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09. 딱따구리의 노래

엄마의 소망

by 찻잎향기

09. 딱따구리의 노래

_ 엄마의 소망



딱따구리의 노래

- 소설 『마요네즈』를 읽고 -


엄마를 쪼지 않으면서 내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가,

우리는 다른 둥지에서 다른 부리질로 길들여진 두 마리 딱따구리 같았다.

- 소설 ‘마요네즈’에서



마요네즈 사건을 기억하는 소설 속 그녀의

껍질을 깨지 않으려는 습벽은

곧 나의 상처였다.


당신을 매양 거기라 부르며

벽을 쌓아 거부하려던 몸짓은

깊은 골을 만드는 못질이며


현관문 굳게 걸어 잠그는 그림자 짙은

모진 무덤이었으며

아침마다

현관문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 나가던

질긴 모친의 연(緣)은

언제나 세상살이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 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야?

- 나도 엄마가 되는 거야?

- 그러면 엄마가 할머니야?

- 다음에, 그러면, 내가, 엄마에게 소리 지르는 거야?


그러나, 그칠 줄 모르고 되풀이 되는

다섯 살배기 딸아이의 선문답 앞에선

고개 숙이고 못난 당신의 딸일 수밖에.


더 이상 아픈 부리질로

다른 둥지의 딱따구리로 남을 수 없음이고

못난 못질로 파헤쳐진 유년의 기억

그림자 고운 무덤에 담아 버릴 터이니


이런 나 아닌 고운,

엄마의 엄마로 다시 태어나리라.





엄마의 소망은,



엄마는 걷고 싶었다. 뛰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멀쩡한 다리로 화장실까지만이라도 자신의 온전한 다리로 걷고 싶었다. 당신의 팔다리, 사지 육신을 멀쩡하게 쓸 수 있는 것이, 당신의 가장 큰 소원, 단 하나의 욕망이었다.

테레비 속 노인네들은 너무나 잘 걸었다.


- 잘 걷는 노인 배우들을 섭외했으니 그렇지.


엄마는 테레비 속 세상을 보면서, 세상 모든 이야기를 배웠다. 그 속에서 보여지는 세상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들리지 않고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어떡하든 이해가 되고, 엄마가 짠 각본대로 스토리가 맞아 떨어지는 세상. 듣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세상을 다 이해하듯이 얘기했다. 보고 듣는 우리보다도 더 먼저 결과를 얘기했고, 엄마 나름의 예견을 내놓았다. 그 예견은 보고 들을 수 있는 우리가 생각해도 그럴 듯했다. 아, 세상이란 들을 수 없어도 이해가 되는 것인가.

늘 조금씩 빗나갔지만 엄마의 예견과 추측은 언제나 우리를 꼼짝 못하게 했다.

시각적인 인지가 청각적인 인지를 초월한다는 것을, 그래서 마치 세상 속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각색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엄마는 실감나게 보여 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설명은 늘 부족했고 거짓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보는 세상에서의 진실은 테레비 속 사람들이었고. 내가, 우리가 말하는 세상은 거짓꼴 세상이었다.



소설 마요네즈 속 엄마는 딸에게 어린아이같은 딱따구리였다. 현실 속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늘 옆에 사람에게 질문하고 확인받고 싶어했다. 옆의 사람은 그런 일련의 행동이 힘들었고,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었다. 그게 엄마는 관심의 표현이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었는데. 그걸 몰랐다. 엄마 뿐만 아니라 딸 역시 딱따구리였던 시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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