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워킹맘

by 나브랭

점심을 조금 과하게 먹었는지 속이 계속 더부룩했다. 급한 업무를 그런대로 끝내놓고 회사 주변을 잠깐만이라도 걷고와야겠다 싶었다. 자리에서 슥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회사 주변을 빙 둘러서 화단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꽃 이름을 궁금해하면서 슬슬 걷다보니 문득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다닌 후에야 내 시간이 생겨났음이 새삼스럽다.


전업주부로 지낼 때는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신생아가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부지런히 집을 쓸고 닦고 빨래를 해치우고 하루종일 저녁밥을 생각했다. 나 혼자 먹는 점심은 대강 때워도 남편에게 저녁밥만은 최선을 다해 차려야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었다. 아기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었지만 외벌이 남편의 컨디션을 맞춰야 한다는 게 내 일상을 짓눌렀다. 재취업을 하고나서야 아내가,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정말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방이 필요했다. 홀가분하게 오롯이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일탈을 꿈꾸었다.


슬슬 걷고 또 걸었다. 미혼 시절 아저씨들이 왜 회사밖을 저리 걸어다니나 싶었는데 내가 이러고 있었다. 웃음이 났다. 회사 생각, 집 생각, 애들 생각,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을 차근차근 정리하며 가만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느긋하게 늑장을 부리는 곳이 회사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워킹맘이 되어서 마냥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는 항상 아기에게 매여있었고, 내 이름이 사라졌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없어졌다. 애기엄마. 새롭게 생긴 내 정체성이 모든 삶을 지배했다. 출근을 하면서 내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없어져버린 내 자아가, 내 꿈이, 내 미래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육아와 일상의 온/오프가 생겨났다. 회사에서 나는 온전히 나로서 존재했다. 아이엄마, 누구 아내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불리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가끔 너무나도 지쳐서 힘든 날에는 업무로 인해 좀 늦게 들어간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겠다. 아주 잠깐이라도 바깥바람을 쐬고 들어가면 기분전환이 될테니까. 이건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다. 괜히 콧노래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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