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08. 아버지, 내 결혼이에요

결혼식장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독백

by 찻잎향기

08. 아버지, 내 결혼이에요


결혼식장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보내는

딸의 편지, 독백



- 니 아버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겄냐이.

- 딱 일년만 더 살고 가재이.

- 아이고 무심한 동생 같으니라고. 어찌 그리 빨리 가버렸소이.


고모의 저 소리는 내 결혼말 나오던 8월 그날부터 여태까지 석달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내게 한 말이에요. 이제는 고모 저 소리가 그냥 개울물소리 리듬처럼 들려요. 어디서 끊고 어디서 이어나갈지 그 리듬 템포가 똑같아요. 그리고 또 우셔요. 코를 푸는 것인지 눈물을 찍어내는 것인지 정체모를 그것을 늘 소맷자락에서 꺼낸 누우런 가재수건으로 닦아내요.


저 놈의 수건은.. 언제 빨았을까. 누렇다. 원래 태생은 흰색이었겠지.


고모 한복 입은 자태는 언제 봐도 참 곱네요. 저대로 유리 상자 하나 씌우면 그대로 새색시 인형이 들어있는 유리상자 같네요. 이삿집이나 결혼 선물로 유리점에서 파는 유리상자 인형. 고운 한복 인형. 유리점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입구에 나란히 놓여있는 유리상자 인형들. 고모는 꼭 한복 입은 인형 같다.


유리점. 남원유리점. 고모 아들네집. 고모 아들. 아니지. 아들인 적이 없었지. 맨날 싸우기만 하고. 아니야 그래도 고모 아들이라고 해야지. 그럼 뭐라 부를 것도 없잖아...


- 고모, 유리점 아저씨 왔어요?

- 왔다, 웬일로 그 인간이 왔다.

- 고맙네요. 그래도 어려운 자린데 와 주시고.

- 고맙기는 뭐가 고맙냐. 당연히 와야지.

- 니 고숙이 버젓이 있으니까 지가 안 오고 배기겄냐. 지가 할 도리는 하고 살아야지.

- 내가 지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때마다 가서 지 애미 제사 지내 주고 지 애비 수발 다 들어 주고.

- 지가 나한테 잘 해야 하는디. 아이고... 내가 자식 새끼가 없으니까. 내 배로 난 자식 새끼가 없으니까.

이런 설움을 받는다이.



고모, 고모 그만해요. 오늘 내 결혼이잖아. 그만 우세요. 다른 사람들 들어오잖아요.


내가 신부대기실에 있는 동안 고모는 또 몇 차례를 울었지는 몰라요.


올해 1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해서 고모 속상한 얘기, 고숙 아들 얘기, 고모 자식 못 낳아 서러운 얘기. 그리고 내가 이만큼 성공했는데도 당신을 모른 척 한다는 얘기...


그 끝없이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나는 또 얼마나 질려하는지요. 그런데도 나는 화를 낼 수가 없어요. 가만히 그 이야깃거리를 다 들어야 해요. 그게 내가 우리 고모한테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거든요.


우리 고모. 우리 고모는 그렇게 우셨는데도 어찌 화장이 하나도 안 지워질까요.


화장을 하고 그대로 며칠씩 주무셔도 안 지워지고. 울어도 안 지워지고.


우리 고모 얼굴은 천하무적 방부제로 무장한 최강 동안이시네요. 일흔일곱 살이라고 누가 믿을까요. 저리 고우신데.

- 고모, 빨리 식장으로 들어가셔요. 고숙 혼자 두고 지금 여기 얼마나 계신 줄 아세요.

- 고모, 오늘 참 곱고 예쁘세요.

- 그러냐. 내가 오늘 째 좀 나냐? 니 결혼인데 초라하면 안 되제이. 내 조카 결혼이라고 때 빼고 광 좀 냈다.

- 에이고~ 우리 동상. 우리 동상이 이 좋은 날. 이 좋은날 좋은 꼴도 다 못보고. 아고 동상. 왜 그리 먼저 갔소.


아이고 고모.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예쁘게 입고 오셔서는. 이제 아버지 얘기 좀 그만하시고요.

어여 들어가세요.


우리 고모는 예쁘다는 말을 참 좋아하지요. 여든이 되셔도 아마 아흔이 넘으셔도 그 소리를 계속 듣고자 하실 거에요. 저 아버지 소리도... 아마도 나를 보는 내내 하실 거에요. 그래야만 속에 남는 한이 없을거라 여기시나 봐요. 속이 풀리고 풀릴 때까지 하셔야 될 일일 것 같아요. 그런다고 열두살 어린 동생 먼저 보낸 한이 풀리지는 않겠지만 속에다 담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래서 나는 그 맘으로 다 듣고 있어요.


왜냐면요. 나도 그러고 싶었거든요...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잘 계셔요?

아버지 대신 아버지 자리에는 오촌 작은 아버지가 않으셨어요. 오빠가 앉아야 된다 어쩐다 고모랑 고숙이랑 오빠랑 실랑이를 치더니. 오빠가 너무 젊다고. 그냥 작은 아버지가 앉기로 했나 봐요. 나도 며칠 전에 알았어요.


아버지 서운하지 않지요? 아버지는 아마 서운해도 한마디도 안 하실 거잖아요. 아버지는 싫은 소리도 서운한 소리도 아픈다는 소리도 안 했잖아요.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 병원에 계실 때도 의사랑 간호사들이 놀랐잖아요.


- 할아버지 힘들면 힘들다고 소리 지르셔도 됩니다.

아프다고 말씀하셔도 되셔요.


아버지가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고 신음소리도 안 내고 꾹꾹 참으니까. 되려 병원 사람들이 아버지 독하다 그러셨잖아요. 아버지. 그곳에서는 안 아프시죠. 이젠 아프지 말아요.


아버지 암 선고 받으시고. 6개월만 산다 했는데. 오빠가 어떡하든 수술하자 우겨서 수술 했지. 그래서 암 선고 받은 후로 딱 1년 더 살으셨죠. 고마워요. 아버지.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더 견뎌주셔서 고마워요.


아버지가 그냥 누워라도 계신 것만으로도 그냥 든든했어요. 지금 아버지가 없으니까 더 잘 알겠어요. 아버지는 그냥 가만히 계셔도 좋았고. 나한테는 든든한 백이었고. 내편이었고. 내 얘기 가장 잘 들어주셨던 말동무였고. 아버지가 없으니까... 아버지...(에이, 아버지 나 오늘 안 운다.)


아버지 고마워요. 아... 나 울면 안 되는데...

나는 고모 같지 않아서. 울면 바로 표가 나요. 아버지... 아버지 나 오늘 안 울게요. 결혼식이잖아.

나 울면.. 얼굴 망가져. 아버지 나 예쁜 얼굴로 들어갔으면 좋겠죠. 아버지... 잘 지켜봐주세요.


어~ 이 사람 들어 올 때 된 것 같아요. 우리 동시 입장해요. 좋죠. 둘이 나란히 들어가기로 했어요.

아버지.. 잘 지켜봐야 해요. 우리 들어갈 때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구요.

아버지... 계속 지켜보고 계실거죠.

어~ 저기 이 사람 들어오네요. 아버지... 저 사람 잘 생겼죠. 아버지가 이군이군 하면서 이뻐라 했잖아요. 말이 없다고 많이 걱정도 했지만... 아버지... 저 잘 살게요...

그럼 아버지도 이 사람 곁에 스시구요. 자~ 이제 우리 들어간다. 자... 발 잘 맞추고...


*1991년 11월. 나의 결혼식날. 신부대기실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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