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부서에서 다툼이 생겼다. 정규직 관리자인 A와 무기계약직 B가 업무권한을 두고 엄청나게 싸웠다. B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부터 쌓여왔던 누적된 갈등이 터졌다. B는 자신의 고유업무이기 때문에 관리감독받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의 결재라인에 A를 빼 달라고 했다. 바로 부서장보고를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A는 무기계약직 감독 및 업무관리가 본인의 일이기 때문에 B의 업무를 확인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오래된 갈등이었다. 비정규직 노조까지 합세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여기 까지라면 옆 부서의 일인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불똥이 나에게도 튀었다. 부서 간 협조를 맡고 있다 보니 업무협조요청을 누구에게 보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었다. A는 자신에게 보내라 했고, B는 자신이 맡은 일이라 했다. 결국 부장에게 보고하고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다. A가 찾아와서 나에게 하소연했다. 그러고 나면 B도 찾아와서 A가 자신의 고유업무를 건드린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비정규직 노조까지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완전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제대로 터지는 중이었다.
A가 감독권한이 있고, B는 실무를 맡아서 하는 것으로 업무분장이 이루어져 있었다. 문제는 정규직원과 무기계약직의 처우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무기계약직원들은 자신들의 업무 고유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미해결 된 과제가 많은 것도 현실이었다. 부장이 일단 우리는 빠져있자고 했다. A와 B가 알아서 해결할 때까지 어떤 업무협조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 손쉬운 미봉책이었다.
나 역시 계약직이기 때문에 B의 입장을 모르지 않는다. 가끔은 고유업무를 주장할 수 있는 B가 부럽기도 했다. 무기계약이라도 어쨌든 정년이 보장되어있으니 미래를 안정적으로 계획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매년 뜨내기 같았다. 일 년마다 근로계약을 하면서 올해는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늘 미래가 불안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데 왜 비정규직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산휴 대체, 휴직대체로 계약직이 꽤 있었지만 그들과 정규직원의 능력이나 역량의 차이는 없었다. 정말 능력이 달랐다면 채용조차 되지 않았을 터였다.
매년 구직을 하는 입장에서는 늘 마음이 조급했다. 업무 퍼포먼스를 얼마나 보이면 재계약이 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좋은 성과가 나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리라 믿었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정규직이 과연 존재하긴 할까. 얼마 전 정규직원이 퇴사했다. 그는 더 나은 일을 찾는다고 했다. 그의 후임은 채용되지 않았다. 같은 부서의 계약직 직원에게 추가된 업무가 생겼을 뿐이었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정규직 신입을 뽑지 않았다. 고작해야 계약직을 뽑았다. 그럼 계약직 채용이 대세가 된 것일까 싶다가도 가끔 뜨문뜨문 정규직 채용이 있었다. 가장 최근의 정규직 채용은 2년 전이었는데, 임원 줄은 잡고 있어야 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았다고 했다.
A와 B의 다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모두가 같은 동료의식을 갖고 협력하는 사내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정규직원이 된다면 다르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