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브랭 Oct 25. 2020

아기용 유기농

일상

아주 예전에 엄마 지인이 유기농 채소 장사를 했었다. 우리나라에 유기농 채소가 막 알려지고 웰빙붐이 일었을 때로 기억한다. 그때는 유기농에 관한 인식이 보편화되기 이전이라 유기농으로 사서 먹는다고 하면 돈 많은 집이라고 하며 별난 사람으로 취급했었다.


그분의 청과점은 대형 마트 인근에 있었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사람들이 마트에서 더 저렴한 식재료를 사는 게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였었다. 엄마는 가끔 지인네 가게로 채소를 팔아주러 가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비싸고 좋아 보이는 것들 대신 콩나물이나 사리 같은 저렴한 것들만 사서 왔다.


처음 보는 신기한 푸성귀들도 많았지만 엄마는 늘 몇 가지 품목만 구입할 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유기농 좋다고는 하지만 너무 비싸서 선뜻 집어 오기는 부담스럽다 했었다. 농약은 잘 씻어내면 없어진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요새는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것들이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유기농만 전문으로 하는 전문매장도 많이 생겼고,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내가 결혼하고 스스로 살림을 운하게 되면서 식재료 지출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부부 둘이 먹는 거면 차라리 사 먹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니 비싼 유기농 야채와 과일은 언감생심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이유식을 준비하면서 유기농을 구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어른들이야 대충 농약 씻어내고 먹으면 된다지만 아기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었다. 아기에게 처음 이유식을 해 주려고 남편에게 애호박과 브로콜리를 사 오라고 했다. 마트에 다녀오라고 시킨 지 한참을 지나서야 그가 의기양양하게 전리품을 꺼내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장마가 유난히도 길어 채소값이 천정부지로 뛰었을 때라 이 사람이 뭘 사 오려나 긴장되었던 참이었다. 자신감 있게 눈을 반짝이며 그는 친환경 애호박과 유기농 브로콜리를 꺼내보였다. 애호박 하나에 8000원 브로콜리 하나에 5000원이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사람이 대체 얼마짜리를 사온 건가 싶어  멍하니 쳐다봤다.  남편은 아기를 위해 유기농 재료를 심혈을 기울여 사 온 것을 칭찬해 달라는 눈치였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아기를 위한 식재료를 구해오느라 고생한 그의 노고를 치하해주며 료손질을 해서 이유식을 만들었다.


애호박 꼭지를 따면서 내가 잘라버리는 게 얼마짜리인지 생각했다. 귀한 애호박님이라 조심조심 자르고 자투리까지 박박 긁어모아 채소육수까지 냈다. 한 조각,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리라는 굳은 의지였다.


아기 이유식에 들어가는 브로콜리는 끝부분의 꽃 부분만 조금씩 사용한다. 섬유질이 많은 줄기는 아기가 소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넣지 않는다. 이렇게나 비싼 브로콜리를 꽃송이 조금 잘라내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줄기까지 몽땅 데쳐내어 저녁 반찬으로 승화시켰다. 애호박이 스쳐 지나간 된장국에 줄기까지 길게 데쳐낸 브로콜리와 초장 반찬을 본 남편이 아기랑 똑같은 메뉴를 먹는다며 아기를 보고 웃었다.


집에서 만드는 아기 이유식이 대체 얼마짜리인지 단가를 계산해보면 비용이 엄청났다. 유기농 재료로 정성껏 만들다가는 살림이 거덜 나겠다 싶었다. 아기 이유식에 들어가는 재료 양은 소량인데 이걸 위해서 매번 식재료를 구입하고 손질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부지런한 엄마들은 미리 손질한 재료를 냉동 보관해서 그때그때 쓰면 된다고 하던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마 전 아기가 먹을 요구르트를 구입하는데 유기농 유제품으로 만든 아기전용 요구르트가 따로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일반 요구르트와 아기전용 요구르트의 차이는 알겠는데 아기용 유기농 원유로 만든 요구르트라니.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 아기용 유기농 요구르트와 내가 먹을 일반 요구르트를 하나씩 구입했다. 아기 요구르트에 특별한 맛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후덜덜한 가격이 떠올라 내가 먹어볼 엄두도 안 났다.


유기농 좋은 건 알겠다만 아직도 가격에는 적응이 안된다. 로또라도 되면 유기농으로 척척 사서 먹을 수 있게 되려나 싶다.




이 이야기를 친정 엄마에게 했더니 유기농 야채와 한우만 먹여 귀하게 아들을 키운 친척이 있었는데, 그 애가 초등학생이 되더니 동네 구멍가게에서 쫀드기와 쥐포를 그 렇게나 열심히 사 먹고 다녔으며 요새는 자취한다고 라면만 먹고 산다고 했다.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며 골고루 영양섭취만 잘하면 문제없다고 껄껄 웃었다. 자식 키우는 건 정말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이유식 정기배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