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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반복되는 긴긴 방학생활

코로나 19로 시작된 셀프 격리


 '당신은 자녀의 방학이 시작되면 함께 놀 생각에 신이 나는가?'

 '자녀와의 하루가 전쟁같이 느껴져 한숨부터 나오는가?'


 주변의 많은 학부모들은 대부분 후자라고 답한다. 오죽하면 방학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까? 자녀의 방학이 다가오는 7월, 12월이 되면 유난히 카페를 전전긍긍하며 머리에 고민을 얹고 있는 엄마들의 풍경을 흔히 본다. 자녀와 보내는 방학이 전쟁터 같다고 하소연하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이런 전쟁 같은 방학생활을 대한민국 엄마들은 1, 2개월도 아니고 4개월째 맞이하고 있다.


 2020년 1월부터 코로나 19 전염병이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었다. 우리는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까지 여러 차례의 전염병을 지나왔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만큼 확산속도가 빠르고 사망률이 높은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에 나오는 전염병은 책 속 이야기라 그 공포를 가늠할 수는 없다.


 겨울방학은 여름방학보다 더 길다. 최근에는 봄방학이나 학교장 재량 휴업 일을 줄이고 겨울방학을 3월 입학 때까지 하는 곳도 많다. 올해도 두 아이의 학교 일정이 3월 개학이었다. 그 어떤 전염병이 와도 학교를 휴업한 적은 없었기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실시간 쏟아지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 연기된 2주는 그래도 별 어려움은 없었다. 바이러스가 사라질 수 있다니 정부의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학이 점점 늦춰지면서 학교가 너무 가고 싶다고,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고 학교의 급식도 먹고 싶고 선생님들도 보고 싶다는 거다.


 병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코로나 19 환자가 중국에서 쏟아졌다. 중국의 모습을 뉴스로 접하면서  대한민국은 전염병 확산 초기라 환자들의 이동경로도 파악이 되었고 병상이 모자랄 정도는 아니라 안심했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대한민국에도 코로나 19가 창궐했다. 병원, 종교집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양성 환자들의 숫자에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택배 배달 시에도 문 앞에 두고 가는 비 대면이 생활화되었고 모든 행사와 모임 참여 자제, 사람과 2m 이상 거리두기, 실내 시설 운영 중단이라는 강력한 권고에까지 이르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 19에 걸리면 나와 접촉한 모든 이들이 자가 격리를 해야 하고 가족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정부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가족의 건강, 타인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도 조심해야 했다. 아이들 방학이 1월 초, 중순이다. 방학하면 여행도 가고 방학이면 이용할 수 있는 꿀잼(꿀처럼 달콤한 재미) 들을 하려고 기다렸던 시간들이 무색해졌다. 방학과 함께 하려고 했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엄마, 우리 영화관 언제 가요?”큰아이가 묻는다.

 “글쎄, 코로나 19가 좀 잠잠해지면 가자.”


 이제 방학 시작했으니 아직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19쯤이야 그냥 지독한 독감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야 언론에서 요란히 떠들지만 금세 조용해지고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엄마, 패밀리 레스토랑 가고 싶어요. 갈 수 있어요?”이번엔 둘째 아이가 간절한 눈으로 물어본다.

 “음...... 아무 데도 못 갈 것 같은데 어쩌지?”정말 아쉬웠다.


 방학이면 참새방앗간 들리듯이 다니던 영화관, 전시회, 여행,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 만나기, 할아버지 할머니 찾아뵙기...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을 했는데 시간은 많으나 그 어디도 갈 수가 없다. 특히 방학이면 아이들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점심 외식을 미션 수행 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어렵다. 우린 그냥 집에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가 외출을 하는 것은 딱 2가지 이유이다.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는 것, 외출 시 쓸 마스크를 사는 것. 그 외에는 모든 것을 자제하고 셀프 격리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결국 개학이 언제 될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1,2월 두 달간의 겨울방학에 3, 4월까지 기나 긴 방학이 이어졌다. 예전엔 방학이 좀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무려 4개월을 보내고도 그 끝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한편 수능의 문제만 해결한다면 9월 신학기 제도를 이참에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으나 숨죽이며 4개월을 버틴 양육자들은 거리를 뛰쳐나갈 판이다.


 3월이면 자녀의 개학과 동시 들판 여기저기 꽃들이 하나씩 피기 시작한다. 목련에 이어 개나리 진달래가 봄을 알리고 4월이면 벚꽃들이 만개한다. 이때는 긴 겨울방학 동안 재잘대는 참새들(자녀)을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느라 애쓴 엄마들이 가볍게 산책도 하고, 카페에서, 음식점에서 도란도란 모여 그간의 수고를 토로하며 숨통을 열어놓을 때이다.


 하지만 그 어디를 봐도 거리를 누비는 엄마들은 보기 어렵다. 내 주위만 해도 요즘의 일상은 1주일에 1~2번 마트를 가는 것이 유일한 바깥구경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 같으면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라며 인사를 건네고, 만나서 음식을 나누고 수다를 나눴을 것이다. 아이들의 친구들도 초대해 함께 놀았을 방학이지만 전염병이라도 옮길까 배려하며 왕래조차 할 수 없으니 셀프 격리하고 있는 학생들, 보호자들은 무한 반복 연기되는 기나긴 방학이 하루속히 지나가길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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