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알낳는 고통쯤이었다
지난달 초에 출판사 6번째 미팅에 다녀왔다. 미팅 후 출판사 대표님께서 진행하시는 워크숍에 참여하는 예비 편집자분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지난번 대표님이 먼저 이분들과의 식사를 제안하셨을 때 사실 나는 좀 의아했었다. 그리고 대뜸 “왜요? 대체 제가 거길 왜~?”라고 말꼬리를 한껏 올리며 답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분들이 앞으로 작가님들을 상대하실 분들이라서요. 그리고 초고를 보여드렸더니 작가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겨우 한 권의 책을 출판을 앞두고 있는지라.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기에는 당연히 어색하다. 그건 책 출간 이후에도 쭉 그럴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전업주부가 내 영원한 1순위 페르소나였으면 한다. 그러니 그분들은 나보다 더 프로페셔널한 작가님을 만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식사자리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었다. 초짜 작가로서 내 글을, 그것도 비루한 초고를 관심 있게 봐주었다는 점을 황송하게 생각하기로 하며.
미팅 전날에 대표님이 이분들의 질문을 추합 해서 전달을 해주셨다. 의문 속에 이끌려가는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이 질문들을 보며 내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스스로 꽤나 유익했다. 만남의 자리에 계셨던 그분들도 그러셨기를 바라며.
그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셨던 점은 작가로서 이 책을 왜 쓰기로 결심했는지였다. 작가마다 다를 거 기에 나의 아주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기반해서 답변을 드렸다.
책이라는 긴 분량을 쓰는 도전을 아무 생각 없이 덤빈 이유는 그래도 이 일은 내가 반드시 꼭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책에도 그렇게 썼지만 나는 돗자리를 깔아주고 등 떠밀어도 뭘 섣불리 잘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랬다.
첫 번째로 아무래도 이 책은 오직 세상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나 아니면 절대 못쓸 것 같다. 앞으로도 어떤 사람도 이런 책은 못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책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로 이 세상에 내가 쓰려는 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이었다. 이는 첫 번째 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필요하지 않다면 어디 일기장에나 쓸 일이다. 굳이 출판을 해야 한다는 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필요하다는 것은, 세상의 반응이 보여줄 것이다. 세상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다를 수 있다. 나는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몇 달 뒤에 이불을 발로 차며 이 글을 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일련의 쏟아부은 시간에 대한 후회는 한점 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책을 쓰며 아주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출판사 대표님은 이 책을 누구보다도 많이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내가 겨우 여기서 만족하면 허탈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내 책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쓴 건 정말로 맞다.
그리고 한 가지는 아주 분명하게 깨달았다. 책을 쓰는 작업은 그야말로 쓰는 사람의 영혼을 탈탈 털어 갈아버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장래희망에 작가(소설가)라고 썼지만 재빨리 포기했었다. 그 이유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감적으로 빨리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단문이 아닌 기승전결을 잇는 책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주 견고한 자기의 세계였다. 그러면서도 그 세계는 단단한 알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와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고집이 세다고 해도 , 내가 단단해봤자 얼마나 단단한 사람이겠는가? 그저 이제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내가 불혹이라는 40살, 흔들리지 않는다는 그 나이를 코 앞에 두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신감 비슷한 것이 샘솟았나 싶다.
아무튼 내 책이라는 물건이 온라인 서점에 들어갔고 다음주에는 오프라인 서점에도 유통된다. 출판사와 보도자료를 검토한 것을 마지막으로 비로소 이 일이 정말로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나의 오랜 친구가 이 작업을 시작하던 2년 전쯤 박완서 작가님께서 쓰신 <부처님 근처>의 한 구절을 보내주며 정말로 이런 느낌이냐고 물어봤다. 사실 나는 그때만 해도 그 문장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쓴 건 소설이 아니지만 나는 이제 비로소 이 문장을 이해가 가는 정도를 넘어 아주 공감하여 소개해본다.
나는 어느 틈에 내 이야기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토악질하듯이 괴롭게 몸부림치며, 토악질하듯이 시원해하며.
토 악 질. 단어의 음운 하나하나가 딱이다. 이 맛깔스러움 때문에 난 한국어가 제일 좋다.
마지막은 이탈리아의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의 문장을 소개하며 마무리해 본다. 내가 이분의 책을 아직 직접 다 읽지는 못했고, 책을 쓰며 자료조사를 하다가 읽은 문장이다. 사실 다른 사람의 문장 인용을 남발하는 것은 지적 허세를 애써 부리는 것 같아서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게다가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는 느낌도 들고. 역시 나만의 언어가 입에 붙는다. 그래도 언젠가 써먹을 것 같아서 한 1년 전쯤에 책에 밑줄을 치고 사진까지 찍어놓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가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여정을 응원하는 것이듯이. 내 책도 너도 너의 세계를 찾아 나가기를.
그런 점에서 책을 쓰고 만드는 과정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성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난 내가 책을 쓴다는 사실을 아는 극소수의 주변 사람에게 이건 참말로 알을 낳는 고통 쯤이었다고 가끔 토로했다. 사람 아기도 몸소 둘을 낳아본 바 이것 만큼 적절한 비유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어도 언젠가 너희들을 놓아줄 때가 오겠지. 그 이유는 내가 한 때 가장 좋아했던 어떤 노랫말의 가사에도 나온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우리, 그러니까 책과 나는 이제는 서로를 완전히 분리해야 할 때가 왔다. 온전히 그러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지만. 내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그러는 날이 올 테고. 그렇게 너희들의 세계에서 너희들의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이렇게 쿨하게 말하고 싶지만 갑자기 불현듯 이게 설마 끝이 아니지는 않겠지?? 라는 걱정이 스친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육아는 자녀가 40살까지“ 혹은 ”손주 육아까지 책임져야한다.“ 라는 말들이 있다. 어찌 들으면 좀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육아가 고통이라는 의미라서 싫다는게 아니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영위해야 행복한거니까.
그나저나 자식이란 도대체 뭘까? 첫째를 출산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에 요즘 정말 깜짝 놀란다. 여전히 나는 엄마로서 아직 한참 배우는 과정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해 뭐라고 확실히 말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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