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용품 품앗이

일상

by 나브랭

아이를 먼저 키운 지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육아의 고단함을 토로할 수도 있고, 제품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더 좋은 것은 육아용품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2살 터울로 아이를 먼저 키우는 지인이 있다면 베스트다. 2살보다 터울이 적으면 아직 아이가 쓰고 있어서 물려줄 수 없고, 그 이상이면 물건의 상태를 보장할 수 없다.


시누가 유축기와 유모차를 물려주었다. 유축기는 부속품만 따로 구입하면 되니 오래 보관했더라도 상태가 좋았다. 그런데 유모차는 그러지 못했다. 시누가 언젠가 태어날 조카에게 물려줄 작정으로 베란다에 5년간 박스 채로 고이 보관해 온 유모차는 곰팡이가 점령해 있었다. 큰 유모차를 박스까지 그대로 보관해 온 정성이 무색할 정도였다. 나보다 더 미안해하는 시누를 보며 나도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보다 2년 먼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물건을 많이 물려주었다. 젖병 소독기, 이유식기, 아기 놀이터, 짱구베개, 아기 욕조 등등. 돈 주고 구입할까 말까 싶은 물건들을 엄청나게 물려줬다. 특히나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건들로만 가득 챙겨줘서 고마웠다. 1년 먼저 아기를 키우는 남편 친구는 바운서를 물려주었다.


물건을 물려받을 때에는 성별보다는 태어난 계절이 더 중요했다. 어릴 때 입히는 내복이 핑크색인지 파란색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신생아용 옷은 봄가을용/여름용/겨울용이 큰 차이가 있었다. 아기들은 태열이 있기도 해서 서늘하게 키우는 게 좋다고 하여 봄에 태어난 아기에게는 겨울 아기 신생아 옷을 입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맨입으로 받기만 하면 안 된다.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기도 하고, 물건들에 대한 가치를 지불해야 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물려준 시누에게도 감사선물을 보냈고, 친구에게도 아기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넉넉한 용돈을 선물로 보냈다.


동네 맘 카페와 당근 마켓도 엄청나게 유용했다. 신생아 카시트는 태어나서 정말 몇 번 안 쓰는 물건이라 당근 마켓에서 구입했다. 병원에서 조리원 이동할 때, 조리원 퇴소할 때 두 번 정도 사용했다.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시기가 되어 아기 체육관도 저렴하게 구했다. 아기가 물건을 집어던지는 시기라 부담 없이 쓰고, 망가져도 될 가격으로 고르니 마음도 한결 편했다. 나는 신생아 옷도 당근 마켓에서 많이 구입했다. 신생아 옷을 중고로 사 입힌다니 다들 놀랬지만, 중고로 이미 여러 번 세탁한 옷이라서 섬유 부스러기도 없으니 오히려 더 좋다. 신생아가 입는 옷은 정말 몇 번 입히지도 못하고 아기가 폭풍성장하기 때문에 새것 같은 아기 옷을 저렴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당근 마켓과 지역 맘 카페를 통해 물건들을 처분했다. 임산부 복대와 손목 보호대 같이 잠깐만 쓰는데 상태가 좋은 것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새 주인에게 보냈다. 부피가 커서 빨리 처분하고 싶었던 수유쿠션은 무료 나눔으로 새 주인을 찾아줬다.


물건의 선순환이 가장 좋은 점 아닐까. 코로나와 이상기후로 전 지구적 재난을 맞이한 이 상황에서 환경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자꾸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서 소비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건을 잘 나눠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환경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자원 선순환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시어머니에게 아기 옷을 중고로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너무 놀라시면서 새 옷을 잔뜩 사 오셨다. 아무래도 어른들은 새 옷을 입혀야 한다고 굳게 믿으시는 듯했다. 차마 당근 마켓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구입했다고는 못하고 지인에게 물려받았다고 둘러댔다. 아들에게는 딸 옷은 물려 입히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다행인지 아들 키우는 친구에게 옷을 물려받았다.) 왜 그런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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