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07. 엄마와 까만 비닐 봉다리

엄마의 집착

by 찻잎향기

07. 엄마와 까만 비닐 봉다리



프롤로그


엄마


까만색 비닐 봉다리에 유난히 집착했던 엄마


아들이 뱀술 때문에 죽었다고 믿어 버리더니

까만색 비닐 봉다리에 주섬주섬 먹을 것 죄다 넣어 두고


아들이 호적에서 죽어 버렸다고 아예 흔적도 없는 자식 취급하더니

버릴 것도 썩을 것도 죄다 주섬주섬 비닐에 저장해 두고


모두에게 각박해진

누구도 믿지 않는 늙은이 되어 버리고


그렇게 썩어가는 세월

그렇게 병들어 버린 세월

그렇게 풀지 못하고 묶어 버린 세월


집 틈새 봉다리 봉다리 주렁주렁 묶어 두고

죽은 사연들 까맣게 숨 죽여 지내게 하더니



엄마,


그곳에서는 봉다리 다 풀어 헤치고

까맣게 썩은 세월들 훨훨 날려 보내셨는가?






까만 비닐 봉다리 1



그녀는 늘 까만 비닐로 된 봉다리(=봉지, 남원 사투리)를 지팡이 손잡이에 끼우고 다녔습니다.

슈퍼를 갈 때도, 옆집에 마실을 갈 때도. 외식을 하러 집을 나갈 때도. 손목에 부착된 장신구처럼 그렇게 지팡이 손잡이에 봉다리는 걸려 있었습니다.

그 봉지 안에는 별거 없었습니다.

우리 애들이 먹을 것, 우리 애들이 먹다 남긴 과자 부스러기들(예를 들면, 새콤달콤 꿈틀이 제리 같은 것), 귤이나 귤 껍질, 콧물 닦은 손수건이나 휴지, 동전이나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종이 돈이 몇 장 들어있는 손지갑 등이 전부였습니다. 날마다 그 봉다리에 들어가는 품목은 달라지지만, 그 흔하디 흔한 까만 비닐 봉다리는 전혀 없어지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게에서 물건을 사서 담아 올 때도 까만 비닐 봉다리만 고집하였습니다.

그녀는 까만 비닐 봉다리만 들고 다녔고, 봉다리를 없앨려고 하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치 금은보화가 들어있는 보물 상자라도 빼앗기는 아이마냥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녀는 봉다리에 집착했습니다.(우리는 그것을 집착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울긋불긋 예쁜 천으로 된 지갑을 사 주어도 봉다리를 고집했고, 마실용 화사한 손가방을 사 주어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봉다리는 가볍다고 지팡이에 끼워서 다닐 수 있다고, 까매서 속이 보이지 않는다고, 시커멓게 생겨서 누가 훔쳐가지도 않는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우리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봉다리를 없애려고 할 때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 그런 억지같은 고집을 부리며 그녀는 그녀가 하고 싶은대로만 하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화사한 꽃분홍색 블라우스와 크림색 몸빼 바지를 폼나게 예쁘게 입혀 놓아도, 결국 마지막엔 그 봉다리를 들고 말았습니다. 행여라도 뺏을라치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렀습니다.

여주 영릉의 단풍 구경 - 영릉 입구에 들어설 때 길 양 옆으로 흩날리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정말 일품이다-여기에 간 그 가을날도 그녀의 화사한 옷과 지팡이, 그 지팡이에 대롱대롱 메달린 까만 비닐 봉다리는 묘하게 잘 어울리는 착각마저 들게하는 실루엣을 이루었습니다.

촌스럽다, 부끄럽다, 흉칙하다, 뭐 이런 거칠고 투박한 표현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가을날의 햇살과 화사한 옷차림과 까만 비닐 봉지는 어울릴래야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지팡이에 대롱대롱 메달린 채 눈부신 햇살과 투명한 비닐 표면이 반짝반짝거리는 모습이란 게...

나보란 듯이 우리를 조롱하는 것도 같고, 나 좀 봐주세요, 처절하게 흔들흔들 거리는 것도, 묘하게 눈에 거슬리는 까만 비닐 봉다리를 그녀는 손에서 놓치를 않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까만 비닐 봉지를 볼 때마다, 눈부신 그날의 그녀의 화사한 모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까만 비닐 봉다리 2



그녀는 봄날에도 여름날에도 가을날에도 겨울날에도,

비가 내리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바람이 부는 날에도,

햇살이 쏟아지는 날에도,

까만 비닐 봉다리를 지팡이 손잡이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까만 비닐 봉다리에 대한 집착과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도 쏟아 부었습니다.

절대 손에서 놓치 않겠다는 집념과 집착처럼

우리 자식 모두를 당신의 눈 안에다 담아놓고 늘 보고 싶은대로 보고야 말겠다는 집념. 억지.


"더르버- 더르버- 더릅다- ---"


한 번 더럽다고 여기면 더러워서, 더럽지 않아도 더러워서, 더러운 것이라고 믿고마는, 그래서 우리를 그 더러운 것으로부터 떼어놓고야마는, 그 더럽다고 믿는 맹신 하에, 그녀의 자식들은 절대로 그 더러움 근처에는 가서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그녀의 맹신은, 결국은 우리가 더러운 것이 아니어도, "그래 더러버" 하고야 만다.

그녀의 손에서 까만 비닐 봉다리를 뺏어낼 수 없었듯이, 그녀가 더럽다고 믿는 것은, 우리 입에서 종국에는 "더럽다" 소리가 나오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밥 묵읐나- 묵읐나- 묵읐나- ---"


우리가 밥을 먹었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그녀는 우리의 말을 한 마디로는 절대로 믿지를 않았습니다.

밥을 먹어도, 밥을 먹지 않았어도, 그녀는 우리에게 밥을 먹이고 싶으면 밥을 안 먹었다고 믿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인정하고 믿을 때가지 묻고 또 묻고 물었습니다.

스스로 확신이라고 믿을 때까지는 누구의 말도, 얘기도, 표정도, 손동작(손말)도 받아들이질 않았습니다.

그녀는 듣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듣지 못해서 화가 났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인지,

그녀는 같은 말을 묻고 또 묻고, 또 되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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