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잊고 사는 그대에게
나는 9년 차 회사원이다.
흔히 말하는 회사에서 가장 많은 업무를 해야 하는 대리 말년 차이기도 하다. 9년의 경력과 커리어가 쌓이는 동안 나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역할과 책임도 동시에 늘어났다. 무엇보다 어제가 오늘 같았고 내일도 오늘과 별다를 게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고단했다. 내 인생은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같은 패턴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회사원의 삶을 사는 동안 자연스레 꿈이라는 것과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얼마 전 신입사원 교육에 참관한 적이 있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온 신입직원들은 뭐가 그렇게 즐겁고 재밌는지 교육 시간 내내 참 해맑았다. 그때 환영사를 해주러 온 사장님은 대뜸 신입직원들에게 꿈이 뭐냐 물으셨다.
그들은 사장님의 기습적인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보란 듯이 자신들의 꿈을 읊어내기 시작했다.
'저는 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요.'
'저는 존경받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저는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나는 신입직원들의 패기 있는 답변을 들으며 옆에 앉아있던 동료를 툭툭 치며 이렇게 말했다.
"쟤들은 어려서 그런지 꿈이라는 게 있네요?"
"저는 저한테도 같은 질문 할까 봐 엄청 쫄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일에 치여 지내다 보니 언젠가부터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 언짢은 일 없이 무사히 보내면 그만이고 매주 돌아오는 금요일이 행복했으며 해마다 몇 번의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뭐가 되고 싶거나 뭐를 이루겠다거나, 이런 대단한 꿈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대학을 막 졸업하고 회사원의 신분이 주어졌을 땐 그곳에서 뭔가를 이루고 싶었고, 마케터로서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나에게 주어진 그 어떤 게 됐든 잘 해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회사 면접을 봤을 때 나도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신입도 아닌 나한테 꿈이 뭐냐 묻는 질문이라니 이 회사 참 감성적이다 싶었다.
"전 책을 쓰고 싶어요."
나의 답변은 이렇게나 작고 귀여웠으며 몹시 수줍었다.
그리고 이런 설명들을 덧붙였다.
'요즘엔 독립서점이라는 게 생겨나기 시작했고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예전에 비해 많아지기도 했고... 어쩌고 저쩌고~'
구태의연한 설명의 이유는 내 꿈은 막연한 게 아니고 나름 현실적인 것이며 결코 허황된 게 아니라며 황급히 늘어놓는 변명과도 같았다. 반면에 꿈과 열정 가득한 신입은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커리어나 직무와 관련된 그럴싸한 거짓 꿈을 둘러대는 대신 늘 마음 한켠에 품고 살았던 진짜 꿈에 대한 이야기 한 셈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회생활 9년 차의 연륜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꿈이란 게 있었구나 싶었다. 비록 신입들의 크고 담대한 그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 그게 곧 나의 꿈이었고 누군가가 당신은 꿈이 뭐냐 물을 때 슬쩍 꺼내놓을 수 있는 답안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 꿈은 곧 장래희망이란 단어로 설명됐다. 어른들은 내게 뭐가 되고 싶냐 물었지 뭐가 하고 싶냐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장래희망일 뿐이니 이왕이면 멋지고 근사한 게 되고 싶었고 그 시절 내 눈에 비친 어른의 직업이 곧 나의 꿈이었다.
조금씩 성숙해지면서부터는 어른의 직업 즉, 장래희망에 나만의 취향과 선호가 덧붙여지기는 했으나 역시나 꿈은 곧 나의 미래 희망 직업일 뿐이었다.
서른이 넘어 무언가 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는 게 반가웠다. 아니 나라는 사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거 같아 신기한 기분도 좀 들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나의 작고 귀여운 꿈이 늘 하는 평범한 일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허황된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할 거다.
그래도 난 서른이 넘은 지금 아직도 꿈이 있다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렇다. 꿈을 잊고 살기에 우린 아직 너무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