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정규직 채용공고는 몇 년째 나지 않았다. 계약직으로 인원을 채우고, 나이 든 어르신들이 원로 대우를 받으며 존재하는 곳이었다.
몇 년째 정규직으로는 신규 입직이 없으니 계약직으로만 인력 충원이 되고 있었다. 오래된 곳이 으레 그렇듯이 라인과 연줄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새로 입사하는 사람이 누구 라인인지가 초유의 관심이었다. 원로급들이 차례로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언젠가는 정규직 대량 채용이 있을게 뻔한지라 다들 연줄을 대고 싶어 했다.
문제는 나였다. 나만 연줄이 없었다. 대학 선배도, 은사님의 은혜도, 높으신 분의 입김도 없었다. 어쩌다가 우연히 추가로 생긴 공석에 내가 입성하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내가 궁금했음이 틀림없다. 퇴직하는 분이 따로 불러 정직 원되려고 몸 바쳐 충성하지 말라는 덕담을 해주신 것을 시작으로 빠꼼이들이 달려들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대학이 어디인지 출신이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미 사회의 때가 묻어있던지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누구 라인이냐 묻길래 씩 웃으며 답해줬다.
그러게요
생각보다 효과는 굉장했다. 라인이 누구냐, 뒷배가 누구냐 따위의 시시한 말이 싹 사라졌다. 약간의 수군거림이 있는 걸 보니 뭔가 상상하는 게 있나 본데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말해줄 게 있어야 대답을 해줄 텐데, 최선을 다한 내 대답은 꽤 쓸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