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브랭 Nov 18. 2020

강제 미니멀 라이프

일상

결혼을 하면서 서울로 왔다. 경기도의 40평대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널찍이 살다가 서울의 10평(32제곱미터) 빌라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은 숨이 막혔다. 이 코딱지만 한 공간에 전세로 살 수 있는 보증금이 2억이었다. 내가 결혼한 시기에는 2억이면 경기도의 웬만한 30평대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싶었다.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경기도에서 20평대의 아파트를 충분히 살 법한 2억은 서울에서는 10평짜리 빌라 전세밖에는 안 되는 돈이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강박행동을 하듯이 나도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에만 들어가면 숨이 막혔다. 창문을 죄다 열어젖히고 환기를 해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자꾸 갑갑하다는 내 말에 남편은 화를 냈다. 내가 좁은 집에 대한 불편을 느낄 때마다 남편은 더 짜증을 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의 차이는 번번이 다툼이 되었다. 정말로 가슴이 갑갑해서 숨이 막혔다. 한밤중에 도저히 숨이 안 쉬어져서 거실로 나와 창문을 활짝 열고 잠을 잤다. 남편은 집이 좁다고 시위하는거냐며 눈을 부라렸다.


남편과 내가 모은 돈을 탈탈 털어(양가 부모님의 도움까지 보태) 겨우 전세로 마련한 신혼집은 지나치게 좁았다. 가전은 무조건 큰 게 좋다는 결혼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코딱지만 한 집에 냉장고를 모셔두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가전 매장을 돌아다니며 겨우 구색을 맞춰 넣은 가전들로 신혼집을 채워 넣었다. 


마어마한 서울의 주거비를 치르고 나니 남는 게 거의 없어 식탁 대신 남편이 쓰던 책상을 놓고, 내가 쓰던 의자를 뒀다. 옷장도 남편이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고 추가로 필요한 것은 아주 조금씩만 구입했다. 텔레비전도 소파도 없는 신혼집이었지만 짐이 꽉 들어찼다. 발 디딜 틈 없는 코딱지만 한 집에서 소꿉놀이하는 신혼 기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쌓여있는 짐에 숨통이 막히는 기분이라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크게 넘어져서 허리를 삐끗한 터라 치료를 위해 잠깐 들른 한의원에서 나이 지긋한 여의사가 나를 보더니 스트레스가 많다고 알아봐 주었다. 화병이라 했다. 기운이 역상 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 법이라며 다정하게 설명해 줬다. 엄청나게 긴 침을 정수리에 꽂아 넣고 가슴 사이에도 찔러 넣었다. 묵직하게 아팠다. 결혼생활은 원래 피곤한 법이라는 위로와 함께 옷을 풀어헤치고 침을 맞고 있는 내 꼴이 퍽 우스웠다.




그럭저럭 코딱지 하우스에 정을 붙이고 살게 되었다. 살면서 아이도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는 도저히 이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전세계약을 연장했다. 아이가 크면서 짐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식탁도 치우고 의자들도 비워냈다. 옷장도 비워내어 아이 옷을 수납했다. 주말마다 집안 물건들을 어디로 옮길 것인지 고민했다. 쓸만한 것은 저렴하게 중고로 팔고, 애매한 것들은 무료 나눔 했다. 수많은 물건들이 비워지고 또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찼다.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집이 하도 좁아서 짐을 조금만 치워내도 새로운 공간이 된다. 테트리스하는 느낌으로 공간을 재구성한다. 단출한 살림이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하나를 들이고 싶으면 하나를 비워내야 하는 내 보금자리가 좋다. 남들은 거창하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강제적으로 시작하게 된 셈이지만 그런대로 만족한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결론은 미니멀 라이프다.


