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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Nov 13. 2023

내 책에 대한 세상의 반응들을 보며

#1

내 책을 가장 먼저 드린건 우리 카페를 만든 카페장 언니였다. 지난 5년 넘는 세월을 반추하며 주마등처럼 스치는 일화를 떠올렸다. (책의 내용은 당연히 빙산의 일각이다) 내가 한 고생이 책으로 나왔다며 축하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맘카페 운영자 일을 그만 둘 수 있었다! 어찌나 기분이 홀가분하던지. 회사를 그만둘 때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도비는 이제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2

지난주 나의 고등학생 대치동 학원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인 홍제동 사자양을 만났다. 그녀는 내가 책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만 내가 당최 ‘무슨’ 책을 쓰는지 전혀 몰랐다.


결혼을 하지 않아 아줌마의 세계가 낯선 그녀는 내 책 제목을 보고 “오잉?”이라는 말로 먼저 반응했다. 한참 식사를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책 첫 문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서 말했다. “네가 맘카페 운영자였다고??? 헐. 세상에 세상에!!” 그리고 그녀는 그제야 본인이 어떤 커뮤니티 중독자라고 고백했다. 거기서 맘카페가 얼마나 공격받는지도 말해주었다. “응 그래. 그래도 난 알다시피 멀쩡한 사람이잖아. 너도 멀쩡하고. ”




#3

지난 주말은 친정아빠 생신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해외에 사는 내 동생 부부까지 잠깐 귀국했다. 나는 사실 우리 가족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가장 떨렸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공직 생활을 반평생 하셨고, 괜히 나서지 말고 제발 조용하게 사는 것이 우리 집안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인세를 가족 몰래 받으려고 했는데 신문에 너무 크게 나서 누가 제보할까 봐 미리 밝힌다고 고백하며 책을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은 서프라이즈 선물에 당황하셨고, 내 동생은 옆에서 “이 인간이 악의 축이었네..”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올케는 이 분위기가 대체 무엇인가 했을 것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아버지는 그날 아들 손자 며느리가 오랜만에 다 모인 개구리 가족 가운데서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셨다. 그래서 “책은 잘 팔리겠네” 한마디 하고 껄껄껄 웃으셨다. 잘 팔릴지는 책을 쓴 나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2년 동안 감쪽같이 말을 안 하고 책을 쓴 건 등짝을 몇 대 맞을 일인데. 한 대도 맞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4

나는 이 책을 쓰며 가장 우려했던 것은 혐오를 부추기는 결과만 낳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도 기사도 읽어보지 않고 댓글 창은 혐오가 쓸고 갔다. 예상했던 바라 놀랍지는 않다.


언론에서 대면 인터뷰 요청이 계속 들어왔었다. 대면은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질문을 서면으로 받아보니 인터뷰 질문들이 “왜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어려움” 대한 내용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다들 알다시피 각박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나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고 모두가 힘들지 않은가. 그렇기에 힘들다고 말하면 들어줄 여유가 없다. 대략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네가 뭐가 힘드냐는 반응이다. 그게 극단적이면 혐오가 되는 것이고. 자기 힘듦과 아픔에는 관대하길 바라면서. 아무튼 그런 세상 아닌가?


나는 이 문제를 같이 생각해보자고 책을 썼지, 내가 주목받으려고 책을 쓰지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내가 인터뷰를 거절해서 고구마 먹듯이 답답하다고 가슴을 쳐서 많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책 보다 작가에게 시선이 더 집중된다면 내가 책을 쓴 의도와 내가 바라는 바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너른 이해를 부탁드린다.


기자분들의 서평을 며칠간 흥미롭게 읽었다. 내 책을 주요 언론에서 지면을 상당히 할애하면서 주목해 주신 점도 감사하지만,  (난 정말로 옛날 신문의 표주박, 주사위, 색연필 코너 분량만큼 나올 줄 알았다.) 가장 다행이었던 것은 거의 대부분이 내 책을 정말로 정독해 주셨고, 내가 책으로 풀어놓은 이 문제의식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셨다는 게 서평에서 절절하게 느껴져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신기한 건 대부분 “ 글이 서늘하다. 냉정하다. ” 이렇게 평해주셨다는 점이었다. 나는 살면서 냉정한 사람이라는 평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은행을 다닐 때도 매번 CS상(지점에서는 고객, 본점에서는 직원들이 뽑아주는 친절상)을 놓치지 않고 받아 챙겼던 사람이라. 나를 사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내가 이런 책을 쓴 줄 알면 정말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지인이 눈치채고 보고 있다면 나는 결코 흑화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내 글이 냉정해보이는 이유는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조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서늘한게 아니고.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사실은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그저 외면하고 싶은 차디찬 현실을 수면 위로 드러냈을 뿐이다. 외면하면 정말로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으니까.


기자분들께서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기에, 우리 사회가 정말로 걱정되어 책을 꼼꼼하게 읽어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선의를 주도하려는 의지와 역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점에 진심으로 일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감사를 표하고 싶다.




#6

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열흘이 조금 넘었다. 책과 나는 아직도 의식적으로 분리가 안된다. 정말로 이런 점에서 책은 자식과 똑같아서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앞으로 이곳 브런치에 내 책을 언급하는 글은 이걸 마지막으로 쓰지 않을 예정이다. 이제는 책에서 못다 한 말들을 주로 엮어보려고 한다. 고루하고 낡은 것으로 취급받는 가치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와 역사를 지탱해 왔는지. 왜 아직도 유효한지. 가령 사랑이나 가족, 엄마의 역할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진부한 주제들이 다시끔 신선하게 느껴지는 세상이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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