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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Nov 20. 2020

실력형 팀장 vs. 정치형 팀장

워킹맘 37

팀장 직급을 달고 있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정말 개인의 능력이 출중하여 리더로서 손색이 없는 팀장과 저 양반의 특기는 사내정치다 싶은 팀장이다. 두 부류의 팀장을 모두 모셔본 입장에서 정치형 팀장의 손을 들어준다면 의외일까.


실력형 팀장은 일을 잘한다. 정말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다. 본인이 업무 전체의 프로세스를 꿰뚫고 있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막히게 될지를 정확히 안다. 업무에서 적당히 융통성 있게 하려고 하면 칼 같은 지적이 들어온다. 이런 팀장은 감사팀을 매사에 의식한다. 이런 건 여기서 조심해야 하고, 이건 감사대상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게 항상 업무지시에 따라붙는다. 적당히 깔끔하게 처신하고 행동도 담백하다. 인격적으로도 무난해서 멘토로 삼기에 적절하다.


정치형 팀장은 일을 안 한다. 세상 느긋하게 살면서 사무실에서 손톱이나 깎아대는(!) 여유를 부린다. 매사에 헐랭 헐랭 하면서도 남의 공적은 기가 막히게 가로채서 뒤통수를 맞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내가 잘돼서 너를 끌어주겠다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필요할 때는 안 보이는데 귀신같이 임원 옆에 가 있다. 업무보다 업무추진을 빙자한 회식을 제일 잘한다. 임원의 술시중을 어찌나 잘 드는지 술상무라는 직책은 저인 간을 위한 건가 싶다. 매년 용케도 회사에 다니고 있다.


실력형 팀장에게는 항상 일이 많다. 업무가 늘 바쁘게 돌아가고 업무과정도 관리가 잘 되어있어 누가 봐도 저 팀은 일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반면, 정치형 팀장은 팀원의 일과 팀장의 일이 다르게 돌아간다. 팀원은 바쁜데 팀장은 여유롭다. 팀원들이 열심히 밑 작업과 리서치를 해도 정치형 팀장은 이 보고서가 임원에게 어떻게 매력적 일지를 판단한다. 그의 심미안에 충족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문제는 그의 심미안에는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일을 잘하는 팀원은 어딜 가나 환영받기 마련이다. 실력형 팀장이 유능한 팀원을 발굴하는 능력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팀원이 유능해봤자 실력형 팀장에 비할 수는 없다. 실력형 팀장이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이 되어버리면 항상 압도당한다. 높은 비전을 쫒아가기만 해도 벅차다. 물론 실력을 갈고닦을 기회는 충분하다. 그러나 정치형 팀장에게는 실력형 팀원이 매우 소중하다. 그의 허접한 실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인재를 그냥 놓칠 리 없다. 정치형 인간은 유능한 팀원을 아낀다. 막판에 업적을 가로채는 게 문제일 뿐, 업무처리에서 권한은 최대로 준다. 일개 사원에게 아예 팀장 전권까지 실어주는 경우도 있다.


정치형 팀장은 임원에게 인정받는다. 일은 탱자탱자 안 하는데 말은 번드르르해서 각종 현란한 수치와 장밋빛 청사진으로 임원을 홀려놓는다. 그의 말에 근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유능한 팀원이다. 회의마다 별의별 이상한 트집으로 다 되는 업무를 엎어놓기를 반복하지만, 결국 임원 입맛에 맞는 보고서가 탄생한다. 팀원만 죽어라 갈리고 소진된다. 가끔은 내가 업무능력이 향상되는 건지, 보고서 서식생성능력이 향상되는 건지 헷갈린다.




먹고사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별거 아닌 일에 힘을 쏟으며 열정을 낭비하는 대가로 한 달을 먹고 살 양식을 얻는다고 하면 비참할까. 내가 남들의 비위를 조금 신경 쓴다면 정치형 팀장이 여러모로 편했다. 정치형 팀장을 적당히 경멸하면서도 그에게서 생존본능을 배웠다. 어차리 내가 열심히 보고서를 써봤자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아봤자 회사 일일 뿐이다. 힘을 빼고 바라보니 모두 회사 안의 일이다. 매사에 힘 빼고 살자.




회사 속에서 인정받는 다고 해서 내가 인간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데 오래 걸렸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해서 인생이 대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아직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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