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는 이별
작년은 우리 가족 아니, 엄마에게 너무도 잔인한 한 해였다.
사랑하는 동생을 먼저 보내야 했고 하나뿐인 엄마마저 잃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1년 사이 두 번의 장례를 치렀고 가여운 내 엄마는 내내 울었다.
처음 엄마가 우는걸 본건 아마도 내가 예닐곱 살쯤 되던 해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나에게 엄마는 늘 엄마 그 자체였기에 엄마가 울고 있는 모습은 낯설고 이상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이모는 급성 혈액암에 걸리셨고 엄마가 본인의 엄마보다 더 의지했던 큰 언니, 그러니까 나의 큰 이모는 가족들이 손쓸 겨를도 없이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돼 일주일 만에 허망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날 밤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엉엉 우셨다.
"나희야~이모가 돌아가셨어... 너를 참 많이 예뻐했는데..."
'이모가 왜 돌아가셨지? 엄마가 울고 있네? 그럼 이제 언니랑 오빠는 엄마를 못 보는 건가?'
엄마 품에 안겨 나는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밤 엄마가 나를 품에 안고 울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이모는 서른일곱,
내 엄마는 겨우 서른셋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기엔 너무 이른 나이었다.
5년 전쯤 삼촌이 암에 걸리셨단 소식을 들었다. 이미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돼 길어야 몇 개월일 거라 했다.
엄마의 형제들은 큰 이모를 속절없이 보내야 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삼촌만은 어떻게든 살려낼 테니 걱정 말라했다. 그렇게 유별나게 끈끈했던 엄마의 형제들은 갖은 정성과 노력으로 삼촌을 5년 넘게 살려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살리는 건 유능한 의사도, 애틋한 가족애도, 하늘의 기도로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작년 봄, 엄마는 언니에 이어 동생마저 먼저 보내야 했다.
왜 힘든 일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걸까
유난히도 날이 좋았던 가을날
햇살이 참 좋았던 아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서울 가는 기차표를 끊어달란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할머니가 쓰러지셨단다.
"할머니? 무슨 할머니??!!" 라며 놀라 되물었다.
"너네 외할머니!!!"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먹이던 엄마는 할머니가 쓰러지셨고 위독하시단 연락을 받았다며 가장 빠른 기차를 알아봐 달라 하셨다.
당시 허리 수술을 받았던 외할머니는 큰 아들네 집에서 요양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 계셨다. 가기 싫다 하셨지만 외할머니를 간호하던 둘째 이모마저 뇌경색 증상이 찾아와 내 딸 살리려면 가야지 하시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서울엘 가셨더랬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울며불며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누워계신 할머니의 의식이 흐렸다.
뇌졸중이란다. 한쪽 뇌는 이미 기능을 잃어 몸 반절에 마비가 왔으며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다 했다.
나는 조용히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갔다. 허공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할머니의 한쪽 손이 애처로웠고 살갑지 못했던 손녀딸은 그날 처음 용기 내어 할머니의 손을 잡아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병원에 도착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엄마의 모습은 애써 침착하려는 듯 힘주어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으며 걸음걸이는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엄마는 서둘러 할머니를 보러 가자며 앞장섰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할머니의 몸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며 왜 이러고 있냐며 소리 내어 울었다. 아까의 그 강단 있던 표정과 결연했던 걸음이 무색하리만큼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야속하게도 쓰러지고 삼일째 되던 날 밤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놓으셨다.
졸지에 6형제 중에 셋째, 그러니까 위로 언니 둘, 아래로 남동생 셋을 둔 엄마는 병원에 계신 둘째 이모를 대신해 맏이가 되어 장례식을 준비해야 했다.
엄마를 잃는다는 게 어떤 걸까.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을 겪고 있던 내 엄마는 덤덤하게 손님을 맞았고 간혹 손주를 보며 웃기도 하셨다. 3일장을 치르고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던 화장터에서 엄마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거기도 넷, 남은 형제도 넷 이제 공평하지? 그러니 그만 데려가.. 남은 인생 잘 살다 갈 테니 우리 언니 아프지 않게 도와주고 우린 나중에 만나...”
그렇게 한참 혼잣말을 하던 엄마는 결국 마지막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이제 엄마가 보고 싶으면 난 어떻게 해?”
오십이 넘은 엄마가 아이처럼 저런 말을 하며 서글프게 울었다. 난 흔들리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엄마는 그 날 하나뿐인 엄마를 영영 잃었다.
그렇게 지독했던 시간이 지났고 엄마는 다시 일상을 산다. 떨어져 지내는 탓에 엄마가 정말 괜찮은지 까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엄마의 마지막 소원만큼은 꼭 이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