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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Dec 15. 2018

시_ 담벼락 담쟁이 열매

찻잎미경의 창작 시, 출근길 아침에 만난 고혹적인 열매들

_ 찻잎미경의 창작 시, 출근길 아침에 만난 고혹적인 열매들



2018년 12월  12일. 아침 버스에서 내려 

평상시에 눈여겨 보지 않았던, 그런데 유난히 그날 눈에 들어온 

담벼락을 보았다. 

까만 머루 같은 열매가 올망졸망 다닥다닥 붙어 있다. 

무엇인고, 들여다 보니. 담쟁이 열매였다. 

아주 까맣게 보이는 것이. 꼭 머루 열매 같은 모양이었다. 머루보다는 더 작은 까만 열매.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든다. 그리고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시_ 담벼락 담쟁이 열매



혼자 있으면 외롭지

그래서 이렇게 다닥다닥 함께 붙어 있는거야 

작아도 초라하지 않지 까맣다고 놀리지도 않지

줄기도 이파리도 나무기둥도 없어 보이지만 

나는 살아 있는 열매야 


말라 비틀어져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그렇지 않아   

내 안엔 포도주 색깔보다 더 진한 액이 흐르고 있고 

나는 숨을 쉬고 있는거야 


봄날에 보라지 

얼마나 잎이 무성한지 

끝도 한도 없이 뻗어 나가는 줄기를 보라지 

세상을 온통 다 뒤덮어버릴 만큼 질기고 곧고 힘차단 말이지


나보다 가늘고도 부드럽게 

길게 뻗으면서도 좀더 빨리 자라는 덩쿨은 못 보았단 말이지 


그래서 우린 외롭지 않아 

작아도 작지 않아 가늘어도 힘들지 않아 

우린 모두 함께 늘 어우러져 있으니까 

담벼락이든 나무 줄기든 담장 너머든 

철벽 건물이든 시멘트 건물이든 온통 하나의 힘으로 버티니까 


우린 바람과 햇볕과 뿌릴 내릴만한 한 웅큼의 흙만 있으면 

잘 자라지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는 무성함으로 견뎌낸단 말이지


지금 나는 살아 있는 열매야 

두어 달 뒤에는 새로운 녹색 줄기와 싹잎으로 다시 만나 볼 수 있는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덩쿨 열매란 말이지 


말라 비틀어져 있어도 촉촉한 생명으로 숨을 쉬는 

나는야 말이지 

담쟁이 열매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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