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05. 고모 (제2편)_ 고단한 사랑이 시작되다

고모, 고백, 사랑,

by 찻잎향기

05. 고모 (제2편)


제2편 고모의 고단한 사랑이 시작되다


1장. 인월을 다녀오면서


여원재 고개를 넘었다.

그 길은, 눈이 하얗게 쌓여 있던 그 길은, 사력을 다해야만 넘을 수 있는 길이었다.


고숙은 사활을 걸고 차를 몰았다. 그런데 그런 고숙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모는 연신 담배를 태우며 한쪽 창문 밖만 응시했다.


달빛이 없어도 별빛이 없어도. 어둠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눈빛을 따라 여원재 고개 굽이굽이 유려한 능선을 바라보는 고모는 하염없이 담배연기만을
뿜어냈다.
담배를 피운 적이 없던 고숙은 그날, 담배를 태워보고 싶다고 여겼다.
그래야 저 여인과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고모는 지금도 말이 없는데 그때는 더 말이 없었나 보다.


굽이굽이 도는 고개마다 창문 옆으로 보이는 나무 가지가지 눈을 한 보따리씩이고 있었다. 살짝 닿기만 해도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눈사태를 일으킬 것 같은 나무들이 눈을 이고 있었다.
바퀴는 윙윙 크르륵 소리를 지르며 힘겨워했는데 고숙은 두렵지 않다고 했다.
젊은 여자가 전혀 겁을 내지 않고 한마디 말없이 담배만 태우는 모습에 고숙도 겁을 상실했다 한다. 저 여인은 과연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런 생각만 들고. 겁 없이 차를 몰았다 한다.

남원역에서부터 두 시간 가까이 지나고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여원재 고개를 넘고 두 사람은 운봉 입구에 도착했다.

고모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남원역에서 처음 대면했을 때


- 기사 양반, 갈 수 있지요?


하고는 차 안에서 한마디도 없던 고모가 운봉 입구에 들어서자


- 기사 양반,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했다. 고숙은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하고, 애써서 왔는데 고생했다는 한마디도 못 들었는데도, 그 이유를 따지기는커녕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는, 오히려 엉뚱하게도.


- 인월 가셔야죠? 그냥 가십시다.


했단다.


- 아니, 그냥 남원으로 돌아갑시다.


- 아니, 이 아가씨가 여기까지 죽을 둥 살 둥 왔으면 목적지까지 가야지. 이런 법은 아니죠. 인월 갑시다. 죽을 고비 다 넘기고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자니 말이 됩니까?


고숙 무슨 용기가 났는지.
오히려 손님보다 기사가 더 적극적으로 손님이 가야 할 곳을 앞장서서 가고자 한 셈이다.
고모 가만히 고숙 하는 양을 보더니,


- 왜 가야 하죠? 이 밤길에 눈길에, 고갯길을 넘나들며 왜 가야 합니까? 내가 미친년이죠.


-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 거 같은데 가십시다. 그리고 미치시지 않으신 거 같습니다.


- 꼭 하고 싶은 일요...


- 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은게 여기 오셨죠.


- 그래요...


고모는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런 거 같네요. 그래요. 그럽시다. 가십시다...

그렇게 자동차는 또 눈빛을 가로등 삼아 밤길을 달려 인월에 도착했다.

그렇게 고숙은 고모 인생에 스스로 적극적으로 끼어들었고 고모는 불쑥 나타나서 고숙 인생을 뒤바꿔 놓아 버렸다.

그날 한밤중에 인월에 도착한 고모는 또 한마디 말이 없었다.
매고 왔던 가방에서 큰 지갑을 꺼냈고. 돈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그곳에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서로 갈길로 돌아섰다.

그런데...
고숙은 그곳에서 차를 돌리지 않았다.
밤새워 차 안에서 고모를 기다렸다.

고모가 고모의 엄마와 그 엄마가 낳은 열두 살 어린 동생, 나의 아버지를 만나서, 서럽도록 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던 그 원망의 시간 내내, 고숙은 차 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2장. 고백


그런데... 고숙은 그곳에서 차를 돌리지 않았다. 밤새워 차 안에서 고모를 기다렸다.
고모가 고모의 엄마와 그 엄마가 낳은 열두 살 어린 동생, 나의 아버지를 만나서, 서럽도록 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던 그 원망의 시간 내내, 고숙은 차 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나는 니 고모를 만나 사십 년이 되도록 니 고모 사람들, 죽은 사람들, 뒤치다꺼리한 것만 해도 내 평생 할 도리를 다 한 거 같다.”



