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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4. 2020

이유식 정기배송

일상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우유 배송을 시켜 먹었다. 아침마다 집 앞 손잡이에 걸린 가방에우유와 요구르트를 꺼내는 게 내 일이었다. 엄마는 우유를 잘 먹어야 키가 큰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DHA가 전국을 휩쓸었을 때는 두뇌발달을 위해 나와 내 동생에게 DHA 강화우유를 먹였다.


우유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같이 마셔야 하는 우유는 지겨웠다. 슬쩍 우유를 안 마시고 가는 날이 늘었고, 어느샌가 냉장고 한 켠에 우유가 쌓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매일 우유가 떨어져서 우유 오라는 심부름을 했었는데, 정기배송을 시작하니 집에 쌓여서 버릴 지경이 되었다.




중기 이유식부터는 시판 이유식을 먹이면서 이유식 정기구독 서비스를 신청했다. 어차피 매일 먹이는 이유식이니 매번 번거롭게 구입하기보다는 제조사에 택배 신청하면 집 앞까시 배송해주는 점이 편리하게 느껴졌다. 카드 할인까지 야무지게 적용하면 내가 마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하여 바로 주문을 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아기가 이유식을 잘 먹어서 매번 장 보러 가기 전에 이유식이 다 떨어지곤 했는데, 정기배송을 시켜놓으니 거짓말처럼 이유식을 안 먹기 시작했다. 아기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이유식 업체를 선정하여 무려 한 달치를 시켜놨는데 이 일을 어쩌나 싶었다.


내 어린 날 우유배달의 교훈이 이제야 생각났다. 인간은 늘 망각의 동물이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심지어 아기는 먹으라 해도 말을 듣지 않으니 더 큰일이었다. 속절없이 이유식이 쌓여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레토르트 포장의 이유식이라 상온 보관이 된다는 점이었다. 쌓여가는 이유식이 냉장고 점령했다면 더 괴로웠을 테니까.


에라 아기가 안 먹으면 나라도 먹자 싶었다. 이유식을 안 먹겠다고 버티는 아기 앞에서 안 먹을 거면 엄마가 다 먹어버릴 테다 하고 선언하고 내가 먹었다. 내가 만든 이유식은 맛이 없었는데, 시판 이유식은 내가 먹어도 정말 맛있었다. 아침 차려먹기도 귀찮은데 이걸로 내가 먹어야겠다는 합리화를 하면서 정말 싹싹 닥까지 긁어먹었다.


아기는 자기 밥을 냅다 먹어버리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방금 전까지 숟가락을 들이대던 엄마가 갑자기 본인이 먹어버리니 당하는 눈치였다. 숟가락을 든 내 손을 잡아당기더니 이번에는 본인이 먹겠다고 난리였다.  딩황한건 나였다. 아기의 변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급하게 새 이유식을 데우고 숟가락으로 떠먹였더니 꿀떡꿀떡 잘 받아먹는다.


아기의 이유식 거부는 대단히 싱겁게 끝나버렸다. 아기에게 한 숟가락 떠 먹이면 훌떡 먹고는 금방 입을 또 오물거린다. 내 앞에서 입을 떡 벌린다. 더 먹겠다고 빨리 달라고 보채느라 정신이 없다. 이 아이는 왜 그러는 걸까. 그 날 이후 아기의 이유식 거부는 사라졌다. 내가 전자레인지 쪽으로 가기민 해도 좋아서 밥 달라고 입을 벌리고 있다. 이유식을 손에 들고 오면 정말로 기뻐한다. 부엌 한 켠을 가득 채울 기세였던 이유식을 해치웠다.




이유식 정기배송을 신청할 보니 2주분씩 나눠 신청할 수 있고 배송도 주 1회로 할지 주 2회로 할지 선택하도록 세분화되어있었다. 나는 선택이 귀찮아서 제일 할인율이 큰 4주분에 주 2회로 주문했다가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음 이유식 정기구독을 고민한다면 할인율은 조금 아쉬워도 2주분부터 시켜볼 것을 권한다. 아기가 먹는 속도에 맞추면서 어느 정도씩 주문해야 하는지 감을 잡는 게 필요하다.


나는 4주분 이유식 정기배송을 마치고 4주분의 이유식을 또 정기 구독했다.




시판 이유식 중에 냉장/냉동 보관해야 하는 제품들이 있다. 이런 제품을 정기 배송한다면 꼭 배송 주기를 짧게 해서 냉장/냉동 보관일을 줄일 수 있도록 고려하길 바란다. 육아하면서 냉장고 관리까지 하는 건 너무나 귀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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