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 담긴 가족 이야기_'돌나물 복수극은 없었다'
길어진 코로나 19로 가정경제가 조여오니 가정의 삶도 험난하다.
드디어 감정 폭발의 날이 왔다.
주말에 가족 도자기 체험을 다녀오면서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볼일도 보고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는 터라 점심 외식을 했다. 마침 재난지원금을 카드에 적립한 터라 평상시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흔쾌히 허락하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코로나 19 확진자도 한자리 수를 기록하며 생활안전거리두기로 하향 조정되어 오래간만에 주말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셧다운 되었던 수업도 재계되었지만 마스크를 쓰고 하는 강의다 보니 짧은 시간이지만 은근 녹초가 되어 귀가했다. 3달 만에 재개된 강의라 기념으로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자고 제안했다. 수업 재개 기념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싶었고 해물을 먹고 싶기도 했다. 신선한 해물은 횟집에나 가야 먹을 수 있으니 열심히 재난지원금 사용처를 찾아보았다. 저렴한 우럭 한 접시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 막 매운탕을 먹을 찰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집에 가는 길인데 어디예요?"
"우리 매운탕 먹어요. 식당이에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남편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외식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밖에서 밥 먹느냐, 전염병 걱정되지 않느냐 라며 할 말만 하고 뚝 끊어 버린다. 음... 남편의 격한 반응에 속이 쓰려왔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거리두기로 전환하였기에 그동안 고루하게 지나온 집콕 생활을 잘 지낸 것을 자축하며 막힌 숨을 고르던 참에 찬물을 끼얹다니.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이것저것 만들어 주었던 지난 시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이들에겐 내색할 수 없으나 분위기는 알아야 했기에 아빠의 말을 전달했다.
"그것 봐 내가 집에서 밥 먹자고 했잖아!" 외식보다 집콕을 더 좋아하는 사춘기 딸이 한마디 한다.
"아빠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찍 오셨대요?" 아들이 평상시 늦게 퇴근하는 아빠가 웬일인가 의아해하며 내놓은 말이다. 상황은 어찌 되었건 매운탕은 바글바글 잘도 끓는다. 매운탕을 마저 먹는 듯 마는듯하고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이미 씻고 누워 건성건성 폰을 보고 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여보, 오늘 집에서 염색했어요. 잘 나왔지. 미용실 안 가고 염색 비 아껴서 밥 먹은 거야. 당신도 염색해 줄게요. 지금 할까?"조심스럽게 꺼낸 나의 말에 남편의 2탄이 시작된다. 도대체 외식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간 거냐, 생활비 모자란다더니 내가 투잡이라도 해야 되냐고 말이다.
음...... 나도 안다. 양육비에 보태던 나의 강의 수업료가 코로나 19로 모든 일이 스톱되고 0원이다. 하나라도 더 아껴야 했다. 남편이 회사에서 받았을 압박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차올랐을지도 안다. 그래도 서운함이 밀려왔다. 고작 몇만 원 안 되는 비용으로, 그것도 재난지원금 카드로 사용한 건데 이리 대접을 받으니 속상했다. '내가 그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까지 나를 괴롭혔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하고 동생에게 전화로 이러쿵저러쿵 속상함을 털어놓았다. 코로나 19가 많은 사람 울린다며 언니는 소중한 사람이고, 모두가 힘드니 이 시기를 잘 넘겨보자고 위로해 주었다.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속상함은 한풀 사그라졌고 그간 무력감에 지지부진하며 미루었던 일에 대해 아이들과 의논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의 역할이 중요해. 요즘 가족이 함께 하던 책 읽기도 그냥 넘어가고 영어 번역 놀이(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대책으로 세운 놀이다)도 잘 안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빠는 너희들이 할 일을 소홀히 하고 미루니 엄마에게도 화가 나고 속상한가 봐" 물론 아이들이 잘할 수 있도록 다독여주고 할 수 있도록 짚었어야 했는데 내가 체크하지 않고 미룬 건 사실이다.
"엄마, 그럼 우리가 번역 놀이랑 책 읽기를 아빠 퇴근 전까지 먼저 해요."
