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06. 고모 (제3편)_ 에필로그

조카가 쓰는 편지, 고모의 영정 사진을 고르면서

by 찻잎향기

06. 고모 (제3편)


에필로그


1. 조카가 쓰는 편지


고모의 생애에 고숙은, 결코 손해 나는 오지랖이 아니었다.

고숙의 생애에 고모는, 결코 손해 나는 여인이 아니었다.


두 분의 만남은 곧 연리지이다. 둘로 태어나 하나가 된 나무, 나무님.


고전소설 중에 김시습의 이생규장전이 있다.

남녀의 인연으로는 삼생의 인연이 있단다. 전생, 이생, 후생의 인연. 그 삼생이 다 이루어졌을 때.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된단다. 그래서 이생은 귀신이 되어 나타난 아내를 현처처럼 돌보았고, 그녀가 명부로 떠나자 그녀를 따라 떠나면서 마지막 후생의 사랑을 완성하려 했단다.


고모와 고숙은 아마도 전생에 자식을 많이 두었나 보다. 나도 그 자식 중에 한 명일 것이고.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 고모의 자식이다. 이렇게 거두고 거둔 자식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아마도 이생에서는 자식이 없었나 보다.


고숙과의 금슬이 그 자리를 대신해 주었을 만큼 고숙의 사랑은 엄청났으니 말이다.


태어나야 할 자식들이 엄마 아빠를 시샘하여 잉태되지 않았으리라.


"고모, 고숙. 후생에서는 둘 만의 아이를 꼭 낳으셔서 후생의 평범하고 소박한 사랑 이루세요."





고모, 그곳에서는 행복하세요? 아이 낳으셨지요,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고모는 늘 아이 낳은 여자가 제일 부럽다고 하셨지요.

고숙이 그곳에서도 끔찍하게 고모를 아끼고 계시지요?


고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1년 기제사 해 주고 뒤따라 오라고 고숙에게 당부 당부하셨지요.

일 년 가까이 병원에서 고생하시면서도, 나 당신이 채려 주는 제삿밥 한 그릇 얻어먹고 싶네- 하셨지요.

고숙은 그 말을 지키시기 위해, 1년 기제사 성대하게 치러주시고,

자식 열둘을 두어도 그렇게 지내지는 못할 거예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뒤엔 그냥 뒤 따라가셨어요.

고전소설 속의 이생이 고숙으로 환생된 줄 알았어요.


고모가 해마다 고숙 집안을 위해서 지낸 제사가 열 두 개도 넘고, 그 제사를 50년이 넘도록 지냈으니

그 제삿밥 한 그릇 성대하게 먹는 게 어떠냐며. 고숙을 보채셨지요.


고모. 이생에서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고모의 딸. 잘 지내고 있어요.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아서. 볶으며 지지며 살고 있어요.

고모가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저 아홉 살 때부턴가 노래를 하듯이 말씀하셨지요.

저 그렇게 살고 있어요.


이번 여름 방학에는 남원집에 가려고요.

잘 생긴 펌프 녀석, 본 지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시원하게 펌프 물 한 바가지 퍼 올려서 마시고.

고모랑 고숙이랑 얘기 나누던 긴 마루에도 누워보고 싶고.

마루 맞은편에 감나무는 그대로 있는지, 그 나무 밑 평상에도 누워보고 싶고요.


아침마다 불린 보리를 갈던 그 푸짐만 확- 돌로 된 절구통을 그대로 확으로 썼었지요-과 확돌.

그 반질반질한 확독- 오른손 안에 쏙 안기던 그 녀석도 잘 있겠지요.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고모, 오늘은 안 갈면 안 돼요" 매일 그 소리를 했고. 고모는 늘 "안 돼" 하셨지요.

확에다 갈아야지 보리가 부드럽게 돼서 밥을 지었을 때 맛있다고 하시면서.

아. 그 잔인했던 아침들.

그런데 나는 오늘도 그것들이 그립습니다.


한 바가지 시원한 물을 위해 펌프질을 해야 하는데. 마중물은 그곳에 있을는지.


고모 스무 살 적의 마중물은 고숙이었지요.

고숙과의 삶이 그렇게 고단하지만은 않으셨지요.

고숙의 추억 속에서 콸콸콸 쏟아지던 여원재를 넘던 겨울밤의 이야기.

고숙과 고모와의 첫 만남.

고모 인생의 마중물이었지요. 고숙과 60년 이상을 함께 할 동반의 삶을 시작하는 마중물.

여원재를 넘던 그날 밤이었지요.

콸콸콸 쏟아진 물이 시원해도 시원하지 않아도, 맑아도 맑지 않아도,

양이 부족해도 넘쳐도, 그대로 담아내야 하는 것처럼.


인생은 마중하여 맞이한 인생을 그렇게 그대로 담아야 하는 것이지요.





2. 고모의 영정 사진을 고르다가


고모는 사진이 많았다.

젊은 날 처녀 시절, 사진 작업에 참여- 요즘으로 말하자면- 패션모델로 주로

화보를 촬영했다. 150이 조금 넘는 아담한 키, 계란처럼 잘쭉하니 둥근, 모나지 않은 얼굴. 눈, 코, 입, 귀, 달인의 손끝에서 잘 빚어진 송편마냥, 절대로 기계로 빚어진 느낌이 나지 않는, 아담하니 서로 조화를 잘 이루며 균형 있게, 얼굴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고모는 당신의 젊은 날의 초상으로 사진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사셨다.

그 옷차림의 자태는 완벽했다

흐트러짐이 없는데도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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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평생 소녀 같던 우리 고모.

천국 그곳에서도 고숙 만나셔서

천생연분 천년만년 인연 만들고 계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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