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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Jan 04. 2021

열등감 극복 원년(feat. 계약직)

직장

처음 사회생활을 계약직으로 시작했다는 열등감이 컸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것에 위축되고 초라함을 느낀 날도 여러 번이었다. 남들이 뭐라 하지 않아도 자체 검열했다. '감히' 내가 그래도 되는 건가 싶어 주춤거렸던 여러 밤이 지났다. 이제는 사회 물을 먹을 대로 먹어서 뻔뻔해지고 배짱도 커졌다. 몇 번의 이직을 거치면서 여러 회사의 시스템을 평가해 보기도 했다. 계약 동안에 충실하게, 내 신분은 명확하게 인식하며 맡은 일만 완수하면 되는 프리랜서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내 삶을 좌우할 만큼 엄청난 차이는 아니니까.


연말과 연초에는 항상 새삼스럽다. 퇴직자와 복직자로 분주하다. 퇴직자는 있는데 신규 입직은 계약직으로만 충원하고 있으니 사무실에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은 곳도 꽤나 많아졌다. 정규직은 관리자 급에만 남아있고 실무는 계약직원들이 담당하는 일은 당연해졌다.  더 우스운 일은 임원 역시 2년짜리 계약직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고위직과 하위직이 모두 계약직인데, 임원은 우러러보고 실무자를 안타깝게 여길 필요가 있을까.


비정규직도 다양한 직제로 구성되어 있다. 계약직, 무기계약직, 프리랜서, 일용직까지 한 데로 묶을 수 있는 듯하면서도 서로 묶일 수 없다. 그중에 내가 껴있다. 업무는 정규직과 동등하게 하면서 복지나 대우는 비정규직으로 받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시키는데 왜 비정규직인지 생각하는 것은 이미 예전에 그만두었다. 사회의 변화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쯤으로 생각한다. 간혹 있는 정규직 채용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기대했던 때도 있었다. 아무리 공정한 채용이라 해도 실제로 공정하지는 않았다.


매년 재계약을 한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에게 나의 능력을 평가받는다. 정규직은 입사 이후로 단 한 번도 직업의 위치를 두고 평가받지 않는데, 계약직에게만 매년 업무능력을 평가하고 합격과 불합격을 논의한다. 어제까지 업무협의회를 하던 동료가 근로계약 면접의 평가자로 앉아있는 것만큼 불쾌한 경험은 없다. 업무를 하면서도 서로 일을 덜 하겠다고 업무를 왕창 떼어주던 사람이 평가자라며 인사 채점표를 들고 있을 때 인격적으로 무시당한다고 느껴 분개했다.


세상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마음이 닳고 닳아 무뎌졌다는 것과 같은가 보다. 어지간한 일에는 분개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려니 하는 일이 쌓여갔다. 계약직끼리 시기 질투하며 나 대신 저 사람이 계약 연장되는 것이 아닌지 전전긍긍하던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 그 사람이 더 뛰어난 점도 있었을 텐데 옹졸했던 시절에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못했었다. 그래도 매번 계약이 연장되어 무사하게 근무했다. 근무처의 예정된 인원감축이 아니고서는 연속 근로했다. 비정규직을 몇 년 연속으로 채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긴 이후로는 몇 년 단위로 이직해야 했다. 그래도 경력이 쌓인 이후로는 이직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옳겨다니며 일했다.


아예 다른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계약이 끝나는 시기에는 초라함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다른 분야의 채용에도 기웃거렸다. 그러나 배운 게 도둑질뿐이라 그랬는지 매번 도돌이표였다. 어느새 쌓여있는 경력에서 오는 안락함에 도전정신이 흐려졌다. 쓸데없는 자격증과 연수 이수증만 쌓였다. 앞날의 막막함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열정적으로 각종 교육과 세미나를 찾아들었다. 내 이름을 건 사업이라도 차리겠다며 각종 분야를 막론하고 기웃거렸다. 그 덕에 매년 근로계약을 할 때마다 자격사항을 추가해 넣을 수 있었다. 사실 그뿐이다.


2021년에는 열등감이라는 고질병을 극복해보려 한다. 계약직으로 아이를 임신하며 마음이 정말 힘들었다. 계약직이 '감히' 모성보호를 언급한 덕에 출산휴가는 불가능했다. 계약 만료로 퇴사했다. 실직자이며 구직자인 신분으로 출산을 했고 그렇게 내 존재가 초라해졌다. 대단한 행운으로 출산 5개월 만에 재취업이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여전히 계약직이었다. 정규직이라면 출산휴가에 육아휴직까지 썼어야 마땅한 시간에 조급함을 가질 수밖에 없음이 괴로웠다. 한번 뒤쳐지면 끝이라는 조급함이 나를 옭아맸다. 계약직이라는 열등한 위치가 존재까지도 열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해지고 싶다.


정규직 부장이 계약직원에게만 과도한 업무를 분장한다면 지적하겠다. 가장 감사팀 지적이 많은 업무를 매년 바뀌는 계약직에게 몰아주며 나몰라라 하는 태도를 순순히 넘기지 않겠다. 다른 직장도 얼마든지 있고, 합리적인 곳이 더 많을 것임을 안다.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감히'라는 말에 주눅 들지 않겠다.  노동의 대가에는 인격모독까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자존감을 위해 노력하겠다. 2021년에는 스스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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