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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Nov 03. 2020

뿌리내리는 중

워킹맘 28

사람의 뿌리를 찾으려면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증조부모 외증조부모 순으로 차곡차곡 부모의 역사를 타고 오르기 마련이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조상을 타고 오르며 되짚어보는 것이다. 나이 서른에 아이를 낳았으니 나도 아이의 뿌리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데 아이에게는 믿을 구석이 되어줘야만 한다. 처음 살아보는 삶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아이는 자기보다 큰 부모의 행동이라면 절대적으로 믿어버린다.


나는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를 세상에 불러내어 버렸다. 내가 좋아서 낳고 기르기로 결심했다. 아이의 뿌리가 되기로 내가 결정해버렸다. 싹을 틔웠으니 부지런히 가꾸어내야 한다. 나는 이 아이의 뿌리다.  내가 자랐던 토양은 그런대로 무난했었다. 무난한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거치며 단단하게 자랐다고 믿었다. 내 뿌리 단단했고 그 덕에 크게 뻗어나갔다. 그러다가 남편을 만났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는 영 딴판인 사람이었다. 사람만 보고 만났는데 그의 뿌리를 더 알아보지 못한 것은 퍽 아쉬운 일이다.




8개월이 된 아이는 모방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 앞에서 박수를 치면 제법 흉내 내어 본인도 손바닥을 부딪쳤다. 아기는 슬슬 배밀이를 하고 싶은지 엉덩이를 쳐들었다가 다리를 한쪽으로 빼봤다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이의 성장이 새삼스러웠다. 아기 앞에서 똑같이 엎드려 엉덩이를 번쩍번쩍 들어 보였더니 꺄르르륵 웃느라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놀라운 일 투성이었다. 아기가 언제 저렇게 손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 몰랐다. 쟁반에서 쌀 튀기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는 과정이 제법 능숙한 걸 보니 하루아침에 익힌 재주가 아니다. 단풍잎 같은 손을 쫙 펴서 호랑이인형의 꼬리를 야무지게 잡아냈다. 곰인형 토끼 인형을 다 섭렵했고 외계인장난감까지 거침없이 손을 뻗어내는 모습을 보며 함께 있는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을 절감다.


워킹맘을 선택한 이유에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 뒤에 월급이라는 현실적인 필요가 숨어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돈이 엄청나게 많다면 계획을 세워 돈 쓰러 다니기에도 바쁠 텐데, 힘들게 아침부터 헐레벌떡 준비해서 회사에 매여있을 이유가 없을 터였다. 내가 워킹맘이 된 것도 같은 이유라 내 새끼를 내손으로 직접 키우지 못하고 돈 벌러 나가는 상황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내 새끼를 번듯하게 키워내기 위해,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는 레슨비를 벌기 위해 돈을 벌러 다녔다. 내 부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덜 먹고 덜 써도 내 자식만은 넉넉하게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나는 오늘도 뿌리내리고 있다. 내 자식이 흔들리지 않게 이왕이면 더 깊고 굵은 뿌리를 내리고 싶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이 들어도, 태풍이 불어도 마르지 않고 꿋꿋하게 새 잎을 밀어낸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 자식은 항상 푸르게 살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돈으로 다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돈이 아주 많으면 티끌 없이 곱게 자식을 키워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더 많이 벌어내고 싶다. 매일 흔들리며 갈팡질팡하는 알량한 워킹맘으로서의 직업의식을 다잡는다. 나는 오늘도 땅에 단단히 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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