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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Dec 07. 2020

2020 자기 평가 소회

직장

구직할 때는 입사만을 꿈꿨다. 대단히 유능한 인재라고 착각하면서 뽑아주시기만 한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 입사 후 업무를 배정받으면 이건 이래서 어렵고 저건 저래서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늘어놓기 급급했다. 나만 그런 걸까.


회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감각해졌다. 집단 속에 누군가로 존재한다는 것은 거대한 익명성 뒤에 숨는 것과 마찬가지다. 네모난 명함 따위를 내밀며 자기소개를 하는 행동은 실상 회사의 이름값에 기대지 않으면 별볼것없는 인간이기에  그런 것이다.


내선전화가 울린다. ㅇㅇ부 ㅇㅇㅇ입니다. 내 이름을 말했지만 사실 내가 아니다. 김대리가 될 수도 있고 이주임이라도 상관없다. 누구나 대체 가능했고 아무나 다 될 수 있다. 나는 매일매일 작아졌다.


네모 반듯한 건물에서 네모나게 정돈되면서 공산품처럼 비슷비슷한 인간이 되었다. 구직시장에는 나같이 생긴 비슷한 사람이 쌓여있어서 회사는 아무나 골라잡으면 되었다.  네모 반듯한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만큼 돈을 받았다. 가끔 유별나게 오래 앉아있게 되는 날에는 꼬박꼬박 초과수당을 챙겨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네모난 식판에 밥을 먹었고, 네모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일이란 것도 뻔하다. 기본적으로 남의 일이다. 월 수익이 얼마고 지출이 얼마라는 숫자놀음은 대표에게나 중요할 뿐이다. 한 달 동안 충실하게 숫자로 대표되는 생산활동을 했을 뿐이다. 가끔 내가 만들어낸 숫자가 유난히도 대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 봤자 회사일이다. 개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약간의 업무적 수식어와 쓸데없는 뿌듯함 뿐이었다.


나의 고유성과 개성을 잃어가도 상관없었다. 취업하려는 사람은 늘 많았다.  회사를 바꿔보면 달라질 줄 알았더니 그것도 착각이었다. 퇴사의 끝이 이직으로 이어진다면 일하는 장소만 달라질 뿐이다. 어딜 가나 다 회사일일 뿐이다.


이쯤 되니 헷갈리기도 하다. 내가 나로서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가. 회사 일이 내 일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회사 인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쳐서 고작 이직을 햔 것이 씁쓸하다. 연말이다. 근로계약의 시즌이다. 그래서 더 헛헛하다. 자기 평가를 적어내며 허무하다. 회사 일은 이것도 저것도 했는데, 자기 발전은 무엇을 이뤄냈을까. 참 별 볼 일 없는 한 해였다. 벌써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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