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보내는 스물여덟 번째 편지
미국은 새 학기가 9월에 시작하다 보니, 8월 말부터 새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한 것 같아.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운 여름도 한 풀 꺾이고 나면 새로운 시작과 함께 어느덧 가을이 오는 것 같아. 그래서인지 가을이 오는 냄새는 뭔가 묘한 설렘을 안고 있어. 올해도 가을을 정점으로 붉게 물들었다가 서서히 마무리 지어지겠지. 우리 새 학기 새 마음처럼 다시 힘을 내서 가보자 9월!
브런치를 언니랑 함께 연재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어. 처음에 비해 글을 쓰는 기간이 조금 느슨해지긴 했지만, 워낙에 일 벌여놓길 좋아하고 마무리하는 힘이 약한 나한텐 이 정도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해! 근데 솔직히 얘기하면 최근 들어서는 하루의 일이나 감정을 적어 돌아보는 것 대신 괜히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던 것 같아. 참 희한한 게 그런 마음이 드니까 글을 더 열심히 적기는커녕 글 쓰는 행위 자체에 묘한 부담감이 생기더라고. 애초에 브런치를 시작한 게 내가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에서 시작된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몇 주 전에 뉴욕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다녀왔어. 당연히 그곳에는 고흐도 있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고흐의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됐어. 분명히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설명할 수 없는 섬세함과 색감이 주는 감동이 있었어. 이건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내가 그곳에서 가장 감명 깊게 보고 느꼈던 작품은 고흐 것이 아니었는데, 메트로폴리탄을 다녀왔기 때문에 당연하게 고흐에 대해 적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더라. 막상 고흐에 대해 적으려고 하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부족해서 고흐의 인생사에 대해 찾아보게 되더라고.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도 알아. 눈으로 보고 왔던 것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근데 분명히 반 고흐의 삶과 그의 삶에서 대단한 영감을 받는 사람들이 쓴 글도 넘칠 텐데, 나까지 반 고흐를 알리기 위한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 조금 더 개인적인 내 얘기를 적고 싶었던 취지랑 다른 것 같아 그럴 싸해 보일 것 같은 글을 적다 말았는데 그렇게 한참이 흘러 버렸네. 더 늦기 전에 그날 감명 깊었던 부분에 대해 나눠볼까 해.
차례대로 이 작품들은 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이야.
Olive Trees - Vincent Van Gogh
Little Denise - Teho van Rysselberghe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 Geroge Seurat
The Jetty at Cassis Opus - Paul Signac
위 그림은 같은 공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더라고. 사실 처음 힐끗 봤을 땐 다 한 작가가 작업한 작품들인 줄만 알았어. 그도 그럴 것이, 사진에서 미술적 기법들이 다 담기지는 않지만 비전공자가 봤을 때도 비슷해 보였거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제치고 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 가장 큰 고민거리에 대한 답을 알려준 것만 같아서야.
창작자를 꿈으로 삼고 있는 나는 피할 수 없는 난관에 마주치곤 해.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 그리고자 하는 것들이 이미 이 세상에 넘처나고 심지어 나보다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테크닉을 가진 작가들이 이미 많다는 뼈아픈 현실이랄까. 그 사실이 자주 나를 위축시키게 만들어. 어디선가 완벽한 창작은 없다는 말도 있었는데, 비전공자인 나의 자격지심에는 그게 변명거리처럼 느껴지더라고. 근데 내로라할 위의 대 작가들이 그림들이 서로 비슷한 기법을 쓰고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른 그들의 방식으로 해석이 된다는 게 참 큰 위로처럼 다가왔어. 저런 대단한 작가들도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원래 있던 방법을 자기만의 것으로 바꾸는 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텐데, 나는 뭐라고 그 노력조차 하지 않고 변명만 대고 있었을까 싶은 생각.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분명 동시대 혹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의 비슷한 작품들을 모아놓은 것도 내가 해석하는 것과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미뤄 짐작해 보게 돼.
단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를 넘어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개인의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도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진 않을까. 이미 나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혹은 나보다 나은 작가들이 많을 것 같아서 글을 잘 쓰고 싶단 욕심만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멈춰 있는 것도 어쩌면 미련한 거겠지. 어쩌면 그게 꿈을 이루는 사람과 꿈을 꿈인체로 남겨두는 사람의 차이일 수 도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말이야, 우리 잘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그냥 해보자.
나 앞으로 글도 더 막 적고 그림도 마음대로 막 그려볼려고!
언니도 그렇게 가볍게 시작하는 9월이 되길 바라.
환절기 감기 조심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