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찻잎향기 Nov 14. 2018

[이런 영화 어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겨울손님

A Tiger in Winter

[영화 추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겨울손님 (A Tiger in Winter)     




이진욱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현실감이 느껴진다. 서울의 야경, 골목, 술집 등의 모습도 좋고. 다만 이진욱 배우, 그의 외모가 자꾸만 현실감에서 멀어지게 하고, 영화 몰입에 훼방을 놓긴 했지만 말이다. (겨울 단벌로만 나오는데도 어찌 그리 멋짐이 뚝뚝 떨어지는지... 나는 이진욱의 숨겨진 팬이 맞나 보다.)

    



영화 기본 정보


감독: 이광국

출연: 이진욱(경유), 고현정(유정)

개봉: 2018년 4월

장르: 멜로/드라마          




영화 속으로 깊숙히~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하던 어느 겨울날, 여자 친구 집에 얹혀 살던 경유(이진욱)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러나 호랑이 조심해라는 말을 들으며 여자 친구에게서 쫓겨난다. 갈 곳을 잃은 경유는 캐리어 하나를 끌고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라디오에서는 동물원에서 탈출한 호랑이 뉴스를 전달하며, 호랑이를 만나게 되면 납작 엎드려서 죽은 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경유가 그토록 꿈꾸던 소설가가 되어 있는 유정(고현정)이 경유 앞에 나타난다. 친구가 결혼하게 되었다고. 겨우 그곳에서 얹혀 살던 경유는 또다시 갈 곳이 없어지고. 어쩔 수 없이 유정의 집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의 남성은 힘을 발하지 못하고. 그렇지만 그런 그도 괜찮다며 유정은 그를 붙든다. 그런데 그녀가 그에게 요구하는 말은 경유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앗아가려는 행위가 되어 버리고, 그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유정. 신춘문예에 당첨하였으나 다음 작품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등단 작품도 표절 시비가 붙어 있고 그녀의 위상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그런데다 술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고. 경유랑 연인 시절에도 술 때문에 헤어진 듯한데 말이다.      


경유도 유정도 경유의 곁을 말없이 떠나버린 애인 현지도 모두가 위태롭다. 현실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불안한 삶들이다. 더군다나 경유가 만난 대리 운전 차주들은 대개가 갑질을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이면서 아주 치졸한 갑질을 한다. 없는 사람의 등을 처먹는 꼴이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자연스럽다. 마치 실제 상황처럼 여겨질 정도로 실감이 난다. 영화 제목을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갑질 손님 라고 붙여도 될 만큼 현실적이고 잔혹하다.      


그렇지만 결말이 아주 맘에 든다. 영화 내내 경유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이야기 흐름이 답답하고 화가 나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끝나기 십여 분전부터. 경유가 어둠 속에서 호랑이의 소리를 듣는 장면부터 끝날 때 호랑이를 마주하는 장면까지. 경유가 손님으로 만난 여인에게서 제대로 대리 운전비용을 받고 어둠 속을 걸어가던 장면. 그곳에서 호랑이의 소리를 듣는 장면. 호랑이 가면을 쓴 모습을 마주하는 장면 등에서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아, 이 영화를 작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왜 호평을 했는지 알 것만 같다.      



영화 추천 장면과 호랑이’, ‘손님의 의미?     


친구의 양복을 모처럼 빌려 입고 현지(동거녀) 집으로, 그녀의 부모에게 인사를 하러 간 경유(이진욱). 그런데 그 애인이 경유 없는 사이에 이사를 가 버렸다. 부모님이 올라 오신다고 이틀 정도 집을 나가 있어 달라고 거짓말을 한 뒤에 그녀는 이사를 가 버렸다. 월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사정 사정을 하다가 끝내는 이사를 해 버렸다.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경유는 망연자실한다. 친구의 옷을 빌려 입고, 한우 세트를 들고 갔던 자신이 더없이 초라하다. 대리를 부른 남자는 시비를 건다. 인사를 안 했다고, 서비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괜한 시비를 건다. 대리 아르바이트도, 비용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결국은 한 대 얻어맞고 넘어지는 경유. 그렇게 초라하고 비참하게 친구집에 돌아온다. 친구더러 한우를 “우리가 구워 먹자”며 말하면서 오열하게 되는 경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진욱의 짠내 나는 연기가 많은 장면에서 몰입하게 한다. 참말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겨울 손님인가 보다.     


호랑이, 손님은 많은 의미를 상징한다.      


1차적인 맥락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동물원을 탈출한 무서운 호랑이라면, 그런 맥락에서 겨울 ‘손님’은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경유 같은 친구(애인)일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그는 매우 무서운 손님인 셈이다.     

2차적인 맥락에서 ‘호랑이’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는 어떤 무서운(두려운)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 욕망, 이루고자 하는 꿈일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손님’은 현실이다. 현실에서 만나는 모든 것. 특히 경유 입장에서 갑질하는 그 모든 대리 손님이 아닐까 싶다. 경유에게 있어서 글쓰기가 호랑이라면, 손님은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 아닌가 싶다.      

피하고 피하고 피하던 글쓰기를 극한 상황에 가서야 다시 시작한다. 끊어버렸던 담배를 피려고 담배와 라이터를 사고. 그리고 더불어 노트와 펜을 산다. 그리고 마주한다. 동물원을 탈출한 호랑이를. 무섭고 두려운 호랑이를. 자신의 호랑이와 마주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호랑이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 욕망(꿈) 같은 존재라면. 손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과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호랑이든 손님이든 극복하고 견뎌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손님을 견뎌야 하는 것이 어차피 더 비참한 일인지 모르겠다.      


“노인과 바다”라는 이야기 속에서 노인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 자신의 외로움을 견뎌내는 일을 하는 것이며. 경유가 캐리어 속에 넣어 갖고 다니는 오래된 책 <노인과 바다>는 결국 그런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영화 어때] 코미디 "바람 바람 바람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