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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3. 2020

티 타임

워킹맘 17

점심을 먹고 나른한 시간에 팀원이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오자며 모두를 이끌고 카페로 갔다. 다들 청명한 가을 하늘을 조금 더 누리고 싶어서 흔쾌히 따라나섰다. 분명히 익숙한 회사 근처인데 따뜻한 음료를 한 잔씩 손에 들고 있으니 칙칙한 직장생활에서도 온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오랜만에 나와 본 카페였다. 임신 중에도 모유수유 중에도 커피 한잔 정도는 괜찮다고들 했지만(심지어 전문가들도!) 나는 커피를 아직도 마시지 않고 있던 차였다. 괜히 아기가 눈을 똥글똥글 떠서 안 자려고 하면 낮에 마신 커피 탓을 할까 봐 스스로 자제하고 있었다. (커피는 죄가 없다.)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 핑계가 될 만한 일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성향이 있었다. 학창 시절 때 친구들이 시험기간에 고 카페인 음료(몬*터)를 먹을 때도 혹시나 시험을 망치면 그걸로 핑계를 댈까 봐 아예 먹지 않았었다. 어쩌면 항상 스스로를 탓하는 못난 습관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몸을 사리는 게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훅 풍겨오는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커피 주문을 하는데 그래도 주저하는 마음이 들어 망설였더니, 워킹맘 선배가 어깨를 툭 치며 괜찮다고 씩 웃었다. 에라 모르겠다.


"아메리카노 물 많이요~"


1년 만에 마신 커피는 향긋했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하는 피로도 녹아버렸다. 회사일도 집안일도 다 내려놓고 모처럼만에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평안한 시간은 낯설었다. 고작 15분 남짓의 짧은 티타임이 어찌나 포근했는지 오후 업무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날 밤. 아기도 푹 잤다. 나는 그동안 괜한 걱정을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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