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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8. 2020

나에게도 임산부 동료가 생겼다

워킹맘 24

결혼 전부터 직장인이었다. 결혼 후에는 이직을 했다. 회사에 다니는 중에 임신을 하고 퇴사와 출산을 겪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중에 재취업을 하여 이제는 워킹맘이 되었다. 몇 차례의 퇴사와 이직을 경험하면서 나는

임산부를 직장동료로 두게 되면 정말로 잘해주리라 굳게 다짐했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인해 일가정 양립에 관한 다양한 근무개선조치가 생겼고, 임산부 근로자를 위한 보호조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제도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실제 사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나는 근로자 복지가 대단히 잘 갖추어져 있는 회사에 다녔다. 그러나 창립이래 처음 생긴 임산부 근로자 단축근무를 사용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임신은 네가 했는데 회사에서 왜 편의를 봐줘야 하는 거냐고 묻는 회사 분위기에서 당당하게 먼저 퇴근해보겠다고 말할 배짱이 없었다. 나는 참 미련하게 임산부 기간을 보냈다. 퇴사를 각오한 이후에야 겨우 용기 내어 단축근무를 신청했고 병원 정기검진을 위해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임산부에게 정말로 잘해주겠다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당신들처럼 그렇게 매몰차게 모른척하지 않을 테야. 재취업 후 내 삶에 치여 허덕허덕하던 중에 옆 부서 계약직 직원이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장들 사이에서만 쉬쉬하며 하는 이야기를 얼핏 넘겨들었다. 임신이 뭐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싶어 분개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참 쉽지 않은 문제임을 알기에 그저 고민만 할 뿐이었다.


나라도 꼭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전혀 친분이 없는 관계라 어색했다. 용기를 내어 사내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정말 우연하게 임신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축하드린다고. 그리고 아기용품이나 산모 물건을 준비하신 게 있으시냐고 물어봤다. 어디서 얘기를 들었냐고 따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금방 답신이 왔다. 아직 임신 초기이고 임신 확인한 지 정말 얼마 안 되어서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른다고 했다.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으로 내가 올해 초에 아기를 낳아서 신생아 물건과 산모 물건이 있는데 중고 물건도 괜찮으면 드리고 싶다는 본론을 꺼냈다.


계약직의 서러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미 친하고 내가 껴들어 갈 공간이 없어 소속감도 애매한데, 심지어 초기 임신의 불안정한 상태가 겹쳐있으니 마음이 얼마나 불편할까. 다정한 오지라퍼가 되기로 했다. 나도 임산부 동료가 생겼다. 아줌마의 연대의식을 발휘해보자. 내가 이러려고 노동법을 공부했고,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게 아닌가.




업무 중에 임산부 배려를 해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게 얼마나 입이 안 떨어지는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먼저 겪어본 자의 노련함으로 자상하게 조언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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