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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Dec 10. 2020

노력이 '옆'그레이드가 될지라도

직장

계약직의 딱 하나 장점은 개인역량개발을 엄청나게 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매년 자격증을 하나씩 취득했다. 임신 중에도 자격증을 땄고, 출산 후 조리원에서도 공부해서 자격증을 땄다. 자기 계발의 원동력이 불안이라니 우습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동기부여로써는 계약직의 불안 만한 것이 없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도 계획대로 모든 자격증을 다 취득했으니 칭찬을 넘치게 해도 모자랄 것 같지만, 딱히 크게 능력이 향상된 것도 잘 모르겠다. 그냥 '옆'그레이드에 지나지 않았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으나 고작 비슷비슷한 수준에서 크게 변하지 못했다. 딱히 회사에서 자격증을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직급수당을 붙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자격증 소지자만 맡을 수 있는 특수 업으로 이직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다만, 매년 구직하는 입장에서 뭐라도 새로운 것을 써넣는다는 위안만 될 뿐이었다.


자격증 취득도 약간의 중독이었다. 뭔가 해냈다는 만족감과 자존감을 주면서도 누구에게 적당히 자랑할 만한 정도의 수준이었다. 매년 해왔으니 당연히 다른 것을 시도해봐야겠다는 나름의 관성도 붙어있었다. 내년에는 뭘 해볼까 생각하다 어떤 자격증을 따 볼까 찾아보는 것은 삶의 패턴일 뿐이었다.


분야도 중구난방이었다. 교육 자격증도 있고, 강사 자격도 있다. 어학자격도 있고, 상담사 자격도 있다. 나름 국가공인자격을 골라서, 공신력 있는 것만 따 본다고 노력했는데도 사실 별 볼일 없음을 안다. 한 분야를 진득이 공부하는 것도 아닌 데다 단순히 자격증으로는 전문가적  지식을 갖추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공부해서 열심히 취득한 자격증일지라도 의사면허 수준도 아니니 지금껏 근근이 계약직으로만 살아가는 중임을 알고 있다. 나의 불안한 신분을 가리기 위해 자격증 개수만 늘리는 게 아닌가 하는 자아비판도 꾸준했다.




직장동료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올해 '직업상담사'자격을 땄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반응이었다. 언제 그리 부지런하게 공부했냐는 물음에 출산 후 할 게 없어 슬슬 공부했다고 답했더니 '존경한다'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오히려 더 놀라는 것은 내쪽이었다. 별 것도 아니었다는 대답에 자존감을 한껏 올려주는 호들갑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스스로를 덜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알고 보면 대단한 사람인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어깨가 슬쩍 으쓱했다. 괜히 추진력이 발동해서 내년에는 어떤 자격을 취득해볼까 기웃거릴 힘이 생겼다. 매년 생각만 하고 있는 운동 관련 자격증을 해볼까, 요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학원을 다녀볼까 생각했다. 나 쫌 멋진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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