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째 이어지는 푸념
요즘 친구들과 만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의 주제가 있다.
바로 '나이'
속된 말로 '마지노선'에 서있는 우리들
아직도 내 나이가 실감이 안 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몇 살이냐 묻는 사람들이 야속하고 또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내 나이를 듣고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해가 바뀐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왠지 아직도 내 나이가 내 나이 같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나이라는 족쇄로 스스로를 걸어 잠그기 시작한 건 스물아홉이 되고부터다.
일도 사랑도 위태로웠던 스물여덟
도통 뭐 하나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더 무기력해졌으며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얕은 우울증이 아니었나 싶다.
난 내 인생에서 그 해를 통째로 잃어버렸다고 말하곤 한다.
정신 차려보니 스물아홉이었고 곧 서른이라는 된 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나이먹음에 대한 강박이 시작됐다.
지나고 보니 그때도 참 어렸는데...
매년 되풀이되는 푸념이자 회한이다.
여느 때처럼 친구와 마주 앉아 일상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이별한 동생 이야기를 하며 스물아홉의 이별이 당사자에겐 벼랑 끝에 내몰린 것처럼 절망적인 기분이겠지만 스물아홉을 이미 몇 해 전 살아본 나에겐 그러지 않아도 되는 작은 해프닝에 불과할 것 같다 말했다.
충분히 어린데... 실컷 즐기며 살아도 될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던 찰나 친구가 말했다.
데자뷰 !
응?
몇 해전 방콕 여행을 갔을 때였다.
우연찮게 일정이 맞아 방콕 현지에서 업무차 알던 실장님과 만나 가볍게 술 한잔 한 적이 있다.
해가 뉘엿 뉘엿 질 무렵까지 술자리가 이어졌고 기분 좋은 날씨와 여행지에서 마주친 우연한 만남이 즐거웠다.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시작됐다.
당시 내 나이 서른하나,
실장님은 마흔,
그녀 눈에 나는 아직 새파랗게 젊은 그러니까 마냥 부러운 나이었을 거다.
그런데 그때도 난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철없이 놀면 안 될 거 같고 아무나 만날 수가 없다 푸념했다.
실장님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철없이 놀아도 되고 아무나는 아니더라도 누구든 만나볼 수 있는 나이라 했다.
머리로는 알았다 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아직도 서른을 넘긴 나이인 나는 뭐든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친구가 실장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얘는 맨날 나이 타령하며 몸 사려요!!!"
그랬다.
매년 나이 타령이나 하고 있는 내가 누구한테 조언이랍시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렵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도 지금의 이 나이가 처음이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다.
그리고 대화 끝에 이런 쓸모없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몇 살이냐 묻는걸 법적으로 금지했으면 좋겠어!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이 몇 살인지가 뭐 그렇게 궁금할까?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나이를 공개하면 안 되게 막아줘야 해!"
도대체 내 나이가 어때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하게 된 걸까. 내가 문제인 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세상이 문제인 건지 헷갈린다.
문뜩 오늘 아침 네이버 메인에 뜬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87년 미혼 김수진씨 "나는 정말 끝난 것일까?"
기사 제목 한번 참 무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