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냥아치였던 것인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여러 동기 중 하나는 곧 나올 내 책 때문이다. 책의 유기성과 완성도를 고려할 때 책에는 다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이 있었다.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데 브런치가 가장 적합한 채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나 혼자만의 생각에 그치지 않고 모두와 함께 생각했을 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브런치 심사를 넣을 때 기획에 그 내용을 중심으로 썼다. 내용만 간략히 소개하고 기획 구조는 엉성했다. 알면서도 그냥 제출했다. 브런치가 나를 시험에 들게 했지만, 나도 브런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과연 모양새가 없어도 목적 의식과 콘텐츠의 진정성으로 브런치에 먹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심사에 탈락하고 재수를 하게 되면 그러려니 생각하려고 했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다른 이유인지 무슨 포인트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바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심사에 적은 내용과 전혀 다른 습작같은 아무 글을 쓰고 있다. 딱 봐도 나의 스트레스 풀이용인 것이 너무나 명백한 글들이다. 브런치한테 조금 미안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적어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야 그저 의식의 흐름에 맡겨 글을 써보는 건 참 재미있는 거구나!
나름 심오한 주제의 내 원고를 적으며 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십분 되었다. 평범한 사람이 에세이로 반응을 얻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보통 유명인이 쓴 글이 아니고서야 글을 궁금해하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승부하려면 결국 글로 승부해야한다. 글 자체에서 독자를 번뜩이게 하는 남다른 뭔가가 필요하다. 그게 문장력일 수도 있고, 통찰력일 수도 있고, 글에서부터 느껴지는 말로 설명이 안되는 카리스마적인 기운일 수도 있고, 이 글의 제목과 같은 어그로일 수도 있다.
결국 글쓰기의 목적은 내 생각을 뱉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독자와 나의 쓰고자하는 의지와의 접점을 만나보는 과정이다. 세상에 드러나는 글을 쓴다면 저 멀리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내가 다음 책을 쓸지 말지도 사실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앞으로 당장은 꼭 에세이가 아니더라도 머리를 가볍게 하고 손가락에 힘을 쫙 빼고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독자의 반응, 나의 의도, 기획을 염두하지 않고 내 맘대로 글을 쓰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브런치에서 숨돌리며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책을 단 한 번도 집필해 본 적도 없다. 전공도 직업도 글 쓰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냥 생판 초짜다. 그런데 출판사와 계약할 때 아마추어 주제에 3개월, 길어도 6개월이면 충분하다고 호기롭게 장담했다. 나는 정말이지 미쳤었나보다. 그래서 초고를 무려 1년을 넘게 집필했다.
원고를 쓰면서 내가 이 일을 왜 벌렸을까 후회도 들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엄마가 된 역사에 길이 남을 대사건이다. 남들은 직장도 때려치운다는 이 시기에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초짜 주제에 내가 왜 이런 난이도 있고 힘을 빡 주어야 하는 내용을 내 책 주제를 골랐을까? 아주 그냥 내 손등을 치고 싶었다. 내가 아니면 이런 책은 절대 쓸 수 없다는 일종의 사명감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머리 깨지는 작업이 될 줄 알았나. 이래서 무식하면 용감한 거라고 하나보다.
이럴 때 내가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말이 하나 생각난다. 나는 남과의 경쟁심, 누군가를 꼭 이겨먹겠다는 호승심 같은 정서를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지나친 경쟁심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과 싸울 뿐이라고. 날 키우던 우리 엄마는 내 이런 천하태평한 성격 때문에 이따금씩 고구마 먹은 듯 가슴을 탁탁 치셨다.
진정한 내 자신과의 싸움을 겪어보고 결론은 내 생각이 더 유치했다는 것이다. 경쟁심이든 나 자신과의 싸움이든 결국에는 내가 살아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되는 건데. 사람의 의지는 존중해야 한다. 물론 그 의지에 악의가 없고 순수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유치함을 떠나 어쩌면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은 애초에 허세 들린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허세를 알레르기 반응처럼 극도로 혐오하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반성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은 진정 무엇인지 이번 작업을 하며 지독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고는 내가 썼지만 여전히 어딘가 내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계속 수정하고, 또 고치고, 페이지를 싹 날리고, 다시 쓰고의 반복이다. 그러고 보니 그 많은 창작물에서 작가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연기가 자욱한 골방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나는 왜 하필 비흡연자일까? 아, 이것이 바로 창작의 고통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도 글도 한번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내가 20만 자가 넘는 기승전결 구조의 원고를 완성해 본 것 자체로 박수칠이라고 스스로 자부해 본다.
나는 출판사 피드백을 반영한 원고를 이메일을 보냈다. 이제 출판사에서 내 원고에 메모가 더덕더덕 붙어서 첨삭지처럼 올 것이다. 편집자는 미리 경고했다. 이 작업은 팽팽한 긴장 그 자체라고. 그 정도는 각오해야 투박한 원석 같은 내 글이 깎여져 광나는 보석이 되어가겠지.
일단 겸손하자. 그리고 그 과정을 마음껏 즐겨보자. 그때까지 브런치팀은 나를 이해해 주리라 생각한다. 사실은 관심이 아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심사 때 적은 그 이야기들도 언젠가 천천히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