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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Dec 17. 2018

시_ 어혈

어혈(죽은 피)을 뽑아 내다, 찻잎미경 시 쓰기 

어혈(瘀血

     

     

     


 몸에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하고 저린다, 한 곳에 맺혀 있는 피를 뽑아내 보자. 무엇에 부딪쳤을까, 부딪칠 일을 만들지 않았는데 고여 있는 피가 끈적하게 비릿한 냄새를 풍긴다, 몸 구석구석 맺혀있지 아니 한 곳이 없으니 무엇에 부딪치지 않으려던 내 의도는 의도가 아니다. 

 어혈을 없애보자 약침을 쑤시고 유리 부항 봉우리를 쌓고 압착의 힘으로 살을 짓누른다. 뿜어져 나오는 끈끈한 덩어리 쏟아져 버린 까만 핏덩어리 그 탓인지 온 몸통 사지 팔방에 뻗어있는 혈맥이 시원하다. 살 것만 같다, 어느 무엇에도 부딪치지 않고 다시 살 것만 같다 부딪치지 않고 멍들지 않고 피가 맺히지 않고 시원하게 통(通)하며 이제 좀 살 것 같다. 



2


까맣게 맺힌 어혈을 뽑아 내니

산 피가 죽은 피를 살려 냅니다

죽은 것과 산 것은 다를 바 없는데 말입니다.


뭉쳐 있던 피에 기대며 신음하던 그대는 

이제 좀 홀가분해졌을까?


죽은 것과 산 것이 한 뿌리째 살아내는 몸통에 

뚫린 구멍으로 선홍빛 뿌리가 다시 내립니다


뿌리가 내리더니 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고

몸통이 약에 취한 듯 간질거립니다.


어쩌면 그는

죽은, 죽을 혈(血)에 기대어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어이딸/ 찻잎미경]



작가 노트_ 

2017년 2월. 어혈을 처음 뽑아 보았다. 아주 시원한, 쾌통을 느꼈다. 

빠져나가는 피의 양만큼, 새로운 피가 생성되리라 믿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어혈. 죽은 혈이라고 한다. 몸 안에 죽은 혈이 많다고들 한다. 

가끔 뽑아내 버리면. 삶이 더 시원해질 것만 같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자주 뽑으면 안 된단다. 

언제나 적당히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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