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브랭 Oct 23. 2020

육아용품 품앗이

일상

아이를 먼저 키운 지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육아의 고단함을 토로할 수도 있고, 제품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더 좋은 것은 육아용품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2살 터울로 아이를 먼저 키우는 지인이 있다면 베스트다. 2살보다 터울이 적으면 아직 아이가 쓰고 있어서 물려줄 수 없고, 그 이상이면 물건의 상태를 보장할 수 없다.


시누가 유축기와 유모차를 물려주었다. 유축기는 부속품만 따로 구입하면 되니 오래 보관했더라도 상태가 좋았다. 그런데 유모차는 그러지 못했다. 시누가 언젠가 태어날 조카에게 물려줄 작정으로 베란다에 5년간 박스 채로 고이 보관해 온 유모차는 곰팡이가 점령해 있었다. 큰 유모차를 박스까지 그대로 보관해 온 정성이 무색할 정도였다. 나보다 더 미안해하는 시누를 보며 나도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보다 2년 먼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물건을 많이 물려주었다. 젖병 소독기, 이유식기, 아기 놀이터, 짱구베개, 아기 욕조 등등. 돈 주고 구입할까 말까 싶은 물건들을 엄청나게 물려줬다. 특히나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건들로만 가득 챙겨줘서 고마웠다. 1년 먼저 아기를 키우는 남편 친구는 바운서를 물려주었다.


물건을 물려받을 때에는 성별보다는 태어난 계절이 더 중요했다. 어릴 때 입히는 내복이 핑크색인지 파란색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신생아용 옷은 봄가을용/여름용/겨울용이 큰 차이가 있었다. 아기들은 태열이 있기도 해서 서늘하게 키우는 게 좋다고 하여 봄에 태어난 아기에게는 겨울 아기 신생아 옷을 입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맨입으로 받기만 하면 안 된다.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기도 하고, 물건들에 대한 가치를 지불해야 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물려준 시누에게도 감사선물을 보냈고, 친구에게도 아기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넉넉한 용돈을 선물로 보냈다.


동네 맘 카페와 당근 마켓도 엄청나게 유용했다. 신생아 카시트는 태어나서 정말 몇 번 안 쓰는 물건이라 당근 마켓에서 구입했다. 병원에서 조리원 이동할 때, 조리원 퇴소할 때 두 번 정도 사용했다.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시기가 되어 아기 체육관도 저렴하게 구했다. 아기가 물건을 집어던지는 시기라 부담 없이 쓰고, 망가져도 될 가격으로 고르니 마음도 한결 편했다. 나는 신생아 옷도 당근 마켓에서 많이 구입했다. 신생아 옷을 중고로 사 입힌다니 다들 놀랬지만, 중고로 이미 여러 번 세탁한 옷이라서 섬유 부스러기도 없으니 오히려 더 좋다. 신생아가 입는 옷은 정말 몇 번 입히지도 못하고 아기가 폭풍성장하기 때문에 새것 같은 아기 옷을 저렴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당근 마켓과 지역 맘 카페를 통해 물건들을 처분했다. 임산부 복대와 손목 보호대 같이 잠깐만 쓰는데 상태가 좋은 것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새 주인에게 보냈다. 부피가 커서 빨리 처분하고 싶었던 수유쿠션은 무료 나눔으로 새 주인을 찾아줬다.


물건의 선순환이 가장 좋은 점 아닐까. 코로나와 이상기후로 전 지구적 재난을 맞이한 이 상황에서 환경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자꾸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서 소비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건을 잘 나눠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환경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자원 선순환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시어머니에게 아기 옷을 중고로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너무 놀라시면서 새 옷을 잔뜩 사 오셨다. 아무래도 어른들은 새 옷을 입혀야 한다고 굳게 믿으시는 듯했다. 차마 당근 마켓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구입했다고는 하고 지인에게 물려받았다고 둘러댔다. 아들에게는 딸 옷은 물려 입히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다행인지 아들 키우는 친구에게 옷을 물려받았다.) 왜 그런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티 타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