 그분. 좋은 분이셨지. 그 분이 아마 잘 방을 얻어 줬었지?
아내_ 그래. 그 분이 그 첫 면회부터 시작해서. 많이 도와 주셨지. 내가 방도 혼자 못 구할 때마다 부대 옆의 어떤 시골집 같은 문간방을 얻어 줬었지. "잘 주무시고, (다음 날) 아침에 조심해서 가셔요"하시면서. 아마... 자기 일병 달 때까지 그러셨나? 상병달 때까지 그러셨나?
남편_ 아마 그랬을걸.
아내_ 우리 둘 다 참 어설퍼 보이셨겠지. 암튼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분 덕에 덜 힘들었었던 기억이야.
남편_ 나이 든 여자가 먼 길을 찾아 와서, 더 안 쓰럽게 보이셨나?
아내_ 아니 뭐라고? 나이 든 여자?
남편_ 그래 그때 그러셨어. 그 당시 보통 면회 오는 여자들이 이십 대 전후로 어려 보이는데. 너는 직장인인데다가. 나이도 스물 다섯이 넘었고.
아내_ 그래요. 정말 나이 든 여자가 찾아가면서 고생이 많았지요. 그것도 스물 일곱살까지. 에그. 미쳤지 정말.
(또 다시 침묵)
남편_ 군대 동기들은 잘 있나 모르겠다.
아내_ 그 동기들 우리 결혼식 때 많이들 왔는데.
남편_ 그 뒤로는 연락이 잘 안 되네.
아내_ 그럼 지금이라도 한 번 찾아 봐.
남편_ 그럴까...
아내_ 내가 면회 갔던 시절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나도 함께 만날거야.
남편_ 흐흐 그러셔요. 안 말려요.
아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리고 어제 남편과 거실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그녀는 그가 훈련소로 입소하던 1989년 5월23일 그날부터, 제대하던 그날 1991년 8월1일까지. 26개월 이상을. 수많은 편지와 용돈을 보내고 한 달에 한 번 치르는 그날처럼 면회를 다녀 오곤 했다. 한 번의 왕복 거리는 12시간이 훨씬 넘는 거리였다. 무슨 정성과 오기였는지 모른다. 매달 월급을 타고 난 뒤, 그 다음주 토요일 오후면. 전주행 버스에 올랐다. 1시쯤 출발을 하면. 연천 전곡에 밤 8시가 훨씬 넘어서 도착하곤 했다. 어쩔 때는 차편 연결에 재수가 없어서. 밤 늦게 도착하고 했다. 그가 이병과 일병 시절에는 면회도 수월하지가 않았다. 절차가 너무나 까다로왔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소장님인지 누군가가 홍길동처럼 출동해서 도와 주었다. 왜 그랬을까? 그야말로 우리 두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남자는 자대에서 늦은 나이에 고생을 하고, 여자는 먼길을 차를 갈아 타고 물 건너 산 넘어 오느라 중늙이가 되어 보여서, 두 사람이 몹시 안쓰러워 보였었을까. 그 속내는 정확하게 알 일이 없다. 그저 그 어색한 상황과 시간이 무색해서. 염치없게도 그 사람의 도움을 넙죽넙죽 받아 들였을 뿐이다.
오로지 한 남자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의무적인 편지를 보냈다. 오로지 의리라는 이름으로. 군대에 가 있는 동안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일은 없을 거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그 의리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서 한 달에 한번 필수적 코스인 면회를 신청했다.
이병 시절에 면회 갔을 때부터 병장 시절에 면회 갔던 순간까지. 면회에서도 계급이 있고. 그것을 실감하는 체감 온도가 다르다는 것을, 면회 순서에도 짬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면회 가 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그 면회의 짬밥. 때로는 느꼈던 그녀의 서러움을 남편은 알 수가 없다. 그녀가 아무리 기막힌 수사와 비유로 설명을 한다해도. 그는 모를 일이다.
스무 살 적 시작한 사랑과 그 의리를 다하기 위해서. 그녀는 참 정성스럽게 매주 편지를 쓰고 면회를 다녀왔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변함없을 사랑이었을텐데. 그렇게 시간의 투자와 육신을 학대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의리를 지키려는 그녀는 무식한 사람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전라북도 장수에서 경기도 연천의 전곡까지 차를 여섯 번이상 갈아타면서 면회를 갔던 그 고단하고 지치고 힘들었던 시절을. 그녀는 그 시절 동안 내색 하지 않았다. 그 내색의 표현도 사랑의 깊이를 더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때 그녀는 몰랐다. 참고 감추는 것만이 사랑이 아님을. 그때는 몰랐다.
오히려 나이가 오십이 넘은 여자는 알 것 같다. 고통과 서러움을 간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갈 수가 없어", "면회실이 끔찍했어", "면회 오기 힘들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더욱 외로웠어" 이런 말들을 그 당시에 솔직하게 꺼내 놓으면서 함께 정서의 공감을 만들었어야 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공감하고 나누고 서로 위로하는 사랑이 더 깊고 넓은 사랑임을 잘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는 알고 있다. 참고 감추고 혼자 견디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매달 면회를 다녀와야 했던 의리녀의 뜨거운 심장처럼, 오늘도 하루일과의 배경처럼 그를 사랑하고 있지만. 이제는 "힘들어", "오늘은 안 돼", "외로워" 라는 말들을 솔직하게 가감없이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며, 사랑하고 있다.
매일매일 오래오래 죽는 날까지 사랑하고 싶어서. 솔직한 사랑법을 행하며 살고 있다. 사랑할 시간을 떼어 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