최근에는 아예 물욕이 사라져 버린 듯하다. 이제는 출근할 때 가방도 안 가지고 다닌다. 주머니에 스마트폰 하나만 챙기면 외출 준비가 끝난다. 혼수품으로 갖고 싶었던 비싼 가방도 이제는 관심조차 없어졌다. 맨몸으로 가볍게 다니는 게 좋다. 새 옷도 거의 사지 않는다. 새 옷을 사려면 입던 옷을 비워내야 하는 극도로 제한된 옷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충분히 옷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좁은 집에 살면서 물욕으로 넘치던 내가 완전히 바뀌었다. 냉장고에도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보관하고 냉동식품도 무턱대고 쟁여두지 않는다. 저장할 공간도 없을뿐더러, 매번 소량씩 구입해서 제때 해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인간 개조 수준이다. 워낙 짐이 없던 남편과는 반대로 물건의 숲에서 허덕이던 나는 버리는 과정에서 새로 태어났다. 가끔씩 대용량 물건을 덜컥 사버리는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매번 놓을 공간이 없어 후회한다. 본디 물욕이 넘치게 태어나 30년을 살아왔기에 가끔 예전의 성향이 나오기도 하지만 곧 다시 깨닫는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기본적인 의류는 가지고 있어야 해서 아직도 다 비워내지 못했다. 아주 예전에 보았던 책도 정리를 못한 것이 있다. 이제는 거의 안 보는 대학 전공서적도 차마 버리지를 못하기 모셔둔 것이 있다. 본질적으로 미니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주말이면 고작 바닥을 쓸고 에코백에 아무렇게나 구겨져있는 영수증 따위를 비워내며 뿌듯해하는 모순적인 사람이다. 그래도 아주 느리게 조금씩 비우고 있다.


책장을 가득 메우던 책도 많이 비워냈고, 어디선가 받아오기만 했던 문구류도 많이 써서 치웠다. 새물건을 그대로 버리지는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한번 더 돌아보고 악착같이 사용해서 소비했다. 냉장고 파먹기도 진지하게 임해서 새로운 식재료는 구매하지 않았다. 아이가 있으니 떨어지지 않게 구비하는 계란, 우유, 치즈 등의 품목을 제외하고는 과일도 고민하며 구입한다. 신혼 때 구입한 400리터 냉장고가 벌써 5년이 넘어간다. 아직도 공간이 널찍해서 갑자기 국을 끓여도 냄비채로 거뜬히 넣을 수 있게 유지하려 애쓴다.


수납용품도 가능한 새로 들이지 않는다. 수납을 위해 새 용기를 구입하는 일은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깔맞춤과 통일감 대신 간소함을 선택한다. 가능한 올인원 제품을 구매하려 애쓴다. 플라스틱 통보다 자연물을 추구한다. 칫솔도 치약도 샴푸도 쟁여두지 않으려 애쓴다. 마트에는 묶음판매 상품의 가성비가 높아 자연히 그쪽으로 손길이 간다. 그럴 때마다 과감히 주변과 나눈다.


물건의 용도를 한정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오래되어 몸에 바르기 찝찝해진 로션은 가죽제품에 바른다. 돈 주고 일부러 가죽광택제는 사지 않는다. 가죽은 동물의 피부이니 그런대로 괜찮을 것이다. 로션으로 관리한 가죽가방은 그런대로 광택이 잘 유지되어 새것처럼 쓰고 있어 좋다.


컵받침이 필요하길래 부리나케 못 입게 된 면티로 패브릭얀을 만들었다. 두께도 내 맘대로 성글게 코바늘로 뚝딱 떠서 컵받침을 만들었다. 어차피 나만 쓰는 물건이니 이러나저러나 만족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아직도 물욕이 생길 때가 있어 옷장의 공간이 없어졌다. 이제 여름옷 정리를 하며 못 입게 된 것들로 패브릭얀을 넉넉히 만들 예정이다. 이번엔 목도리를 떠보려 한다. 면티로 성글게 짜서 휘뚜루마뚜루 두르고 다닐 테다. 그리고 그쯤 사용하면 미련 없이 털어버리겠다. 이제는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고 쌓아두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다. 잘 활용하고 미련 없이 버리고 싶다. 강제 미니멀 라이프가 이제는 좋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 인간을 청산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