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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모를 때, 높은 곳에 올라가 보자.

방구석 브런치 단상

코로나 일상이 담긴 글들


코로나 19는 새해가 되어도 멈출 줄 모른다. 방구석 생활을 나름 잘 견디려 애쓴 브런치 작가들의 흔적들이 구석구석 보인다. 그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나만의 루틴, 집밥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려는 듯 애쓰는 요리, 코로나 시대에도 열심히 출근해야 하는 일 잘러들의 직장생활, 힘에 버겁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영업자의 이야기, 사진과 생각들을 꽉꽉 채워 놓은 전문분야의 글, 외부활동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미니멀 추구 집안 정리, 그동안 가족에게 소홀했음을 안다며 올라오는 소소한 가족들의 울고 웃는 이야기까지 그 깊이와 내공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새 손가락이 라이킷을 누르게 하는 마법이 있다.


나 또한 브런치를 코로나 1차 대유행 진행 중이던 4월에 시작했다. 지금의 3단계에 해당했던 그때, 꼼짝없이 모든 일을 멈추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잠시 마트라도 다녀올라치면 혹시 바이러스가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외출했던 옷을 세탁기에 넣어 빨고, 마스크는 괴물 바라보듯이 엄지와 검지로 귀걸이 고무줄을 잡고 휴지통으로 살살 버렸다. 화장실로 달려가 유치원생처럼 손을 박박 구석구석 거품 내어 가며 씻고서야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밥은 먹었어?


코로나가 우리에게 많은 습관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그중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밥은 먹었어?"다. 이 짧은 말에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못 먹던 시절 사람들이 걱정스레 물었던 인사가 코로나 전엔 할 말 없으니 예의상 하는 말로 들리기만 했고, 이제 잘 먹고 잘살고 있으니 밥 먹었느냐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할 즈음 다시금 귀에 딱지 않도록 듣는 인사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이 멈추어 생활고도 생겼고, 함께 밥 먹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매일 아이들 밥 챙기느라 지쳐 엄마는 밥이라도 제대로 먹었을지 걱정을 담은 말이다. 당연히 뭘 먹고 사는지 서로의 안부가 궁금했고, 밥은 굶고 있진 않은지 묻는 것이 일상이 됐다.


며칠 전 언니와 형부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다. 충주에서 물어보면 코 묻은 아이까지도 알 정도로 유명한 즉석떡볶이 집이다. 예전엔 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곳이었다. 연애 시절 떡볶이 먹으며 사랑을 키워온 이들이 가족이 되어 다시금 찾는다는 추억의 떡볶이 가게, 하루 열심히 살다가 저녁 먹으러 온 손님이 "소주가 그리운 얼큰한 맛"이라 했던 그런 유명세를 치르는 떡볶이 가게다.(소주는 팔지 않으니 너스레 떨던 어느 분의 말이다)


방문한 금요일은 한파로 여기저기 수도가 얼었다고 아우성이었다. 수도관이 터졌다고 시장 입구부터 막아선 포클레인에 차를 돌려야만 했던 날,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공기는 귀를 에듯 추웠다. 상가가 즐비한 골목에 사람의 그림자는 간간히 바삐 지나갈 뿐 상가로 발길을 이어가는 이는 없었다. 한겨울 추위만큼이나 코로나 2.5단계의 한파는 가슴을 얼게 했다.

거리에 사람이 없다 / 'SINSE1991' 벌써 30년이 넘었다.

새하얀 위생모와 마스크 사이로 형부의 눈이 빼꼼하다. 인사를 하고 가게를 둘러보았다. 가게는 여전한데 북적북적 발 디딜 틈 없던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다. 형부에게 "밥은 드셨냐?"라고 물었다. 수많은 질문이 내포된 짧은 한 문장이지만 울컥 몰려오는 눈물은 혀를 깨물고 삼켜야 했다. 내가 떡볶이를 먹으며 가게에 머문 짧은 3시간은 코로나가 가져온 '자영업자들의 나 홀로 가게에' 단편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눈물 없인 볼 수 없을 이 장면이 정부를 탓하랴!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바이러스를 탓하랴! 그저 가슴만 칠 뿐이다.

쥔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큰한 떡볶이는 잘도 끓는다.

얼큰한 감칠맛의 떡볶이를 먹으며 언니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입구에 들어서며 보았던 'Sinse 1991'이 유난히 마음에 닿았다. 테이블 5개에서 시작한 구멍가게가 어느새 30년이 넘었다니. 그간 지켜온 전통이 50년 100년을 이어가길 소망한다. 나뿐만 아니라 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지금의 코로나 한파만 지나가면 "떡볶이 마음껏 먹으리라"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리는 듯하다.


열심히 버텨 보려는 자영업자들의 마음이 어떨지 가슴이 무너진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걷는 이 길이 가시밭길이고, 영원한 터널 같다. 어두운 터널 끝이 보이기는커녕, 힘에 겨워 몸에 가시가 돋는 것도 모를 정도다.


어디 자영업자뿐이겠는가? 일감이 바닥에 곤두박질친 프리랜서, 방문 서비스, 특수형태 고용자 그 밖에도 눈에 띄지 않는 음지의 수많은 사람까지 모두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앞선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주말에 아이들과 동네 앞산에 올랐다. 눈이 내린 그대로 사람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디선가 먹이를 찾아 나섰을 고라니나 산을 떠돌아다닌 동물의 흔적뿐이다.


한 치 앞을 모를 때 높은 곳을 올라가 보자.

헉헉 거리며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오른다. 가시넝쿨도 지나고, 허허벌판도 지나고, 미끌미끌 차가운 눈길도 지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동네가 한눈에 보인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어렴풋이 보이고, 저 멀리 한참 진행 중인 공사장도 보인다. 누군가는 쉬는 날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작업장도 보인다.

아침에 떠오른 해는 하루 제할 일 다하고 서산 넘어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높은 곳을 올라보니 내가 지나온 삶이 한눈에 보인다. 잘 살아왔구나! 잘 견디고 있구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말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원하다.


내 앞이 가시밭길 같고, 끝없이 이어지는 눈길 같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한 치 앞을 모를 때 내가 지나온 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을 올라 보자. 그간의 노력과 수고를 마주하며 나에게 외쳐보자.


"수고했어"

"조금만 더 힘을 내"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숨 쉴 만큼의 힘은 난다.


누군가의 불쏘시개가 되길 소망한다.


장작은 홀로 타지 않는다. 서로 기대어 있는 나무가 있거나, 보잘것없으나 작은 불쏘시개 하나쯤 있어야 활활 타 오른다. 소상공인이 홀로 타다 꺼지지 않도록 누군가의 불쏘시개가 되어야겠다. 일감 끊긴 프리랜서지만 내가 가진 글로, 사진으로, 공감의 말로 날마다 누군가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길 소망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치  앞을 모를 땐 높은 곳에 올라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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