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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9. 2020

너의 퇴사를 응원해

워킹맘 26

대학 동기 B는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남편도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 결혼 후에도 자주 연락하며 지냈다.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임신도 출산도 비슷한 시기에 해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인이었다. (육아를 시작하며 미혼 친구들과는 연락이 뜸해졌다. 연락할 시간이 애매하기도 했지만, 내 관심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는 경기도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연락은 자주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육아용품을 물어보거나 육아팁을 물어보고 서로 답해주는 든든한 동지이기도 했다. B는 중견기업을 다녔는데, 회사에서는 출산휴가 까지는 가능했지만 육아휴직은 어렵다고 했다. 일단 출산휴가 3개월을 쓰고 육아휴직은 그때 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나는 출산 후 5개월 만에 재취업을 해서 출근을 하게 되었고, B는 3개월의 출산휴가를 소진하고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B에게 육아휴직 동안의 빈자리를 계속 공석으로 둘 수 없다고 했다. 1년간의 육아휴직을 허가해 주는 대신 그 이후에는 퇴사를 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회사 사정상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1년 계약직 사원을 채용하기 어려우니 친구에게 아예 퇴직을 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회사 사정상의 퇴직이라 퇴직금에 실업급여까지 받게 처리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실업급여에 대해서 대단히 혜택을 주는 것처럼 제안하는 게 화가 났다. 회사에서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퇴직금이 누적이 되고, 약간의 위로금을 더해 퇴직처리를 해준다는 것에 만족하고 받아들이기를 권고했다. B는 재취업이 두렵지 않으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자신은 이대로 집에 눌러앉게 될까 봐 걱정이라 했다. 아기를 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의 퇴사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 당장 복직을 할 수도 없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왜 그토록 열심히 취업을 위해 노력했는지 허무하다 했다.


공무원,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회사에 육아기 단축근무제도가 있어도 그림의 떡이었다. 단축근무를 신청하는 순간 회사에서 승진을 포기한 사람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곧 그만둘 사람으로 취급되기 마련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취업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단축근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정말 운이 좋게 아기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서는 엄마의 출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하는 엄마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회사 측의 입장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육아휴직 후에 복직을 포기하는 상황에서, 마냥 복직을 기다리며 공석으로 두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복직을 하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더라도 겨우 돌이 지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맞벌이 가정이라 해도 육아의 부담은 여자에게 가중되는 현실에서 엄마의 출근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B는 고민 끝에 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똑쟁이 내 친구 B는 어디에나 빛나는 사람이다.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끝을 내는 성격이라 회사일도 육아도 누구보다 잘 해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육아휴직(a.k.a 퇴사 예정) 기간을 보람차게 보내고 아이를 키워낸 다음 누구보다도 멋지게 사회에 복귀할 것임을 안다. 사랑하는 친구 B! 너의 퇴사를 응원해. 엄마로서 더 멋진 사람이 되기를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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