"어떻게? 지금도 온라인 강의 듣느라 힘들잖아" 아이들도 힘든 건 사실이다. 중학생 아들은 선생님들의 정성으로 9시부터 3시, 4시까지 화상수업을 진행한다. 중간에 불시에 이루어지는 출석체크와 수시로 올라오는 과제로 헉헉거리며 따라가고 있는걸 잘 아는 터이다.
"지금도 힘든데 어떻게 하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보았다.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으로 제일 힘들 터이니 말이다.
"그럼 내가 7교시까지 수업이니 8교시에 영어 번역 놀이를 해요."
"그렇게 할 수 있겠어?"
"힘들지만 해 봐야지. 한번 해 볼게요"
오빠의 말이 끝나자 딸이 거든다. "엄마, 그리고 책 읽는 시간도 정해요"
"그래, 그럼 저녁 먹고 아빠가 9시까지 오시면 그때 같이 책을 읽고, 못 오시면 우리끼리 읽자." 우린 아빠의 불만을 해결하며 서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들도 엄마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잘 생각해봐. 1주일 하루 3끼 7일이면 몇 끼지?"
"스물한 끼지"
"그중 우린 한 끼 정도 사 먹지. 나머지 스물 끼니는 엄마가 만들어 주고, 한 달이면 84 끼니 중 80 끼니를 만들어 먹고, 4 끼니를 외식하지."
"응, 그렇지" 둘은 합창하듯 씩씩하게 대답한다.
"그런데 보통 엄마들은 치킨을 어떻게 해주지?"
"시켜먹지"
"엄마는?"
"집에서 만들어 주지"
"그럼 돈가스는?"
"사 먹지"
"우리 집은?"
"엄마가 해주지"이쯤 대답하고는 아이들도 뭐가 신이 나는지 웃는다.
"맞아 엄마도 외식 참고 있어. 그런데 아빠는 돌나물 해달라는 데도 안 해준다고 불만 이래. 우린 지난주 돌나물 비빔밥 몇 번 먹었지? 세 번인가?"
"아니, 엄마 나는 4번 먹었어" 돌나물 비빔밥을 유독 좋아하는 딸이 대답한다.
"그럼 아빠랑 또 먹으면 몇 번이지?"
"5번"
"우와~ 1주일에 돌나물 비빔밥 5번 먹으면 웩!"
"엄마 그럼 아빠 돌나물 비빔밥 계속 주자" 아들은 말해 놓고 재밌는지 키득키득거린다.
"안 그래도 엄마가 아침에 돌나물 뜯어다가 비빔밥 해드렸어. 아빠가 엄청 맛있게 드시고 갔지"
"엄마, 그럼 내일 또 해 드려. 아빠 질리도록 드시게 돌나물 복수하자"
"그럴까?" 말하고 우린 한바탕 웃었다.
그 순간 나는 가슴속에 무언가가 쏴~ 하고 내려가는 듯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이들의 공감에 통쾌함이 느껴졌고 엄마의 마음을 읽어주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의 씀씀이가 고마웠다. 큰 아이와 나는 왠지 모를 유쾌함에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했고, 딸은 아빠에게 돌나물 복수극을 꾸미는 얘기에 눈을 흘겼다.
사실 남편에게 돌나물을 실컷 주자는 우리들만의 복수극은 실행되지 않았다.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천군만마와 같은 아이들 덕분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서운함은 눈 녹듯 녹아내렸다. 코로나 19로 지친 나도, 남편도 에너지가 바닥을 보인 것이다. 바닥난 에너지를 두 아이가 채워주었다.
돌나물은 주로 낮은 산에서 자란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짓기 전 밭과 임야가 어우러진 곳이었다. 땅을 새롭게 갈아엎었으나 흙속에 어찌 뿌리를 내렸는지 봄이면 마당 한편에 돌나물이 잊지 않고 올라온다. 돌나물 체취는 딸아이의 몫이다. 고사리손으로 돌나물 뜯어다 씻어놓으면 돌나물 초무침, 돌나물 비빔밥을 주로 해 먹는다. 남편은 이 돌나물을 보면 어릴 적 봄을 알리던 맛이 생각이 나는지 봄이면 어김없이 챙긴다.