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3. 엄마와 딸에 관한 이야기

닮아도 너무 닮은 우리

by 페페


부모와 나의 역할이 바뀌기 시작할 때, 아마 그때쯤이 되면 많은 이들이 엄마 혹은 아빠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들 한다. 어릴 적 나는 살가운 딸은 아니었다. 막내딸이었지만 무뚝뚝했고 어떤 땐 오빠보다 더 사내아이 같았다. 고집이 셌고 지기 싫어했으며 시키지 않아도 뭐든 혼자 알아서 척척해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날 품에 끼고 키우는 대신 방목하다시피 자유롭게 내버려뒀다. 돌이켜보면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에 지금의 독립적인 내가 있구나 싶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우리 가족만의 비밀장소에서 열쇠를 꺼내 혼자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초인종을 누르는 행위는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집에는 늘 아무도 없었고 혼자 밥을 차려먹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엄마도 아빠도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았을 뿐 우리 가족이 화목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시절 야무지다 했던 나도 결국 어린아이에 불과했더라. 늘 오빠가 먼저인 엄마가 미웠고 혼자 차려먹는 밥이 싫었으며 비가 오면 엄마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와있길 기대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다. 대학에 가서는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기어코 자취를 하겠다며 집을 나왔으며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부터는 완벽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됐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렸고 엄마는 그런 나의 선택을 따라줬다. 뭘 하던 '네가 알아서 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물론 이러한 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방임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서운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자신을 쏙 빼닮은 이놈의 딸은 본인이 만류 한다한들 결국 자기 뜻대로 하고 말 거라는 것을...






이런 나의 독립적이면서도 독단적인 모습을 엄마에게서 발견하게 된 건 몇 해전 이사를 준비할 때이다.


20년이 넘게 살던 아파트를 팔고 더 넓은 집을 사서 아들딸 결혼할 때쯤엔 깨끗한 집에서 새 식구를 맞이하고 싶다던 엄마는 모든 결정과 준비를 끝내 놓고 아빠에게 이사 사실을 통보했다. 아빠는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내고 이제 본인과 당신 단둘이 살 건데 무슨 큰집이 필요하냐며 볼멘소리를 하셨지만 결국 엄마의 뜻에 따랐다. 이사를 준비하는 엄마는 누구보다 활기차고 생기가 넘쳤다. 세월의 때가 켜켜이 쌓여 낡아빠진 가구를 버리고 새로운 가구를 들였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껴보겠다며 직접 발품을 팔아 이것저것 이사를 위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신이 나서 이사 준비를 하던 엄마는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예전 같으면 엄마 혼자 앓고 말았겠지만 이제는 엄마도 나이를 먹었는지 딸에게 의지하고픈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우리에게 전화통화는 분명 용건이 있어서다. 수화기 넘어 엄마는 나에게 아빠의 모든 만행을 다 일러바쳐야겠다는 듯이 그간의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희 아빠는 이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엄마 혼자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너무 힘들고 그 덕분에 한 달 사이 살이 3킬로나 빠졌어!"


이럴 땐 그냥

"아빠는 왜 그런데~엄마가 많이 힘들었겠네~내가 아빠한테 따끔하게 이야기해줄게!"라고 살가운 위로 한마디면 끝날 일인데 나같이 냉정한 딸은 "아빠가 언제 이사 가자고 했나? 엄마 혼자 결정하고 통보해놓고 이제 와서 관심이 없다고 아빠를 뭐하라면 안되지"라며 쓴소리를 해댄다.


누가 지금 아빠의 입장을 대변해달라고 했던가.


보통의 경우라면 아들이나 할법한 이야기가 같은 여자인 딸의 입에서 나오니 그 순간 엄마는 또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렇게 짧은 통화가 끝났고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저런 말들로 엄마를 서운하게 했을지언정 엄마는 금세 잊어버릴 거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혼자서 열심히 이사 준비를 할게 분명하다.






나의 모든 성격이 형성된 배경에는 단연코 엄마의 영향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누구의 영향으로 이렇게나 멋진 여장부가 됐을까? 어릴 적부터 엄마 곁엔 늘 사람들로 가득했고 가족을 잘 돌봤지만 집보다는 밖에서 더 빛이 났다.


언젠가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엄마에게 '난 네가 선생님이 돼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엄마의 말끝에 지난 30년의 세월이 아득하게 묻어났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던 엄마가 30년 넘는 세월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만 살았으니 그 세월이 얼마나 무료하고 답답했을까. 엄만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기다리는 대신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엄마만의 인생을 찾았으리라. 모든 게 이해되는 순간이다.



이제는 나도 어른이 됐고, 늘 집에 없던 엄마의 빈자리에 더이상 서운해할 나이는 지났기에 온전히 엄마의 삶을 응원할거다. 언젠가 나도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엄마처럼 살았을게 뻔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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