그날 밤, 여원재를 내려오면서 고모랑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 굽이굽이 눈길을 내려오는 동안, 내가 그곳에 남아있는 이유도 묻지 않았다.


왜 안 가셨어요, 라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냥 그 집에서 나와서는 내 차를 보더니만, 얼굴을 돌리고 다가와서는 "이제 그만 갑시다" 했다.

남원역에 도착해서 돈만 지불하고 돌아서는 니 고모. 또 말없이 기차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또 남원역 앞 택시 대기선에서 가만히 있었다.


인월에서 돌아오는 내내, 담배도 태우지 않고 울기만 하는 그 사람을 무슨 수로 말을 걸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방법도 몰랐다.

나는 그냥 무슨 일인지, 그냥 차 안에서 또 기다렸다. 니 고모가 그냥 그대로 기차를 타고 가버리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인데도, 소방대도 가지 않고 기다렸다.


몇 시간이 흐른 뒤, 고모가 다시 나왔다. 저녁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여기, 잠도 자고, 머물면서 밥도 좀 먹을 데 없어요?" 한다.


나는 명성관으로 갔다.

지금으로 따지면 여관이기도 한데, 돈을 주면 주인집에서 밥도 해 준다.

명성관으로 가는 길에, 니 고모가 얘기를 한다.


"왜 기다렸소? 역에서도 날 기다렸소? 왜 그러셨소? 나는 오늘 신의주로 떠날 사람이었소."


오히려 내가 말이 없어졌다. 니 고모가 말을 하니, 내가 말이 없어졌다.


"내가 며칠만 여기 머물다 가도 되겠소?"


나는 바로 "그러시오"했다.


그렇게 나는 니 고모랑 얘기를 섞게 되었다.





니 고모는 내가 자기를 붙든 것이라고 한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남원에 살게 된 것이 나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신의주를 못 가게 했고, 내가 처량해 보여서 고모가 남아 준 것이라고 한다.


거참,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니 고모는 명성관에 머무르는 동안 아편도 하고, 술도 많이 마셨다.

나는 그게 못할 짓이라고 날마다 찾아갔다.

그 사람은 나를 알아볼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알아볼 때는 울기만 했다.

울고 또 울고.

그렇게 한 달이 넘은 것 같다. 나는 날마다 그 사람을 찾아갔다.

그 사람이 나를 붙든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책임이라도 져야 할 사람처럼, 그렇게 날마다 찾아가서, 술도 뺏고, 아편도 못 피게 하고 그랬다.

그러던 몇 날 며칠이 지나고, 니 고모가 자기를 책임질 수 있냐고 했다.

멍 하더구나. 내가 그 사람을 책임질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고숙은 말을 멈추고 잠시 수돗가 펌프를 응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여원재에서 넘어와서 그 길로 신의주를 바로 갔더라면,

내가 무슨 오지랖으로 그 사람 삶에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남자 만나서 더 행복했으려나... 싶기도 하고.

전처 부인을 죽인 여자라는 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고, 전처 자식들 눈치 보면서 명절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집안 대소사 지내면서, 첩이라는 속닥거리는 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다.



- 팔십 평생 호적에 처녀 인생, 우리 고모만 가엽구나 가엽구나

- 눈 맞은 남자 하나 육십 평생 같이 해도 호적은 남남. 어허 어허라





3장. 고모는 고숙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 고모 왈.


나의 친할머니께서 다른 집으로 아들 하나 낳아 준다고. 재가하러 가야 한다고, 당신이 낳은 딸 셋 중에 위로 두 딸을 모두 각각 남의 집에 식모로 팔아버리고 그렇게 인월로 들어갔더란다.

인월에 가서 아들 하나 낳고는 남편이 죽어버리니 생고생 개고생 지옥고생 한다는 소식이 들렸더라.

열두 살에 남의 집에 식모로 팔려가서, 육 년 살이 생고생 개고생 끝에 콧물 닦고 눈물 쏟아 모은 돈으로

새롭게 살아본다고, 아편쟁이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단다.


