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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Feb 14. 2021

결혼, 육아 후유증

워킹맘

처음 질병을 인지한 때는 2018년 10월이었다. 2018년 여름에 결혼을 하고 같이 살게 되었는데 남편이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서 말을 좀 웅얼거리지 말고 똑바로 하라고 몇 번이나 화를 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말귀도 못 알아듣냐고 짜증을 냈다. 소리가 안 들리니 목소리가 자동으로 커지는지라 매일 피곤했다. 정말 매일 다퉜다. 살벌한 신혼생활이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잘 안 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내가 문제가 있나 싶어 병원에 갔다.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증상을 의사에게 말하니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냐고 물었다. 적당히 한 달쯤 된 것 같다는 말에 최근 특별한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설명에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몇 번의 청력검사 끝에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명이 나왔다. 너무 오랜 시간 방치했기에 약을 먹고 호전이 안될 수도 있다고 했다. 고막 주사도 있는데 약으로 호전이 안되면 효과가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뭔가 홀가분했다. 결혼이 나의 스트레스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남편이 싫어져서 그런 게 아니라 청력에 문제가 있어 그동안 안 들렸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다행이었다.


의사 말대로 약물치료를 했음에도 청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저음의 남성 목소리 음역대를 잘 듣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소리는 잘 듣는데 남편 목소리만 안 들렸다. 집중을 해야만 들을 수 있고,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거나 소음이 있는 상황에서는 남편 목소리가 안 들렸다. 남편도 내 병을 알게 된 후로 너그러워졌다. 안 들려서 못 듣는다는데 화를 낼 수도 없지 않겠는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남편 목소리가 들리긴 했다. 약해진 청력에 적응한 건지 눈치가 생긴 건지 남편이 뭐라고 말하는지 제법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꾀가 늘어서 남편 말에 대답하기 싫을 때에는 못 들은 척해버리기도 했다. 안 들린다는데 별 수 없지 않겠는가.



2020년 겨울이었다. 누웠다가 일어날 때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지럼증이 심해서 걸어 다니기도 어려웠다. 의자에 앉아있다 일어나다가 크게 넘어진 적도 있었다. 또 이비인후과에 갔다. 이번에는 전정신경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에게 기존 돌발성 난청 병력에 대해 말하고, 혹시 전정신경염과 관련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의사는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는 있다며, 휴식을 권했다. 모유 수유하며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반드시 쉬면서 회복해야 한다 했다.


10개월을 모유 수유하며 회사까지 다니고 있으니 체력이 남아날 리가 만무했다. 아무리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고, 남편이 가사를 분담한다 해도 워킹맘의 일상은 고단했다.


2021년 2월 현재, 다시 남편 목소리가 안 들린다. 고단한 워킹맘 생활이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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