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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Dec 17. 2018

시_ 웅크리며 걷는 여자

아침마다 길에서 만나는 여자 _ 찻잎미경 시 쓰기 

[찻잎미경 시 쓰기] 


웅크리며 걷는 여자 


- 아침마다 길에서 만나는 여자 



여자는 잔뜩 웅크리고 걷는다 어깨와 귀가 맞닿을 만큼 

목도 없이 어깨가 치솟았다 


몸에 있는 모든 근육들을 둘둘 말아 우그려뜨린 것마냥

찡그리고 두려운 낯빛으로 어깨만 올렸다 

귀와 어깨가 맞닿은 만큼이나 목이 없다 


그러나 어디에도 자랑스러움은 없다 궁상이 덕지덕지 어깨에 붙어 있다 

여자는 떼어낼 생각조차 없다는 듯이 좀더 웅크리는데 

궁상은 더욱 치솟는다 


무표정한 낯빛으로 같은 시각 같은 장소 같은 걸음으로 잽싸게 옆을 지난다 

한겨울이 아닌데도 사시사철 여자는 춥다 보는 이 마음에도 냉기가 돋는다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는 고집처럼 보인다

고집처럼 딱딱한 생애(生涯)일 거라

한 번도 재생(再生)되지 않은 굳은살일 거라

호두껍질보다 더 단단한 주름이 켜켜이 붙어 있을 거라

믿게 만드는 어깨에 

고난이 버티고 있다 

애잔함이 숨어 있다


......


횡단보도 앞이다 여자는 멈춘다 

고개를 든다 목이 없다 

등을 펼친다 그래도 목이 없다 


목이 없는 채로 걷는다

어깨로 견디며 걷는다

무심하게 걷는다


아침마다 여자를 본다 

애처로움이 전이(轉移)되었다



*1년 가까이 아침마다 만나는 여자가 있습니다. 뭐가 그리 고달픈지 고개를 잔뜩 웅크린 채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옆을 스치는 여자입니다. 아침마다 그 여자를 볼 때마다 애처롭습니다. 그 마음이 제게로 왔나 봅니다. 그 여자를 떠올리며 메모를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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