그 길로 신의주로 넘어갔다가, 삼 년 만에 옷 때깔 몸때깔 사람 때깔 사방천지 알아보는 이 없을 정도로 요조숙녀 뺨치고 신여성 저리 가라는 모양으로 남원 땅에 내려왔단다.


여원재 고개 넘어, 니 할매 만나서 욕한 바가지 실컷 퍼붓고, 떡살가루 눈 가득 쌓인 곳에 열두 살 어린 한을 쏟아버리고 나올라했단다. 그런데, 니 아버지, 어린 동생 보고, 그 못 사는 살림살이 보니, 어찌도 사는 게 원망스러운지 모르겠더란다. 그 길에 차 안에서 확 죽어버릴까 그 일만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벌써 남원역이란다.

그 길로 바로 신의주로 돌아갈까 망설이며 기차를 기다리다 하나 보내고 있는데 자꾸만 뒷골이 당기더란다.

인월에서 이 할망구나 나를 못 가게 하는 것이구나- 했단다. 있는 정, 미운 정 모두 잘라버리고 돌아서려는데,

자꾸 뒤통수가 뜨겁더란다.

역사에서 나와 보니, 그 택시 자동차가 그대로 있더란다.

"저 양반이... 참.. 요상한 일이네. 내가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저 양반이 있네..."


남원에 왔다 가면 고모 인생, 술술 풀릴 거라 여겼단다.

열두 살에 자신을 팔아버린 모질고 인정머리 없는 모정만 끊어내면 새 삶을 살 것이라 여겼단다.

그런데... 에고 에고......" 이 소리를 육십 평생 하며 살 줄이야, 그때 어찌 알았더냐.."


우리 고모, 한숨마다 섞어 가며 하신 말씀이다. "내가 그때 인월을 왜 갔다냐.“




고모가 신의주로 떠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


나는 니 고모랑 어찌해 볼 생각이 있어서 그 사람을 신의주에 못 가게 말린 것이 아니었다.

명성관에서 한 달쯤 지난 뒤에, 한 달 전에 보았던 몰골하고는 백팔십도 달라진 해골이 따로 없는 몰골이 되어서, 남원역으로 가자고 했다. 신의주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조선으로 안 온다는 것이다.

아.. 그 말을 듣자 나는 안 된다고 그랬다. 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도 있고, 동생도 있고, 그리고 어디 있는지 모르는 언니도 찾고 여동생도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그랬다.


그 사람...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참 이 양반이.. 왜 내 인생을 자꾸 간섭하고 그러요" 한다. "나를 책임질라요, 처자식 있는 사람이 그럴 수 있소?" 그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


그날 이후, 고모는 단 한 번도 신의주에 가지 않았다. 붙드는 고숙은 책임진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두 분은 60년이 넘게 한 집에 살았다.

고숙은 처와 자식을 두고 집을 나왔고, 고모는 그렇게 평생 처녀 호적이면서 자식 하나 얻지 못했지만,

남원 땅의 최고의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았다.


고숙은 그날 명성관에서 "나를 책임질라요"라는 고모의 말을 가슴에 새기셨는지.


한 맺힌 고모의 원망과 미움이 그대로 서려 있는 죽음이지만, 고모의 엄마의 주검을 자식 손에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유교적 절차와 형식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거두게 하였고,

다 죽어가는 고모의 언니 내외를 찾아서, 언니의 남편을 비명횡사하지 않도록 돌보면서 길바닥에서 죽지 않게 하였고. 그 언니는 마지막 생애를 고모와 한집에서 십여 년 살다가

결국은 나랑 한 방에서 주무시다가, 내 옆에서 잠자듯이 평온하게 가시게 하였고.

막내 여동생을 찾아내서 운봉으로 시집보내고, 아들 딸 다복하게 많이 나아서 잘 건사하게 하였다. 그 후손들이 아직도 지리산 자락 어디쯤에서 훈장님을 하고 계신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팔순이 넘으신 고모 내외가 우리 아버지 장례를 온갖 정성을 다해 치러 주셨다.

그렇게 가실 분들은 가신 분들대로 뒤치다꺼리를 다 해 주셨고.

고모의 열도 넘는 조카들의 대소사 행사에 참석하시어 위엄이 넘치는 그래서 더욱 자리가 빛나게 되는 어르신의 면모를 다 보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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