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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7. 2020

부러움

일상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40평대의 넓은 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크고 번듯한 방하나를 아이 방으로 마련해 주고, 둘이 누워도 거뜬할 정도의 침대와 원목 옷장으로 멋지게 꾸며놓았다. 치워도 치워도 장난감이 끝이 없다는 친구의 집에는 장난감의 공간마저 넉넉했다. 남편 방, 아내 방, 아이 방, 고양이 방까지 집에 있는 모든 식구에게 방을 하나씩 내어주고도 아이의 놀이방이 또 있을 만큼 넉넉한 집이었다.


아이는 한 자리에서만 놀지 않았다. 친구가 방하나를 놀이방으로 만들어놓았음에도 거실까지 장난감이 점령했다. 소방차, 포클레인, 사다리차, 구급차 온갖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자동차어찌나 많은지 끝도 없었다. 친구는 200대까지 세어보다가 포기했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자동차가 내 집에 있다면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어서 장난감 위에서 살아야 할 판일 텐데, 넓은 집이라 한쪽으로 왕창 몰아놓고(아이에게 장난감 자동차를 일렬로 주차하도록 했다)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아이 짐을 밀어놓고도 어른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나는 가득 들어차 있는 아이의 짐에서 육아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종종 놀러 갔던 친구의 집이었지만, 처음으로 그 집이 부러웠다. 부쩍 아이의 짐이 자꾸 늘어간다는 사실에 압도되는 중이었다. 번듯한 아이 방을 마련해주고 아이 짐을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다면, 육아의 고단함도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 옷이 자꾸 늘어나 작아진 옷들은 다 처분하고, 내 옷들도 비워내었다. 내 옷장 한 칸을 덜어내어야 아기 옷을 넣을 수 있었다. 아기 옷장을 새로 들일 공간은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 짐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 새로 물건 하나를 들이기 위해서는 있던 것 하나를 내보내야만 했다.


내가 신혼집을 구할 때는 교통의 편리함과 주차를 고려했다. 아기를 낳을 계획은 있었지만, 집을 구할 당시에는 아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기가 있는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아기가 어떻게 삶을 바꿔놓을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 아주 작은 방 2개에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가 있는 15평 남짓의 작은 전셋집에서 둘이 살다가 셋이 되었다. 출산 직후에는 도저히 이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전세계약을 2년 더 연장했다.


아이의 짐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 6개월 즈음부터 아기가 뒤집기를 하고 활동량이 많아지면서 부피가 큰 신체 놀잇감이 들어왔다. 아이의 물건이 온 집안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점퍼루, 쏘서, 보행기들이 아기의 성장발달에 따라 차례로 들어왔다. 거실 공간에 꾸역꾸역 아기 짐이 채워졌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바운서를 치워야 했고, 잠을 자기 위해서는 보행기를 옮겨야 했다. 아기는 낙상의 위험 때문에 침대에서 재울 수 없어서 내가 아기와 거실에서 자리를 펴고 잠을 잤다. 매일 아침이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아기 장난감을 설치해주는 일을 반복했다. 아기 물건을 매일 접었다 폈다 하지 않고 한편으로 밀어 놓을 공간만이라도 좋겠다.


넉넉한 형편의 친구네가 부러웠다. 서울 한복판에서 넓은 집을 가지고 살며 모두가 자신의 공간을 갖게 되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는지 계산하는 내 속물적 감각이 부끄러웠다. 월급을 얼마나 쪼개서 아끼고 모아야 될지 아득해서 막막했다. 부러움의 끝에는 불편함이 남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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