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브랭 Nov 04. 2020

존재가 납작해지는 날

직장

회사에서 뭔가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이름으로 된 프로젝트를 몇 개나 진행하고 실적을 내도 불안하다. 내 존재가 납작해져서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정규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공고가 떴다. 승진과 초빙에 관한 공고 여러 개가 동시에 떠서 다들 그 이야기로 한창이다. 동시에 비정규직원들에게 노조 관련 궐기 서명 안내가 있었다. 옆 부서 J는 비정규직 노조 활동을 앞장서서 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J가 비정규직 노조 활동을  하면 할수록 그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회사에서 아무도 J에게 근로계약이니 비정규직이니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무기계약, 계약직, 단기근로자까지 다양한 비정규직원들이 뭉텅이로 묶여 있는 공간 속에서 내 위치를 실감하는 날이면 이렇게 납작해졌다.


계약직인 나보다 무기계약직이 더 나은 상황인 것 같았다. 나는 매년 근무평가와 실적에 전전긍긍하는데, 무기계약직원들은 매번 투쟁했고 그 결과 복지를 획득해내는 듯했다. (물론 J의 주장은 달랐다. 계약직원들은 업무성과에 대한 개인보상을 받지만, 무기계약직은 모든 성과와 업적에서 배제된다는 게 주된 불만이었다.) 나는 당장 내년의 계획을 세울 수 없어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데 더 아쉬운 것은 내쪽이 아닐까 싶지만 J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터였다. 모르겠다. 내 옆 직원과 나는 동일한 일을 하는데, 저 사람은 정규직이고 나는 왜 비정규직일까. 나도 대학을 나와 정식 채용절차를 거쳐 들어왔다. 저 사람과 나의 차이점이라면 저 사람이 입사할 때에는 비정규직이 없었던 시절이라 모두 정규직으로 뽑았고, 나는 정규직 채용이 안 나던 시절이라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는 점뿐이다. 열심히 안 했으니까 비정규직이지라는 모진 말을 흘려듣기에는 비정규직을 뽑는 사회적 흐름 속에 내가 있었음이 속상했다. 납작납작해져서 내 안의 불만도 같이 납작하게 눌려버렸으면 좋겠다.


J가 사무실로 나를 찾아와 연대서명을 받겠다고 서명판을 들이댔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를 촉구하는 일련의 선언이 어지러웠다. 무기계약직원들의 연대서명이 늘어져있는 서류의 한 귀퉁이에 계약직인 나의 신분을 밝히고 서명을 해 넣었다. 사실 이렇게 투쟁해봤자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 내년의 근로계약도 불확실한 처지라 근로조건이 개선되어도 나에게는 딱히 별일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J는 우리가 연대해야 한다는 웅변을 큰소리로 늘어놓았다. 얼른 서명을 해주고 J를 돌려보냈다. 더 납작해진 나를 들키기라도 할 세라 괜히 모니터에 관련도 없는 엑셀 파일을 띄우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비정규직으로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해서 몇 번의 퇴사와 이직을 했고, 임신과 출산을 계기로 근로계약을 종료하고 퇴사를 했다. 인생의 변화와 함께 이직을 했고, 어쩌면 전문 프리랜서로, 엄마 프리랜서로 거듭나리라 마음을 다잡는 중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거창한 정치적인 일은 잘 모른다. 평등과 공평이라는 어려운 명제도 모르겠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동등한 처우를 바탕으로 동료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너무 납작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벌써 아득하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워킹맘 선배,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