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딸의 아들과 엄마의 만남
1.
엄마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엄마는 벙어리였다.
"아쭌아"
내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아쭌이 아니야, 강윤이야, 강. 윤!"
내 목소리를 죽이고 내 입모양을 크게 하면서 한 음절 한 음절 또박또박 가르쳐 주었다.
내가 엄마를 향해 말을 가르칠 때 엄마는 나를 똑바로 쳐바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눈을 부릎 뜨고 화를 내었다.
"아. 쭌. 아니고, 강. 윤!"
"강. 윤. 해보라고~ !!!"
이렇게 해봐, 라는 듯이 입을 위 아래로 크게 벌려서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입모양으로만 말을 가르쳤다.
그리고 끝에는 늘 버럭 소리를 질렀다.
2.
엄마는 내 아이를 참 좋아했다.
엄마가 내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사업이 내 아이를 돌봐주는 일인냥, 절대 절명의 사명감을 가지고 내 아이를 돌봤다.
그리고 엄마 생애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장 잘 생긴 남자가 강윤이가 되었다.
3.
내 뱃속에 연緣이 되어 태어난 아이.
내 몸에 들어오고 석 달이 다되어 가도록 착상이 어려워서 유산의 위험이 컸던 아이.
그 겨울 대천 해수욕장에서 겨울 바다에 휩쓸려서 그대로 쓸려가 버렸을 아이.
악착같이 떨어지지 않고 질기게 탯줄을 붙들어 잡았던 아이.
그렇게 연이 되어 내 뱃속에서 열달 동안 어렵게 견뎌낸 아이는 사내 아이였다.
그 아이를 엄마는 미친 듯이 기다렸다. 뱃속에 있는 열 달 내내
"언제 나오나, "언제 나오나" 를 연신 외치면서 나의 산달과 출산 예정일을 기다렸다.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쳐 놓고 날마다 내가 출산하는 그날만이 오기를 기다리던 나의 엄마 "옥금"씨.
옥금씨는 내가 강윤이를 안고 들어서던 그날 그 몇 년 동안 가장 크게 가장 환하게 웃었다.
"우왕아, 아들 좋다"
"우왕이 아니고 숙. 영."
애를 낳고 삼일 만에 집에 돌아 와서도 엄마에게 고작 내가 하는 첫마디가 내 이름 발음을 정정해 주는 일이다.
수고했다, 애썼다, 고생했다, 애초에 이런 말을 들을 거라는 기대도 없었지만.. "우왕아"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꼭지는 돌아버리고 말았다.
애를 낳고 들어온 딸에게 고작 애미가 하는 말이 "우왕아" 라니...
슬펐다. 울고 싶었다. 엄마에게 미친듯이 소리 지르고 울고 싶었다.
나를 한번이라도 위로해 달라고. 나를 한번이라도 안아 달라고. 속상했다.
안방에 들어와서는 강윤이를 내려 놓고 하염없이 울었다. 소리없이 울었다. 내내 울었다.
엄마가 들어올까봐 방문을 걸어 잠궜다.
애를 낳고 그 애를 보고 자꾸 울면, 평생 울 일이 많아진다는 속설도 무시하고 내내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소리 없이 울면 명치가 더 아파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염없이 내내 울었다.
나는 왜 엄마를 "엄마" 라고 부르지도 않고
엄마는 왜 나를 "숙영"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어찌 엄마라는 사람은 나에게 엄마로서 "위로"라는 것도 할 줄도 모르고.
그런 나는 왜 엄마에게 한 번도 곁을 내어 주지도 못하고. 속상했다.
4.
엄마는 나와의 연緣으론 많이 웃지 않았다. 나에게 혼나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낳아 준 당신의 손자 강윤이하고의 연緣 속에서는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해 하고 많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자식인 냥 물고 빨고. 강윤이가 있어서 좋았고, 강윤이가 예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고, 정량을 재서 분유를 타서 먹였고.
나보다 더 정확하게 아이의 상태를 살필 줄 알았다.
다행이도 아이는 잘 울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잠이 와도 어디가 불편해도 아이는 보채거나 울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엄마가 아이를 늘 살피고 보살폈던 때문인 것 같다.
분유를 먹일 때는 그 시간을 지켜서 미리 분유를 타 놓았다가 먹이고, 언제나 오줌을 쌌거나 똥을 싸고 난 후는 오래 지나지 않아서 바로 기저귀를 갈아 주었고. 엄마는 호시탐탐 아이의 기저귀 상태를 살폈다.
그래서 아이의 기저귀 상태는 늘 청결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이가 내 방에 와서 밤에 잠을 자기 전까지,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출근하고 퇴근하기 전까지.
아이는 오로지 엄마의 연緣으로 엄마의 것으로 존재하며 엄마의 보살핌과 정성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아이 강윤이는 누가 보아도 어디를 내 놓아도 잘 깎아놓은 하얀 알토란 같았다.
하얗고 반듯하고 정갈하게 생겼다. 엄마는 그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누가 봐도 잘 생긴 아이. 그게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 아니 집착.
그래서 엄마는 강윤이와 함께 있는 그 시간에는 자신의 존재가 빛이 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너무나 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강윤이가 엄마가 함께 있어야 할 시간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강윤이를 양보하지 않았다. 양보해서도 안 되었다. 이미 강윤이는 엄마의 것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래서 강윤이는 내 연으로 생명을 얻고 태어나서는 엄마의 연이 되어 버렸고
엄마에게 생애 보람과 기쁨을 안겨 준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