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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전령사' 냉이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걸 보니 봄을 시샘하는 훼방꾼이 나타났다. 코로나 19로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겠다. 미세먼지가 대수냐? 나른함이 찾아오는 날. 가까운 곳에 산책이라도 해야 한다며 슬슬 준비를 한다. 혹시 냉이가 꽃을 필지 모르니 냉이도 캘 겸 종이가방에 장갑과 호미를 넣어 딸, 남편과 집을 나섰다.


집은 나섰지만 목적지는 논두렁 밭두렁이다. 컹컹 짖어대는 동네 개들을 지나 논두렁으로 일렁일렁 걸어간다. 길가에는 냉이가 제법 자라 빼꼼히 내밀고 있건만 냉이를 채취할 만한 깨끗한 곳에는 아직 어리다. 논두렁 구석구석을 살피니 양지바른 곳에 제법 냉이가 숨어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초록잎이 빼꼼하다.


옳다구나! 반기며 냉이 캐기 봄처녀로 변신했다. "봄처녀 제~에 오실제~~" 흥얼거리며 구수한 냉이를 한뿌리씩 캐며 앞으로 전진한다. 우리 집 진도견 믹스 '가리'를 산책시키던 딸이 남편에게 인계하고 논두렁으로 뛰어온다.


"엄마, 뭐해요?"

"으응~ 냉이 캐지."

"냉이가 있어? 내 눈엔 왜 안 보이는데?"

"아직 어려서 먹을 만한 거는 자세히 봐야 해."


냉이와의 숨바꼭질은 그렇게 시작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냉이 캐는 봄처녀 둘은 신이 났다.


"엄마, 그런데 냉이는 어떻게 구분해?"

"가장 쉬운 방법은 냄새로 구분해. 모양은 비슷한 것이 많거든"


얘기를 나누며 바닥을 보니 정말 엇비슷한 냉이가 나란히 있다. 이리저리 째려봐도 둘 다 냉이다. 살짝 잎을 짓이겨 냄새를 맡아봤다. 한쪽은 내가 어릴 적부터 맡았던 냉이 냄새와 똑같았다. 다른 한쪽은 잎 뒷부분도 쑥 색깔이고, 뿌리도 붉은 것이 냄새는 흙냄새만 났다. 역시 가짜다.


냉이를 바라보다 순간 번쩍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디에나 이런 진짜와 가짜가 존재할 거다. 내 아이가 어딜 가든 진품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나의 무거운 마음은 아랑곳 않고 딸아이는 닭에게 주겠다며 풀도 한 움큼 캐어 냉이와 함께 넣었다. 종이가방을 들여다보니 "이야~ 오늘 저녁 국거리는 해결됐다. 신난다"


호미를 들고 딸, 남편과 논두렁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멸치 똥을 따고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낸다. 냉이를 여러 번 씻은 후 잔털에 낀 흙과 지저분한 잎은 떼어 손질한다. 다시금 볼에 냉이를 담아 흔들어 여러 번 씻었다. 냉이는 향이 끝내주지만 흙이 남아있으면 입맛을 버린다. 잘 씻는 것이 관건이다.


육수에 된장을 풀고 두부를 송송 썰어 넣었다. 여기에 깨끗이 씻은 냉이를 한번 잘라 준후 넣고 한소끔 보글보글 끓인다. 잠시 보글거린 것뿐인데 우와~ 온 집안이 냉이 향 천국이다.


남편은 몸이 으슬거린다며 밥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냉이된장국을 후루룩 마신다.

"캬~~~~"

연거푸 냉이 된장국을 마시더니

"캬~~~~ 진짜 봄이다 봄"


남편의 시원스러운 한마디에 냉이 된장국이 어떤 맛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겨울을 뚫고 나온 맛이라고 했다. 어느새 밥 한 그릇 모두 비우고 한 숟가락 더 떠온다. 냉이 된장국은 벌써 세 번째다.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지 냄비를 기울여 박박 긁고 있다.


하우스, 수경재배가 아닌 노지에서 자란 냉이다 보니 그 향이 일품이다. 흰 눈의 짓눌림도 이기고, 꽁꽁 언 땅속 추위도 이기고, 칼바람도 이겨낸 냉이다. 봄을 알리려 수없이 많은 날 추위를 견뎌낸 전령사다. 겨울을 뚫고 나오기까지 온몸에 냉이 고유의 향기를 잃지 않으려고 전투한 그 흔적을 나는 식탁에서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이겨내려 인간도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어떤 유혹도 이겨내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거다. 외부 세계, 이웃, 친구와의 단절은 내가 어떤 향기를 고수해야 하는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코로나 19에 걸렸던 어르신은 70 평생 살아오신 삶을 뒤바꿀 만큼의 혼란을 겪으셨다는 말씀이 귓가에 스친다.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는 완전 다른 세계야.

내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더라고"


겨울을 뚫고 봄의 전령사가 되어 내 앞에 온 냉이처럼 나만의 향기를 잃지 말자. 

꿋꿋이 코로나 19 바이러스 버텨내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외칠 그날을 기다리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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