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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Nov 07. 2023

전업주부가 도대체 어때서

어느 날라리 전업주부의 양심고백

며칠 전 온라인 서점에 내 책 < 맘카페라는 세계 >가 등록되었다. 어느 서점에서는 저자 소개와 함께 직업을 분류해 주셨던데, 그걸 보고 한참 배가 찢어져라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분들 상황에 그게 최선이어서 그렇게 등록했다는걸 안다. 나에게 2년 전에 작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직업인데, 더 나아가 나는 책을 내고 이렇게 행정 정책학자가 되었다. 맙소사!


언제 바뀔지 모르니 박제해보자 깔깔


나는 그저 학부시절 행정학을 전공했을 뿐이고 전직 은행원인 전업주부다. 게다가 내 책의 주제는 행정학과 거의 상관이 없다. 누가 주의깊게 보겠냐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이 해프닝은 출판사를 통해 수정 요청했느니 언젠가 끝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다른 책의 전업주부 작가들은 과연 무슨 직업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말인가? 찾아본 바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면 문학가였고, 재테크 쪽은 경제 금융인으로, 자기 계발책 작가는 자기 계발 컨설턴트라는 직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심지어 주부들의 친구 요리책에도 전업주부는 요리연구가가 되어있었다. 인문 사회 주제로는 책을 쓴 전업주부는 없었단 말인가? 혹여나 누군가 알아서 제보해 주면 꼭 찾아보고 싶다.


결국 주부라는 직업분류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엄밀하게 따지면 주부가 굉장히 비전문가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라는 정보를 팔아야하는 마케팅적 입장에서도, 또 작가 자신도 그렇게 분류되는걸 원치 않을 수 있겠다. 주부는 빨리 떼어내고 싶은 굴레같은 것인가보다. 그걸 여기서도 확인하게 되어 흥미로웠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지 이제 2년이 넘었다. 내가 사직원을 제출한 날짜와 그날의 복잡미묘한 기분은 아마 오래 잊을 수 없을 거다.


내가 전업주부로 전향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큰 건 어릴 적의 내 경험, 전업주부였던 우리 엄마의 영향일 것이다. 엄마는 천상 전업주부였다. 나는 엄마가 항상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 하교 후 엄마가 손수 해준 맛있는 간식을 먹고 뒹굴거리고 놀거나 숙제를 하는 것은 지금도 행복한 기억이다. 가정과 엄마는 나에게 늘 따스한 품이었으니까.


종종 전업주부는 우리 사회에서 무의미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음을 느낀다. 엄연히 따지면 주부는 직업이 아니다. 주부는 수입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비록 경제적 수입이 없어도 그들의 노동가치는 부가가치적으로 충분하다는 설명이 내가 학교 다닐 때 본 경제학원론 책에 칼럼 하나를 차지하는 설명으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이 뒤따라 나오는 설명이 정말 중요해 보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의미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전업주부들에게는 전통적인 과제가 있었다. 남편을 내조하기.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기. 밑도 끝도 없는 집안일을 프로페셔널하게 완수하기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런데 이 전통적인 과제는 언젠가부터 무의미해졌다. 경제 불황으로 가장의 축 처진 어깨, 학력 수준에 맞는 취업에 실패한 자녀. 그들이 그렇게 된 게 사회적 흐름에 의한 것이듯, 그것도 주부의 탓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힘들어진 주부는 어느 순간부터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는 존재, 마치 희생의 아이콘쯤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 가족들의 불행 속에서 이뤄낸 성과가 없어 보이는 전업주부는 요즘 다양한 문화콘텐츠에서 불쌍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물질주의에 경도된 우리 사회에서는 주부에게 돈을 조금이라도 버는 노동자로 일을 해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존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여성가족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최근 우리나라 여성의 고용률은 60%가량 된다. 그런데 이 지표에는 실제로 소득이 제대로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포함한다. 예컨대 초단시간 근로자나 일시휴직자도 고용률에 산입 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직업이 있어야 국가가 제공하는 보육시설 이용에 우선순위를 주기도 하며, 달라진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엄마들이 어떻게든 고용의 상태에 있으려고 노력하는 측면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전업주부는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전업주부가 생각보다도 꽤 많이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여전히 많은 전업주부가 존재하지만, 전업주부에 대한 인식은 점점 좋지 않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주부는 사회에서 그들을 아무것도 안 하는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육아와 가사는 당연한 일거리다. 게다가 금전적인 보상도 없다. 그래서 가정주부의 가치는 평가절하 당하기 쉽다. 문제는 가사노동과 육아의 가치 절하가 범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난리법석을 떠는 이 사회에서 말이다.


실제로 많은 전업주부들의 자존감이 이런 시선에 정말로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목격한다. 전업주부의 본업보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독서나 운동 등 자기 계발에 대한 압박감도 마찬가지다. 정말 자발적이고 자기만족이 주가 되는 경우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걸지도 모른다. 오늘도 sns에는 수많은 인증글들이 넘쳐난다. 마치 나는 집에서 놀기만 하는 나태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인정받아야 할 것처럼.


이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에게 그저 우리 사회 분위기가 어딘가 묘하게 느껴질 뿐이다. 알고 보면 그들은 전혀 놀고만 있지 않고, 저출산 속에서 육아와 가정을 지키는 그들의 본연의 삶에 충실할 텐데 말이다.




앞으로 나에게 출간작가라는 명칭이 붙어도, 나의 1차 캐릭터는 주부일 것이다. 나는 내 단상들이 이 세상에 책이라는 형태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책을 썼지, 작가가 되고 싶어서 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정에 충실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련다. 이 모순적인 세상에서 나같이 떠들어보는 전업주부 하나쯤은 있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마지막에 고백은 하나 해야겠다. 사실 난 살림을 좀 날라리같이 한다. 좋아하는 살림놀이는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건 영 젬병이다. 가끔 우리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와서 쓱 둘러보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곤 한다. 내가 주부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다니는 걸 알면 넌 양심이 아주 그냥 썩었다고 일갈하실 거다. 그래도 나는 노력하고 있다. 이제 겨우 전업주부 3년 차밖에 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평생 할 일인데.


아무튼 재미를 붙여보련다. 파이팅!




도서 <맘카페라는 세계> 서점 링크

https://url.kr/v9oi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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